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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선수 경력/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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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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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경찰 야구단 시절




1. 시즌 전

3월 14일 시범경기 kt전에서,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의 개장 첫 홈런을 쳤다. 경기 역시 두산이 6-3으로 승리.

2. 페넌트레이스

2.1. 3월 ~ 4월

3월 29일 오재원의 투런포에 이어 바뀐 투수 노성호를 상대로 시즌 1호 솔로홈런을 기록했다. 팀도 4:1로 승리.

4월 1일에도 쉐인 유먼을 상대로 솔로포를 기록, 시즌 2호포를 쏘아올렸다.

2.2. 5월

2.3. 6월

6월 27일 유희관 VS 양현종의 빅매치에서 2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두산의 9:4 승리에 일조했다. 이 경기를 기준으로 14홈런 48타점을 기록중이다. 팀내 타격성적도 최상위권이고 리그전체를 보더라도 수준급 성적... 인데 강민호가 75억 값 그 이상을 해버리는 몬스터급 페이스라 골글은 불투명해보인다.

2.4. 7월

2.5. 8월

8월 7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5타점을 기록, 팀 승리에 기여하였다.

2.6. 9~10월

9월 12일에는 2회말 무사 1, 2루에서 번트를 대다가 kt 투수 엄상백에게 노바운드로 잡힌 것도 모자라서 2루 주자 김현수와 3루 주루코치까지 뻘짓을 하는 바람에 번트 플라이로 기록된 번트 삼중살이 실현되고 말았다.

9월 19일 한화전에서는 한화의 '창조수비'역대급 설계에 당했다(?). 4회초 1루에 출루한 상황에서, 홍성흔이 평범한 2루 땅볼을 친 듯 했으나 이걸 2번이나 놓치고 그 사이에 3루까지 달렸다. 이후 한화 수비진이 1루까지 간 홍성흔을 잡기 위해 송구했으나 이것도 놓치자 내친김에 양의지는 홈까지 달렸고, 홈에서 태그 아웃. 결과만 놓고 보면 어찌되었든 한화로선 아웃은 성공했고 양의지는 안그래도 포수인데 전 루를 전력질주하느라 더 체력을 소모한 셈이 되었다. 이를 다룬 영상을 직접 보자.

9월 24일 롯데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대타로 출장하여 바뀐 투수 이명우의 초구를 통타해 시즌 20호 홈런을 때려냈다! 특유의 시크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이 인상적. '10시즌에 혜성같이 등장했던 신인 시절의 장타력을 다시 보여줬다.

3. 포스트 시즌

그리고 준PO 4차전에서 팀의 대 역전승을 이끄는 2루타를 때려내며 4차전 MVP가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1014 대첩 참조.

최종 성적은 132경기 출장 타출장 .326/.405/.523에 20홈런 93타점. 다른 해였다면 골든글러브는 따 놓은 당상이었겠지만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낸 강민호가 타율만 1푼 5리 낮을 뿐 OPS에서 1할 3푼 앞서고 홈런에서 15개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수상이 요원하다.

PO 2차전에서 나성범의 파울타구에 맞아 부상을 당하게 되었는데, 일단 자신의 타석까지는 소화했으나 그 이후 최재훈과 교체되었다. 일단 발가락 미세골절 판정을 받게 되어 선발 출장은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4, 5차전에 선발 출장하였고 한국시리즈 경기도 모두 선발로 뛰었다. 아픔을 견디고 의지로 버티며 PO 5차전에서 3타수 1안타 1홈런 2타점 1득점 1볼넷으로 활약하고 데일리 MVP를 수상하였다. 팬들의 반응은 당연히 2013년과 정반대.

개인 커리어하이 시즌과 팀의 우승에 일조한 덕분인지, 지난 해에 이어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그러나 성적에서 경쟁자였던 강민호가 타격 면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둔지라 논란이 되었다.

골절된 발가락이 완벽하게 나을 수 없다고 한다.

시즌 후에 있던 2015 프리미어 12에서는 처음으로 성인대표팀에 명단을 올렸으며 8강 쿠바전에서는 쐐기홈런을 치는 등 여러 역할을 했다.[1]

4.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양의지가 친 이 홈런은 시드니 올림픽에서 홈런을 친 홍성흔 이후 15년만에 나온 포수의 홈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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