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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2:15:29

엔히크 일라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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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Chelsea Football Club
파일:Henrique_Hilario_profile_24-25_profile_avatar-removebg.pn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엔히크 일라리우
Henrique Hilário
본명 엔히크 일라리우 메이렐르스 알베스 삼파이우
Henrique Hilário Meireles Alves Sampaio
출생 1975년 10월 21일 ([age(1975-10-21)]세)
포르투 상 페드로 다 코바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89cm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축구 코치
소속 선수 아소시아상 나발 (1994~1995)
AA 코임브라 (1995~1996)
FC 포르투 (1996~2004)
CF 이스트렐라 다 아마도라 (1998~1999 / 임대)
바르징 SC (2001~2002 / 임대)
아카데미카 드 코임브라 (2003 / 임대)
CD 나시오날 (2004~2006)
첼시 FC (2006~2014)
코치 첼시 FC (2014~2016 / 스카우터)
첼시 FC (2016~2019 / 보조 코치)
첼시 FC (2019~ / 골키퍼 코치)
국가대표 1경기 (포르투갈 / 2010)

1. 개요2. 클럽 경력
2.1. 첼시 FC 이전2.2. 첼시 FC2.3.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여담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축구 선수 출신 코치. 현역 시절에는 골키퍼로 활약했다.

2. 클럽 경력

1975년 10월 21일 포르투갈포르투 소재 상 페드로 다 코바에서 태어난 일라리우는 FC 포르투 유소년 팀에 들어가며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가지기 시작했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FC 포르투의 유스 팀에서 골키퍼로 뛰었다.

만 18세가 되던 1994년 일라리우는 FC 포르투의 유스팀을 떠나 나발에 골키퍼로 입단해 1995년까지 뛰었다. 1995년부터 1996년까지는 나시오날에서 뛰었다.

2.1. 첼시 FC 이전

1996년 다시 친정팀인 FC 포르투로 돌아왔다. 그러나 포르투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경기에 나서기보다는 대체로 백업자원에 그쳤고,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에스트렐라 아마두라,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바르짐, 2003년에는 아카데미카로 임대되었다. 2003년 6월부터 2004년까지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의 중하위권 팀인 CD 나시오날로 임대되었고, 2004년 6월 나시오날로 완전 이적해 2006년까지 나시오날에서 활약했다. 2004-05 시즌은 나시오날에서 주전 골키퍼로 뛰었으나 2005-06 시즌에는 후보선수로 머물렀다.

2.2. 첼시 FC

2006년 여름, 한 때 FC 포르투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세 무리뉴 감독의 제안을 받고 첼시 FC의 서드 키퍼로 합류했다. 그런데 2006년 10월 레딩 FC와의 경기에서 페트르 체흐카를로 쿠디치니가 연달아 부상을 당하며[1] 졸지에 퍼스트 키퍼로 승격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서드 키퍼로 합류할 당시에도 정말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선수지 절대 이렇게 첼시에 오래 있을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골키퍼였다.

FC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전을 데뷔전으로 치렀는데 호나우지뉴에투가 버티는 당시의 바르샤를 상대로 무실점 선방쇼를 벌이며 명성을 떨쳤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쿠디치니가 복귀하기 전까지 지속적인 선발출장을 통해 준수한 활약[2]을 펼쳤다. 2007-08 시즌에도 체흐와 쿠디치니가 동시에 부상당한 뉴캐슬 유나이티드, 풀럼 FC와의 홈경기에 연달아 출전해 2경기 2실점의 원만한 활약을 선보였으며, 2009년 1월 쿠디치니토트넘 핫스퍼 이적으로 세컨 키퍼로 승격했으나 이후 로스 턴불의 영입으로 다시 서드 키퍼로 내려왔다.

월드클래스 주전 골키퍼 페트르 체흐가 잔부상에 종종 시달렸기 때문에 일라리우는 시즌 당 서너경기에는 선발출전했는데 그 때마다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었기에 많은 첼시 팬들의 신망을 얻었다. 또한 세컨 키퍼로서의 위치에 만족하고 퍼스트 키퍼인 페트르 체흐를 경기 내외적으로 전폭 지원하는 아름다운 미담으로도 좋은 인상을 주었다. 2014년까지 첼시에서 뛰며 20경기에 출전했고 6경기에서 클린 시트를 기록했다.

2.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 출장과는 오랫동안 인연이 없었으나 2010년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중국과의 친선경기에 1경기 출전했다.

