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모토 소이치의 일본 만화 몽환의 군함 야마토(夢幻の軍艦大和)에서 일본 해군의 수뇌부가 미드웨이 해전 워게임을 다루는 장면에서 나온 짤방.
2. 내용
짤방에서 청군은 일본군, 적군은 미군을 일컫는 것으로 미군의 공격에 명중탄 9발을 맞고 침몰한 아카기가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의 한 마디에 3발 명중으로 바꾸어 되살아나는 장면. 거기다 그 꼴을 지켜보는 장교들이 이의를 제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시 일본 해군은 강해'라며 경탄하는 것이 포인트. 현실부정, 정신승리를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마법의 짤방으로 사용된다.이 짤방에서는 생략되어 나오지 않지만, 바로 다음 컷에서는 당시 해군소장이자 제1항공함대 참모장(第1航空艦隊参謀長)인 쿠사카 류노스케(草鹿龍之介)가 이를 보고는 어이없어하며 '무슨 불건전한 작전인가' 라고 생각한다.
다만 당시 아카기에 탑재된 대공포나 호위기의 숫자, 아카기 자체의 회피기동력, 당시 미군에 대한 일본군의 평가 등의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본인들 나름대로는 9발 명중은 너무 뜬금없는 수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대로 치면 컴퓨터로 워게임을 돌리다가 버그로 예상치를 너무나도 웃도는 계산이 나오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수치를 그냥 깎아내는게 아닌 워게임을 리셋해 처음부터 다시 계산하는게 정석이다.
또한 워게임의 목적이 작전의 진행에 있어 랜덤함수를 통해 우연히 발생하는 전개를 연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불운이 일어났을 경우에도 계속 진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러니 어떻게 계속 작전을 진행할 수 있을지 또는 작전을 중지하고 전력보전을 우선하여 퇴각하여야 할지, 어떻게 해야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고 퇴각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여 기록으로 남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그렇게 많이 맞을 리가 없다." 라며 이기는 기록만 남기기 위해 워게임을 세이브 앤 로드한 꼴.
참모들의 반응도 문제다. 지휘관이 명중탄은 3발이라고 윽박지르자 진행관은 권력에 굴복한 것처럼 바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꽉 막히고 현실을 부정하며 정신승리를 일삼는 비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 컷에서 참모들이 '9발 맞는 건 불가능하지?' '말도 안되지, 있을 수 없어. 다시 해야겠군.' 같은 식으로 생각했다면 작품 내에서의 논리구조는 정상화될 것이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상황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 장교란 작자들이 일제히 '일본 해군은 강하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이 이상해져 있는 지경.
일본 해군을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비합리적인 조직으로 그린 데서 알 수 있듯이 원본 만화는 주인공이 아무리 역사를 바꿔도 절대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가공전기를 비틀어 당시 일본군이 굉장히 무능한 집단임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일본군을 찬양하는 극우들을 조롱하는 만화다. 다만 아래 해설 항목에도 나오듯 실제 역사에서는 일부 참모들이 반발하였는데, 그것을 실제보다 더 멍청한 조직으로 보이도록 묘사해 두었다.
3. 기원
이 장면은 실화에 기반해서 그려진 것이다. 미드웨이 해전이 일어나기 전 일본 해군 내에서 따로 작전구성 및 회의를 위해 야마모토 이소로쿠 및 연합함대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 등을 고위 관료를 포함하여 1942년 5월 1일부터 실시한 워게임 당시 만화처럼 우가키가 "9발 명중은 너무 많다(9発命中は多すぎる)"고 우겨서 아카기를 부활시킨 웃지 못할 일이었다.[1] 당시 워게임의 적군(미군) 총사령관 마쓰다 지아키(당시 이세급 전함 휴가 함장)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나는 당시 '휴우가' 함장이었는데, 도상연습이 있어서, 미국통이라는 이유로 적색군(적군)의 총지휘관역이 됐어. 도상연습에서는 미군은 상당히 항속거리가 긴 비행기(미드웨이에서 발진한 육상기)로 색적(정찰)하지. 일본군은 함상기뿐. 미군은 일본군의 행동을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알 수 있었으니 하고 싶은 걸 얼마든지 할 수 있지. 그런데 내가 도상연습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것을 그대로 판정하면 사기에 악영향이라는 이유로 극도로 경미한 피해로 처리되어 작전 성공이라고 판정되었어.#
만화에서와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는 일부 참모장들이 우가키의 억지에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이에 우가키는 "만약 항공모함을 한 대라도 잃는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진다"고 대꾸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은 모의훈련에서조차 진다는 것을 가정할 수조차 없는 분위기였다고. 그러나 우가키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항모를 대거 잃는 패배만 나오는 상황이였고, 어찌저찌 억지를 부려[2] 이기는 시나리오까지 만들지만 몇몇 함재기나 함선들이 항속거리, 연료 문제 등으로 바다위에 좌초된다거나 자기들 손으로 격침시키는 등 상당한 문제점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우가키와 야마구치 등 일부 고위 참모들은 작전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장관에게 작전의 대대적인 수정을 건의한다.
