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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7-02 10:46:05

영흥군(고려)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1. 개요

고려의 왕족. 본명은 왕환(王環)으로 영흥군(永興君)에 봉해졌다.

2. 생애

고려 말인 1371년 신돈이 처형을 당했다. 그 형제자매에 신순(辛珣)과 왕환의 처 신씨가 있었는데, 신순은 신돈의 죄에 연좌돼 함께 처형됐고, 신순의 사돈인 왕환 또한 그 죄에 연좌돼 무릉도에 유배됐다. 그런데 왕환은 유배지에서 실종됐고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 신씨가 들은 소문에 따르면 왕환은 바람에 떠내려가 일본에 도착했다. 그러다 창왕 재위중인 1389년 신씨가 일본에 보낸 가노와 만나게 돼, 자신이 왕환이라고 밝히면서 고려로 돌아갔다.

그런데 왕환은 외모가 전과는 한참 달라져있었고,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이름, 살던 마을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했다. 이에 신씨의 친척인 전 판사 신극공(申克恭), 인척인 전 판개성부사 박천상·전 밀직부사 박가흥, 사위 지밀직부사 이숭문, 그리고 하륜 등이 한목소리로, "우리가 왕환을 안 것이 아주 오래됐는데, 이 사람은 실로 왕환이 아니다."[1]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산부에서 온 신씨는 남편을 다시 만난 것에 기뻐하며, "지아비를 알아보는 것은 그 아내만한 사람이 없습니다."[2]라고 말했다.

신씨가 왕환을 알아봤음에도 일본에서 돌아온 사람이 가짜 왕환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소송이 제기돼 사헌부에서 이를 심사했다. 왕환의 두 아들과 친형인 승려 참수(旵髓), 그리고 고려 종실의 여러 왕족들이 모두 "진짜 영흥군입니다."[3]라고 말하며 본인임을 확신했다. 처음에는 가짜라고 주장하던 왕환의 사위 이숭문 또한 국문을 당한 뒤 자신의 장인이 맞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가짜 왕환설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던 이들은 모두 무고죄로 연좌돼 먼 곳으로 유배됐다.

3. 가족관계

3.1. 조상

3.2. 자녀



[1] 吾等識環甚熟, 此實非環也.[2] 知夫莫若妻.[3] 眞永興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