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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FF>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제12대 데스포티스 Ησαύ Μπουοντελμόντ | 에사우 부온델몬티 | |
칭호 | 에사우 부온델몬티 (이탈리아어: Esau de' Buondelmonti, 그리스어: Ησαύ Μπουοντελμόντ) |
출생 | 미상 |
사망 | 1411년 2월 6일 (향년 불명) |
재위기간 | 1385년 ~ 1411년 2월 6일 |
가문 | 부온델몬티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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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피로스 전제군주국 제12대 데스포티스.2. 생애
피렌체의 귀족 마넨티 부온델몬티와 코린트 공국의 공주 라파 아차이올리의 아들이다. 그는 일찍이 그리스로 와서 그리스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1379년 요안니나에서 이피로스 데스포티스를 칭하던 토마 프렐류보비치와 맞서다 붙잡혔다. 그 후 수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1385년 2월 3개월간 이피로스의 여군주로 활동하던 마리아 앙겔리나와 결혼한 뒤 신임 군주가 되었다. 그는 토마 프렐류보비치에게 추방당했던 귀족들을 복귀시키고, 역시 토마에게 추방됐던 대주교 마테오를 복직시켰다. 또한 밀과 과일 등 여러 생필품에 부과된 특별세를 폐지함으로써 민심을 다독였다.한편, 그는 평화를 추구하여 알바니아 부족과의 전쟁을 종식하려 했고, 동로마 제국에 사절을 보내 종주권을 인정할 테니 자신의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청했다. 1386년, 동로마 제국은 요안니나로 사절을 보내 그에게 데스포티스의 칭호를 수여했다. 하지만 알바니아 부족과의 평화 협상은 진전되지 못했고, 그존 슈파타가 요안니나를 포위하여 수개월간 공격하는 걸 가까스로 막아내기도 했다. 이에 오스만 술탄국에 구원을 청하기로 하고, 1386년 술탄 무라트 1세를 찾아가 충성을 맹세했다. 1389년 무라트 1세가 1차 코소보 전투 직후 암살당하자, 알바니아 부족들은 또다시 요안니나를 침략했다. 그는 새 술탄 바예지트 1세에게 구원을 청했고, 바예지트 1세가 급파한 오스만군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 오스만 사령관 에브레노스와 함께 요안니아 부족들을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1394년 12월 마리아 앙겔리나가 사망하자, 1396년 1월 그존 슈파타의 딸 이리니와 결혼했다. 이렇게 해서 입지를 다진 그는 더 이상 오스만 술탄국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하고, 오스만군을 축출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벌였다. 1399년 지역의 패권을 확립하기 위해 몇몇 알바니아 부족의 지원을 받고 아내의 처남인 지로카스터르의 그존 제네비시를 공격했다. 그러나 전투는 참패로 끝났고, 그는 제네비시에게 사로잡혔다. 1400년 베네치아의 중재 덕분에 영토 일부를 떼주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1402년경 이리니 슈파타와 이혼하였고, 세르비아 제타의 영주 듀라드 1세 발시치의 딸 예브도키야 발시치와 결혼하여 아들 조르조 부온델몬티를 낳았지만 1411년 2월 6일 사망했다. 예브도키야는 어린 아들을 이피로스의 신임 군주로 선임하고 본인은 섭정이 되려고 했지만, 그녀가 세르비아계 귀족과 결혼하려 한다는 걸 파악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재위 20일만에 쫓겨났다. 그 후 예브도키야와 조르조는 라구사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조용히 살다 죽었고, 이피로스 귀족들은 토코 가문의 카를로 1세 토코를 새 군주로 선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