그러나 야마모토가 자신의 최대 성과였던 진주만 공습에 도취된 나머지 본인의 능력을 과신하기도 했고, 당시 미 해군 항공모함들이 남방작전을 포함한 일본군 점령지역을 폭격함[3]과 동시에 일본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주었다고 전해지는 둘리틀 특공까지 성공시킨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군 수뇌부는 더이상 미국 항공모함을 그냥 놔둘 수 없다는 분위기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따라서 야마모토가 해군과 육군의 반대를 어느정도 억누르고 작전을 강행할 수 있었던 정치적 상황과[4] 빨리 미군을 끝장내지 못하면 미국의 가공할 생산력에 눌려 패전할 것이라는 조바심 등으로 인해 야마모토 자신의 해군 커리어를 걸고서 기획한 MI작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참모들이 지적한 작전안 수정 일체를 거부하고 원안대로 MI작전 강행을 결정했다.[5]
또한 이런 촌극이 벌어진 데는 당시 일본군의 조직문화 문제도 있다. 실패를 수치로 여기는 조직문화 아래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기도 어려웠고 이것을 빌미로 경쟁자들이 상대를 깎아내릴 정도로 가혹한 수준의 경쟁이 이루어졌기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닌 동료와 상사에게 잘보이기 위한 보신주의 전략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느 조직에서나 이러한 풍토는 발견되므로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으나 일본 육해군은 그 정도가 자정이 가능한 수준을 지나쳐 정상적인 전략 및 작전 구상이 어려웠다.
4. 현실
재미있게도 위에서 언급한 워게임 중 현실에서 일어난 미드웨이 해전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의 결과가 있었다. 미해군 역할을 하는 홍군측 항모기동부대가 현실의 미 해군과 똑같이 미리 하와이에서 출항, 미드웨이 동북쪽에서 매복해 있다 일본 함대를 먼저 식별, 기습하여 미드웨이 해전 초반처럼 일본측 3척의 항공모함이 격침된 것이다. 그러자 연합함대 참모장 우가키 마토메가 미 해군은 일본 해군의 미드웨이 공격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으니 그런 (매복) 전술을 사용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여[6] 격침된 함대를 원상복구 시켜 버리고, 이것을 지켜보던 야마모토는 우가키의 주장대로 홍군 함대가 미드웨이 공격 이후 하와이에서 출항하게 시켜버리는 등 위의 내용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이겨야 한다는 행복회로를 미친 듯이 굴렸다고 한다.물론 현실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아카기에게 명중한 폭탄은 단 한 발뿐이었다. 의외로 결과 자체는 우가키가 우긴 것보다 더 양호하게 나온 셈이다. 정확히는 명중탄 1발에 지근탄 2발[7]로, 명중탄을 날린 사람은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에이스 파일럿인 리처드 H. 베스트(Richard H. Best) 대위였다.[8]
그런데 아카기가 그 한 방에 격침당했다. 일명 "베스트 샷(Best Shot)."[9] 베스트 대위의 1000파운드 폭탄은 중앙 항공기 엘리베이터의 가장자리에 착탄하여 갑판을 뚫고 격납고에서 폭발하는데... 격납고에서 작렬한 폭탄에 마침 무장탑재 중이던 항공기[10]가 말려들어 폭발, 곧이어 화재가 발생하고, 뒤이어 어뢰/폭탄이 유폭당하면서 함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탓이다.[11]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격납고 내에 방화 커튼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처음 폭탄이 터진 위치가 바로 그 방화 커튼이 있던 자리라서 무용지물이 됐다. 더 웃기는 건 지근탄 2발 중 하나가 아카기의 후방에 떨어지면서 키를 고장냈고 소화 펌프를 망가뜨렸다는 것. 이미 이전에 낡아빠진 키를 교체해 달라는 청원이 있었음에도 군부에서 묵살하다가 나온 결과이니 전적으로 일본군 수뇌부의 잘못이다.
