1. 개요
Olympic Boycott
정치적인 목적, 감염병 위험을 근거로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혹은 그러한 행위.
2. 설명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후 올림픽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로 발전했다. 올림픽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최상위급 기량의 선수들이 모여 스포츠를 통해 교류하고 경쟁하는 화합과 평화의 제전으로서 각국마다 애국심을 고양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특수성을 이용해 자국의 문화와 위대함을 홍보하고 어필하는 기회이기도 하다.올림픽에 대개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위를 올림픽 보이콧이라고 한다. 보통 국가들마다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로 올림픽을 보이콧하며 큰 틀에서는 제1세계와 제2세계 국가들 사이의 대립으로 올림픽 보이콧이 일어난다. 세계 최대의 축제 올림픽을 보이콧하면 당연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왜 보이콧을 하는지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얽힌 이슈들이 쟁점화되고 부각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보이콧을 선언하는 국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올림픽을 개최하는 상대 국가를 비판하는 국제 여론과 집중도를 형성하며,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는 보이콧하는 상대 국가와의 갈등이 국제적으로 부각되지 않고 다른 국가들의 연이은 연쇄 보이콧이 이어지지 않도록 촉각을 곤두세운다. 역사적으로 각국의 정부 대표단과 선수단 모두 파견하지 않는 올림픽 보이콧은 3번 있었다.
다만 항상 올림픽 보이콧이 국제적으로 지지받는 것은 아니다. 내전 등 국가비상사태로 인해 참가가 불가능한 경우처럼 보이콧의 근거가 논리적으로 뒷받침되고 다른 국가들도 이 근거들을 인정해야 보이콧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무턱대고 올림픽을 여는 상대 국가를 역사적으로 계속 싫어했다는 이유로 보이콧을 단행하면 오히려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 쉬워지며 나아가 올림픽 헌장에 따라 정치권의 스포츠 개입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IOC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당연히 제재 기간 동안에는 국가대표 출전이 금지되기에 개인 자격으로만 출전 가능하며, 공식 메달 집계에서도 국가 명의로 나오지 않기에 대내외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1] 후술할 외교적 보이콧은 이러한 제재를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나온 것이다.
3. 외교적 보이콧
외교적 보이콧(Diplomatic Boycott)은 올림픽 보이콧의 한 종류로, 4년간 올림픽을 위해 노력한 선수들은 파견하되 정부 관계자를 올림픽에 파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위이다. 즉 선수단까지 보내지 않는 완전 보이콧보다는 수위가 낮지만 올림픽을 여는 상대 국가의 올림픽 성공 개최를 전혀 지지하지 않겠다는 경고이자 강력한 반대 의견의 표출 행위이다.
외교적 보이콧은 21세기 중국에서 열리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2021년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올림픽 보이콧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기원 국가이자 전 세계적으로 초래하게 된 팬데믹에 초기 사실을 은폐한 중국에게 책임이 있으며 위구르 등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 탄압, 고문, 성폭행, 살해, 홍콩이나 대만에 대한 무력 탄압 행위로 인해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중국에 대한 올림픽 개최가 정당하지 않다는 비난이 계속되었다. 이에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미국에 이어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민주주의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항의로 처음으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뛰어들었다.
선수단은 파견하기 때문에 별로 효과가 없어 보이고 중국도 “아무 타격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외교적 보이콧도 올림픽 개최 국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다. 우선 평화의 장으로 불리는 올림픽에 외교적 보이콧하는 행위만으로도 국제 사회의 큰 이슈거리가 되며 개최 국가는 국제적으로 불리한 여론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외교적 보이콧만으로 여러 기업들의 올림픽 후원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으며, 개최 국가는 정치적, 국제적인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하다.
자세한 사항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문제점 및 사건 사고/대규모 외교적 보이콧 문서 참조.