3. 지도자 경력

2014년 8월 첼시 FC에서 계약이 종료됨과 동시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첼시 훈련장에서 유스 선수들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며 스카우터로 근무하다가 2016년 7월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부임과 동시에 골키퍼 보조 코치로 부임했다. 2018년 마우리치오 사리 체제에서도 코치직을 유지하다가 2019년 7월 프랭크 램파드의 부임과 함께 1군 골키퍼 코치로 승격했다.

2019-20 시즌 내내 주전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의 부진이 이어지며 케파의 지도를 맡은 일라리우 골키퍼 코치에 대해서도 자질 논란이 있었다. 단지 레전드라는 이유만으로 경험과 실력이 부족한데 코치직을 꿰차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2020-21 시즌에도 유임되었고, 대신 첼시는 리그앙에서 에두아르 멘디를 영입하고 페트르 체흐 기술이사가 1군 골키퍼들의 훈련 지도도 돕기로 하며 일라리우 코치의 업무를 분담했다.

구단주가 로만 아브라모비치에서 보엘리로 바뀌고 그레이엄 포터가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뒤로도 첼시 FC에서의 그의 역할은 유지되었다. 포터의 경질 후 램파드 임시 감독, 포체티노 체제 하에서도 유임되었으며, 2024년 6월 부임한 엔조 마레스카 감독 또한 일라리우를 스태프에 포함시켰다. 2024년 기준으로 첼시의 전체 구성원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첼시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첼무원으로 불린다.

이후 2024년 11월 20일,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기 위해 구단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팀을 떠났다. FA에서 새 골키퍼 코치를 선임하기 위해 일라리우에게 접촉을 했는데, 첼시 측에서는 구단과 대표팀의 코치 겸직은 허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서 일라리우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팀을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4. 여담

그야말로 행운의 사나이다. 무려 9년간 첼시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첼시에서 뛴 경기는 20경기밖에 안된다. 이 상황만 보면 대체 무엇이 행운이냐고 하겠지만 과정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특히나 당시에는 당대 세계 최고의 키퍼로 꼽힌 페트르 체흐가 주전자리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고 체흐 이전에 첼시를 책임졌던 카를로 쿠디치니가 세컨드 키퍼에 머물렀었기때문에 이적하더라도 일라리우에게 기회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31살 먹은 일라리우가 첼시로 이적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매니저였던 포르투에서의 무리뉴와의 인연때문이었다. 대체적으로 첼시 정도의 팀이 아니더라도 서드 키퍼의 자리는 팀내 키퍼 유망주에게 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문제는 당시 첼시의 성인 무대에서 뛸 정도의 키퍼였던 마칼람비와 레니 피질리가 동시에 이적을 요청해서 이적했던 상황이라 서드키퍼에 둘만한 유망주가 없었다. 어쨌든 규정 때문에라도 서드 키퍼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고 무리뉴는 이전 포르투갈 무대에서 인연이 있던 일라리우를 영입한다.

서드 키퍼의 운명이란 대체적으로 2~3년간 벤치에 쳐박혀서 적당히 시간만 때우다 가는 자리였고 이 당시 일라리우도 31세 였기 때문에 슬슬 은퇴준비를 해야만 했다. 이전에 포르투에서 무리뉴와 있다가 나시오날이라는 팀으로 이적했던 이유도 사실 좀 더 축구선수로 경기를 뛰기 위함이었으나 31세의 그럭저럭 유럽 중위권 리그에서 간신히 통할만한 수준의 키퍼에게 첼시 서드 키퍼라는 자리는 코치 연수를 위해서도 매우 매력적인 자리였을 것이다.

문제는 운명의 2006년 10월 14일. 그야말로 일라리우의 운명이 바뀐 날이기도 하다. 그 날은 첼시 골수팬이라면 잊기 어려운 끔찍한 날로 레딩의 스티븐 헌트의 끔찍한 반칙으로 인하여 체흐가 두개골 골절 부상을 당한 날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체흐는 헤드기어를 쓰고 나오는 것이 거의 습관이 되었다. 문제는 이 때 들어간 세컨드 키퍼인 쿠디치니도 부상을 당해버린 것이었다. 서드키퍼는 대체적으로 스쿼드에 올라가 있지 않아 존 테리가 골키퍼 장갑까지 끼면서 악전고투를 벌였던 날이고 이후 유일하게 성인 무대에서 그나마 통할만한 실력을 가진 키퍼는 당시 첼시 선수단에선 일라리우가 전부였다. 부상이 있던 달은 10월로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려면 두달이나 기다려야하는 상황이었고 덕분에 그 해에만 서드키퍼임에도 불구하고 11경기를 출장했다. 심지어 첫 데뷔전이 바르셀로나였는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덕분에 새로운 키퍼 영입보다는 주전 및 세컨드 키퍼의 회복에 좀 더 초점을 맞춰서 선수단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총 9년간 출전한 20경기의 절반 이상을 첫 6개월 동안 출전해버렸고(쉽게 말해 영입 첫해를 제외한 8년간 일라리우는 단 9경기만 출전했다는 얘기다.) 이 때의 기억이 강렬했던 탓인지 서드 키퍼 치고는 2011년까지 총 5년간의 계약을 맺었다. 물론 주급은 그렇게 높지 않았으나 여튼 첼시라는 구단에 있어 그래도 주급이 1만 파운드 이상의 액수였으니 연봉으로 치면 60만 파운드가 넘어갔다.