즉, 워게임에서 "항모 아카기! 명중탄 9발! 침몰!!"은 실제 미드웨이 해전에선 "항모 아카기! 명중탄 1발! 침몰!!"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위 만화에서도 우가키 마토메 참모장이 명중탄 3발을 주장하자 소파 판정이 났듯이 아카기같은 대형 함선이 고작 폭탄 한 발로 격침되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나서 문제지. 아카기도 위에서 언급된 온갖 조건이 겹쳤기 때문에 한 발로 격침된 것이다.[12]
게다가 저 도상훈련에서 홍군(미군)이 보내서 9발을 명중시켰던 미드웨이 기지의 항공기는 실전에서 한 발도 맞추지 못했고, 일본 항모를 파멸시킨 것은 이어 공격을 개시한 미 해군의 항모에서 발진한 항공기였다. 항모로 미드웨이 기지의 방어전력을 두들긴 후 점령하여 미 해군 주력의 진출을 유도해내면 미드웨이 근처에서 산개해 있던 전함 세력 등 나머지 전력을 빠르게 집결시켜 결전을 치르는 것이 MI 작전의 골자였으므로, 미드웨이 공습 도중에 미 항모의 기습을 받는 상황은 아예 상정 외였다.
운빨 영향을 두는 이유는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작전을 짜도 병사들의 사기나 숙련도, 날씨, 적의 대응 전술 등등 실전에 들어가면 수많은 변수들로 인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이런 변수들이 만들어내는 돌발상황에서 과연 지휘관이 이 상황을 잘 수습하거나 타개할 수 있는지, 더 나아가서 빠르게 재정비하여 역공을 통해 전세도 역전시킬 수 있는지 알아보며 숙련시키는 것이다.
일본제국 해군 장성이자 도고 헤이하치로의 부관인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유학장교로써 미 해군의 워게임을 인상 깊게 보고 건의 끝에 도입된 훈련이었고 사네유키는 설령 자신의 상관이어도 혹독하게 평가했다. 이렇게 공명정대해야 할 모의훈련에서 저런 불쾌한 결과가 나왔으면 당연히 복기를 해서 이 결과가 나온 전술의 문제점과 이를 막을 방안을 진지하게 연구한 뒤 전술을 바꿔 다시 해야 한다. 자기들이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만약 항공모함을 한 대라도 잃는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일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만약 야마모토가 진정으로 작전에 임했다면 목표안을 좀더 현실적으로 수정하고 시나리오를 추가해 다양한 상황에 대응 가능하도록 유연한 전술을 구상했을 것이고, 이를 위해 산호해 해전에서 비행대가 큰 피해를 입었지만 배 자체는 멀쩡하게 돌아온 즈이카쿠에 다른 비행대를 실어서 나구모 함대와 동행하게 하든지[13], 육군과의 협조로 알류샨 열도 공략전을 취소시키고 당초 투입이 예정된 류조와 준요를 나구모 함대에 집어넣어 전력을 보강하거나,[14] 몸빵 성능은 준수한 야마토[15] 등이 배속된 본인이 지휘하는 본함대를 나구모 함대에 동행시켜 몸빵과 대잠능력과 방공능력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여러 대책이 필요했다. 미 해군 전사가가 지적하듯 일본군은 과신에서 비롯된 거듭된 오판으로 미드웨이의 패전을 만든 것이다.
여담으로 항공모함 한 척에 폭탄이 9발이나 명중하고 항공모함이 부활해서 다시 해전에 참여한 일 자체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실제로 있었다. 폭탄을 9발이나 맞은 항공모함은 일본 항공모함 카가였고 부활해서 다시 해전에 참여한 항공모함은 미국 항공모함 요크타운이었을 뿐. 카가는 공식적으론 5발의 폭탄을 맞은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당시 미군 급강하폭격기들의 착오로 50발이 넘는 폭탄이 카가를 향해 떨어졌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10발 전후로 명중했을 것으로 추정중이며, 요크타운은 이전의 산호해 해전에서 전치 3개월의 수리 진단서를 끊어놓고 3일만에 응급수리를 완료하여 미드웨이 해전에 참여한 것이라 일본군 입장에서는 한동안 못 볼 항공모함이 부활해 돌아온 격이었다. 심지어 요크타운은 미드웨이 해전에서조차 응급수리를 통한 부활해 성공해 일본군을 두 번 엿먹인다.
