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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3 16:41:38

왕조(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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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王潮
시호 광무왕(廣武王)
왕(王)
조(潮)
신신(信臣)
생몰 기간 846년 ~ 898년 1월 2일
재위 기간 886년 9월 10일 ~ 898년 1월 2일

1. 개요2. 생애3. 참고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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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나라 말기의 복건지역 절도사로 오대십국시대의 십국(十國)중 하나인 민나라를 세운 왕심지의 형이다.

민나라의 초대 군주는 그의 동생인 왕심지지만 그 기반은 이미 왕조가 마련했다. 실제로도 왕조는 민나라의 근간지인 복건지역의 초대 통치자였으며 죽기 직전 왕심지를 후계자로 지명하는 등 삼국시대 손오의 기반을 다진 손책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나라의 기반을 만든 형이란 점에서 장사환왕으로 추존된 손책처럼 왕조도 광무왕(廣武王)으로 추존되었지만 사실 이것은 명목상 종주국인 후당에서 추시한 시호고 민나라 자체 조정에서 올린 시호는 없다.

2. 생애

846년 왕임(王恁)의 아들 중 장자로 태어났으며 훗날 민왕으로 즉위한 왕심지, 그리고 무숙왕(武肅王)에 추봉된 왕심규(王審邽)와 같이 형제들이 총명하여 그 지역에서 삼룡(三龍)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왕조가 활약하게 되는 시기는 907년, 황소의 난이 일어난 시기로 당시 황소를 받들어 수주(壽州, 현 안휘)를 휩쓸던 왕서(王緒)의 세력에게 집안을 약탈당하던 사건이 계기였는데 약탈하던 와중에도 왕서는 삼형제, 특히 왕조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휘하로 들어오게 했으며 이것은 그가 출세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이후 왕서는 황소가 몰락하자 다음으로 유력한 군벌 진종권한테 칭신했으으나 그는 진중권의 군납 요청을 거부, 독립을 선언하여 삼형제를 포함한 자신의 군대 일부를 이끌고 복건 지역, 나아가 팅저우(汀州)까지 점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막상 점령은 성공했어도 그곳은 심한 험지였기에 보급에 차질이 생겼고 따라서 식량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왕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력에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된 노약자들을 전부 참수하라고 명했으며 이 노약자 중엔 왕조의 계모인 동씨(童氏)도 있었다. 상관의 명령이지만 차마 계모를 죽일 수 없었던 왕조는 항명하기 시작했고 왕서에게 불만을 품은 다른 세력을 포섭하여 왕서를 포박할 계획을 수립, 성공하여 전권을 장악하고 원수(元首)로서 등극하게 되며 왕조가 모든 전권을 장악하자 사실상 구금당한 왕서는 자살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파촉 지역까지 영향력을 넓힌 왕조는 그곳을 순방하던 중 장연로(張延鲁)라는 사람의 "천주(泉州)를 통치하는 요연약(廖彦若)의 폭정이 심해 이를 해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이고 1년 간의 싸움 끝에 승리하자 20여기의 할거 세력이 그에게 투항하여 왕조는 사실상 민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르렀다.

왕조는 자신의 세력권에서 선정을 베풀었으며 명목상 천자로 군림하던 당 조정으로부터 공을 인정받아 절도사로 임명받았고 898년 사망하자 사공으로 추증되었다. 묘비명에 따르면 왕조는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진국공(秦國公) 및 광무(廣武)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했으나 사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묘비명의 제목이 '개민시조광무왕묘지명(開閩始祖廣武王墓志銘)'이기에 광무왕(廣武王)으로 불린다. 그는 민나라의 기반을 만든 공이 있었으나 민나라가 칭제를 한 후에도 아무런 시호를 받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민 황실의 군주가 아닌 당의 명목상 제후국으로 있던 민 번국의 번왕으로 추시된 것이다.

3. 참고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