이후에도 간헐적인 체흐의 부상, 쿠디치니의 이적, 로스 턴불이라는 새로운 신예 키퍼의 부진등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자리를 이어나갔고 2011년이 되었을때 일라리우도 36세가 넘었고 당연하게도 첼시와 일라리우의 인연은 계약만료로 끝날줄 알았으나 당시에 감독이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였고 역시나 같은 포르투갈 사람에 포르투에서의 인연이 있던지라 그대로 일년 계약 연장. 일라리우의 인성이나 태도가 매우 좋고 배우려는 자세나 팀의 분위기를 잘 이끄는 점이 한 몫했던 부분도 있었다. 이후 계약 연장을 한 뒤에 첼시가 빅이어와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얻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본인의 기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됐지만 빅이어와 유로파 리그를 얻는 행운까지 겹쳤다.

이후 무리뉴의 첼시 2기까지 딱 겹쳐오면서 최종 9년간 첼시에 몸담으면서 39살까지 첼시에서 뛴 레전드아닌 레전드가 되었고[3] 이를 바탕으로 결국은 은퇴하자마자 첼시의 코치직까지 꿰찼으니 축구계에서 실력이나 경력 대비 이 보다 더 좋은 코스를 밟는 사람은 찾기 어려울 정도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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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2024-25 시즌 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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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FC 2024-25 시즌 스태프
<rowcolor=#fff> 직위 국적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감독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초 마레스카 Enzo Maresca [1]
수석 코치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윌리 카바예로 Willy Caballero [2]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대니 워커 Danny Walker [3]
경기 분석관 파일:스페인 국기.svg 하비에르 카바예로 Xavier Caballero
피트니스 코치 파일:스페인 국기.svg 마르코스 알바레스 Marcos Alvarez
세트피스 코치 파일:멕시코 국기.svg 베르나르도 쿠에바 Bernardo Cueva [4]
골키퍼 코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미켈레 데베르나르딘 Michele De Bernardin [5]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벤 로버츠 Ben Roberts [6][7]
골키퍼 보조 코치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제임스 러셀 James Russell [8]
육성 코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로베르토 비티엘로 Reberto Vitiello
임대 선수 코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를로 쿠디치니 Carlo Cudicini [9]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앤디 마이어스 Andy Myers
기술 멘토 파일:프랑스 국기.svg 클로드 마켈렐레 Claude Makélélé [10]
스카우트 책임자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샘 주웰 Sam Jewell
구단 정보
출처: 첼시 공식 웹사이트 / 최종 수정 일자: 2024년 6월 19일
[1] Head Coach[2] Assistant Head Coach[3] Coach. 1군의 일반적인 기술 및 전술 코치다.[4] 브렌트포드 FC에서 데려왔으며, 2024년 여름에 합류할 예정이다.[5] Goalkeeper Coach. 일반적인 골키퍼 코치다.[6] Academy Goalkeeping coordinator. 첼시 FC 아카데미 골키퍼 총괄.[7] 첼시 FC와 자매구단인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의 아카데미 골키퍼 총괄직도 겸한다.[8] Assistant Goalkeeper Coach. 골키퍼 코치의 지원 코치 역할이다.[9] Loan Player Technical Coach. 임대 선수들의 기술 코칭 및 매니징 역할이다.[10] Technical Mentor. 주로 아카데미 및 임대 선수들의 기술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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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날 일라리우는 벤치에 없었기 때문에 바로 출전하지는 못했다. 이 경기에서 쿠디치니 아웃 이후 골키퍼를 본 것은 수비수인 존 테리였다.[2] 대표적으로 2006년 10월 28일 열린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선방했다.[3]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일라리우의 훌륭한 인품, 태도와 팀에서 오랫동안 있었던 것을 감안해서 그런거지 실제로 팀의 레전드 선수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