5. 본편 만화의 줄거리
만화는 2차 대전 시기의 일본을 극렬하게 까고, 아직도 전쟁을 갈망하는 이들의 환상을 깨부순다.몽환의 군함 야마토에서는 타임슬립한 주인공 '우에하라 쿠르스'의 조언으로 요크타운을 먼저 공격하여 격침시킨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 발진한 미군 폭격기의 공격으로 야마구치 다몬과 함께 살아남은 소류를 제외한 3척의 항모가 격침된다. 한편 야마토는 밤에 미드웨이 섬에 포격을 가하고, 일본군이 미드웨이에 상륙하여 섬을 점령하는 데에 성공한다.[16] 다만 곧바로 미군의 폭격으로 일본군은 미드웨이 섬을 버리고 퇴각했고, 최종적으로는 역사가 바뀌어 홋카이도가 21세기에도 소련 영토로 남아있게 된다.
만화에서는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잘 나갈수록, 거꾸로 21세기의 일본은 점점 비참한 꼴이 되어 간다. 처음에는 홋카이도의 절반이 소련에 넘어가더니 그 뒤에는 홋카이도가 전역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은 소련령이 되고 일본은 제국 체제가 계속 유지되어 억압적이고 시대에 뒤처진 군국주의 파시즘 국가가 된다. 급기야는 1999년 도쿄에까지 핵을 맞고 미군의 통치 아래 놓인 후진국으로 전락해 버리고 주인공은 정장을 입었다는 이유로 외국 간첩 혐의로 체포당한다. 마지막에는 주인공과 미드웨이 해전에서 살아남은 야마구치 다몬 등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참사를 막기 위해 야마토로 에놀라 게이를 격추시키지만 결국 요그 소토스[17]의 개입으로 역사 개변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끝난다. 다만 완전히 없던 일로 바뀐 것은 아닌지, 주인공은 격침된 야마토를 조사하던 중 자신이 타임슬립해서 만난 한 일본 수병에게 건네 줬던 자신의 신발을 발견한다.
6. 응용
높으신 분이 어이없는 억지로 우기니까 결과가 바뀌고, 주위 사람들이 그런 해괴한 상황에 또 부화뇌동하는 어처구니없으면서도 현실에서 제법 볼 수 있는 장면이기에 대사를 변경시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일본 해군 군함들이 다수 등장하는 월드 오브 워쉽의 커뮤니티들에서는 워게이의 일뽕과 일본 사기배들을 비판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만.
- 이전에 나온 나쁜 결과를 억지로 무르고 다시 시작한다는 점이 세이브로드신공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전략 게임으로 패러디되기도 한다.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시도 실패와 관련한 패러디가 있다.