4. 역사적인 보이콧 목록
- 1936 베를린 올림픽 - 당시 나치가 정권을 장악한 독일에서 유대인 선수들에 대한 참가 제한을 이유로 미국,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튀르키예 등지에서 참가 거부 운동이 일어났었다. 소련, 스페인은 인민 올림픽이라는 아예 자기들 전용 대체 올림픽 대회를 만들었다. 축구 경기 도중 페루와 오스트리아 간의 8강전에서 편파판정으로 인한 판정패에 페루 축구선수들이 항의해 단체로 철수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 1956 멜버른 올림픽 - 보이콧한 나라들은 수에즈 사태로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그리고 캄보디아가, 소련의 헝가리 혁명 진압으로 스페인, 스위스, 네덜란드가, 대만의 올림픽 참가로 중국이 보이콧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총 8나라가 보이콧을 선언했다. 참가국 수는 신흥국들 덕분에 전번 올림픽과 얼추 비슷했지만(67개국-69개국) 참가선수 수는 많이 줄어 버렸다.(4,925명 - 3,342명)(승마 참가 선수 미포함)
- 1964 도쿄 올림픽 -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 인도네시아의 이스라엘과 중화민국의 입국 거부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인도네시아를 제명한 뒤 인도네시아는 이에 대한 항의로 신흥국 경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만약 이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올림픽 참가가 불허될 것이라 경고하면서 북한, 인도네시아, 중국이 보이콧을 선언했다.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 노골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추방되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뉴질랜드와 올림픽 직전에 친선 럭비 경기를 벌이자 당시 아프리카 독립국 26개국이 IOC에 뉴질랜드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지만 IOC가 이를 묵살했다. 이에 대해서 아프리카 26개국은 인종차별을 IOC가 정당화한다며 올림픽 단체 보이콧을 했다. 올림픽에서 정치적 이유로 일어난 첫 대규모 보이콧이다.[2] 그래서 아프리카 국가들 중 유이하게 세네갈과 코트디부아르만 끝까지 출전했다.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따른 항의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보이콧 선언을 하자 동맹국인 대한민국, 일본도 보이콧에 동참했고, 다른 자유진영 국가들도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거나 오륜기를 앞세우고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1950년대 말부터 소련과 사이가 틀어졌던 중국도 이때 그냥 불참했다.
-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국가들이 모스크바 올림픽을 대거 보이콧한 데 따른 보복으로 소련, 북한, 동독, 쿠바 등 공산진영 국가들이 대거 보이콧했다.[3] 공산권은 올림픽 대신 프렌드쉽 게임이라는 스포츠 대회를 올림픽과 일정이 겹치게 개최해서 올림픽을 견제했다.[4]
- 1988 서울 올림픽 - 그동안의 상호보복을 멈추고 12년 만에 미국과 소련에 중국까지 모두 참가한 올림픽이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북한이 불참하였고 북한의 설득에 넘어간 쿠바,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5], 알바니아, 니카라과 등의 친북 국가들이 빠지면서 총 7개국이 보이콧했다.
- 2020 도쿄 올림픽 - 유일하게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이콧했다. 올림픽 역사상 33년만에 부활한 보이콧이다. 결국 북한을 제외한 전 세계 205개국이 안전히 올림픽을 치른 점, 북한의 보이콧 근거와 논리가 부족한 정치적인 불참으로 간주되어 IOC에 의해 북한은 향후 올림픽 5년 출전 금지 제재를 받았다. 따라서 북한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러나 IOC는 북한을 얼마든지 올림픽에서 추방시킬 수도 있고, 아예 북한의 복귀를 차단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서 복귀 자체마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는데,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20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 사이트 독도 및 쿠릴열도 표기 논란 때문에 대한민국도 보이콧을 검토하기는 했다.
5. 같이 보기
[1] 메달 개수 역시 국가의 대외적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메달 개수가 해당 국가의 스포츠 인프라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2] 단, 카메룬,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 선수들은 18일 ~ 20일 간의 3일 동안의 경기는 참가했다. 가이아나, 말리, 에스와티니는 개막식에 참석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보이콧에 동참했다.[3]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중국은 정상적으로 참가했다.[4] 다만 자꾸 서로 보이콧하면 안 되겠다는 공감대는 있었기 때문에 프렌드쉽 게임에 미국, 영국, 일본 등 서방 국가도 2군급 선수를 참가시켰다.[5] 마다가스카르가 서울 올림픽에 불참을 선언한 사건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여주인공 성덕선이 마다가스카르 팀의 피켓걸을 맡게 되어 매일 연습에 몰두해 왔는데 개회식 3일 전에 마다가스카르의 불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다른 나라는 처음부터 불참을 선언했으나 마다가스카르는 참가 신청을 한 후 나중에 번복) 크게 허탈해하다 이 날 사나운 언니의 생일파티 자리에서 그동안 쌓인 울분을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죄다 쏟아내기에 이르렀다. 올림픽이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것도 아니고 4년에 한 번이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언제 다시 올림픽을 개최할지 모르는데 얼마나 허탈하고 어이가 없었을까? 다행히 그녀는 같은 아프리카 팀의 피켓걸을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