7. 관련 문서
[1] 출처-川崎まなぶ 『日本海軍の航空母艦 その生い立ちと戦歴』[2] 미 해군이 이번 작전을 알지 못하므로 미리 정찰기를 띄고 있지 않을것이다, 함대를 보존하려는 미국의 특성상 미드웨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하와이 군항에서 출정할 것이다 등[3] 마셜-길버트 등. 사실 해당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다지 전략적인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진주만 공습 이전까지의 고립주의 노선에서 기해 미해군을 포함한 미군은 전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병 차원에선 알지 못하였기에, 실전 훈련으로서의 성격과 진주만의 충격에서 벗어나 사기를 회복시키려는 목적이 더 컸다. 실제로 이를 포함한 여러 전투를 거치며 미해군은 진정한 전투 집단으로서 거듭났으며 이를 미드웨이 해전에서 증명해낸다[4]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분명 진주만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음에도 당대 일본의 육해군과의 대립 및 일본 해군 내에서도 소수파인 조약파에 속한 장교여서 커리어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일본 해군은 당시 함대파와 조약파가 있었는데 함대파는 말 그대로 함대를 늘리자는 파였고 조약파는 워싱턴 군축 조약을 지키자는 파였다. 당시 일본군의 사정을 안다면 누가 다수파고 누가 소수파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 애당초 당시 일본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조약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이 파벌은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정확하게는 진주만 공습 이후 아예 미국 본토까지 진격하며 전쟁을 확대하려는 주전파와 미국과 신속한 협상을 통해 빠르게 전선을 마무리하고 중일전쟁에 집중하자는 협상파로 결을 유지했다. 야마모토는 역시 협상파에 속했고 대다수는 여전히 주전파에 속해 야마모토의 영향력은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커지긴 했지만 결국 대다수인 주전파의 영형력에 눌리는 형세였다.[5] 이 때문에 일각에선 당시 미드웨이 공략을 좀 더 뒤로 미뤄야 한다는 반대파들이 있는 상황에서 미드웨이의 조기 공략으로 전쟁을 빠르게 끝내야 한다는 야마모토 제독의 주장을 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겠냐는 추측도 있다. 여기서 더 얼쩡대면 동시에 너무 많이 벌려놓은 전선과 그에 따른 병력 분산 때문에 작전의 진행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6] 이것은 안일한 생각이었다. 미 해군은 감청을 통해 해당 워게임이 시작되기 1달 반 전인 1942년 3월경부터 미드웨이에서 무언가 큰 작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짐작하기 시작했다.[7] 지근탄 중 한 발은 아카기의 가장자리를 관통한 뒤 폭발하며 아카기의 유폭방지용 펌프와 키를 부쉈다.[8] 당시 히류가 맞은 명중탄 4발 중 한 발도 이 사람이 떨궜다. 즉 전투 한 번에 항모 2대를 격침시킨 것. 안타깝게도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명예 훈장은 받지 못했다.[9] 일반적으로 급강하폭격기가 날린 폭탄은 "어느 비행기가 날린 폭탄"이라고 일일이 다 쓰면 보고서가 너무 길어지고 가독성도 떨어지니, 폭탄을 떨어뜨린 파일럿의 이름에 맞춰 제임스 샷, 리처드 샷이라고 부르는 식으로 줄여 서술했다. 이 역시 베스트 대위가 날린 폭격이라 베스트 샷이라고 표기된 것인데, 아시다시피 동음이의어 베스트(best)에는 최고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단순한 보고서용 줄임말이 아닌 이 폭격을 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폭격을 가한 주인공 베스트 대위는 훗날 이 순간을 두고 "딱 좋은 표적이었습니다. 마치 여기에 떨어뜨려 주세요!라고 하는 것 같았죠"라고 회고했다. 당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갑판에 큼지막한 일장기 마크가 그려져 있어서 표적 식별이 잘 되었던 것을 두고 한 말. 당시 미군은 그 무늬를 미트볼이라 불렀다.[10] 뇌격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D3A 뇌격기들이 어뢰 장전을 한창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11] 당시 아카기는 미 해군의 항공모함들이 발견되었단 정찰소식에 출격계획을 이리저리 바꾸느라 격납고에 항공어뢰와 폭탄이 가득 쌓여있었다.[12] 명중했더라도 방화커튼이 멀쩡했거나 격납고에 어뢰가 방치되어 있지 않았거나, 그도 아니면 소화 펌프가 고장나지만 않았더라도 한 발로 격침되는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13] 후대의 평가로, 일본 해군은 항모와 항공대가 일체화돼 있어서 A항모와 B항모의 항공대를 C항모에 모아 작전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14] 이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전역에 항모를 보낸 것이, 해군이 MI작전을 승인받는 대신 지불한 댓가였다.[15] 호위함대가 거의 없던 천호작전 당시에도 어뢰 10발가량을 맞고 추가로 부포탑 유폭까지 겹쳤음에도 야마토가 격침되는 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16] 사실 이것도 엄청 봐준 시나리오인데, 당시 미드웨이 절대사수를 외치던 미군은 섬 자체를 지뢰밭으로 도배해버렸고 항공기도 미친듯이 배치해놔서 당시 기준 구식이긴 했지만 배치된 항공기만 120대가 넘었으며 섬 자체도 이미 상당한 요새화가 되어있었다. 즉 어찌저찌 야마토가 포격을 가한다고 해도 상륙한 일본군은 엄청난 피해를 봤을 확률이 높고 그마저도 하루 안에 섬 점령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였다.[17] 주인공이 타임슬립하게 만든 원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