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제19대 국회의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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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 강기윤 | 이주영 | 안홍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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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갑 | 김해 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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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 양산 | |||
김한표 | 윤영석 | 공석 | 신성범 | |
* 의령·함안·합천 조현룡 의원직 상실 (2015.1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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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폐지된 선거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580009><tablebgcolor=#580009> | 양산시 양산시 전역 Yangsan | }}} | |||
<colbgcolor=#580009><colcolor=#fff> 선거인 수 | 267,367명 (2012) | |||||
상위 행정구역 | 경상남도 | |||||
하위 행정구역 |
| |||||
신설년도 | 1996년 | |||||
이전 선거구 | 양산군 | |||||
이후 선거구 | 양산시 갑, 양산시 을 | |||||
국회의원 | [[새누리당|]] | 윤영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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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양산시를 관할하는 선거구로 1996년에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면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양산시라는 선거구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양산신도시와 물금읍 개발에 힘입어 양산시의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양산시 갑과 양산시 을로 분구되면서 폐지되었다.낙동강 벨트에 속한 곳 중 하나로 경상남도에선 김해시와 함께 다른 영남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강한 편이다. 그러나 친노, 친문 계파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김해시에 비하면 그 정도가 살짝 약한 편이어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노무현 정권에서 비서관을 지냈던 송인배 후보가 무려 4번이나 도전했지만 매번 근소한 차이로 석패하여 이 선거구가 폐지될 때까지 결국 의석 배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민주당계 정당이 비로소 양산시에 입성하는데 성공한 건 선거구가 분구된 이후의 일이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동서 간 정치 지형이 다른 곳으로 유명한데 양산신도시로 대표되는 서부 양산 지역과 웅상으로 대표되는 동부 양산 지역은 같은 양산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치 지형이 판이하게 다르다. 신도시가 들어서 있는 서부 양산 지역은 비교적 민주 정당 후보가 보수 정당 후보와 경합을 벌이고 있지만 도농복합지역인 동부 양산 즉, 웅상 지역은 보수세가 압도적으로 강한 곳이었다.[1] 그 때문에 민주 정당 후보들은 서부 양산 신도시 지역에서 경합을 벌이다가 웅상 지역에서 쏟아진 보수 정당 후보 몰표에 엿을 먹고 낙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선거구의 마지막 국회의원은 새누리당 윤영석이었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
<rowcolor=#fff> 대수 | 당선인 | 당적 | 임기 |
13대 | 김동주 | [[통일민주당|]] | 1988년 5월 30일 ~ 1992년 2월 26일 |
14대 | 나오연 | [[민주자유당|]] | 1992년 5월 30일 ~ 1996년 5월 29일 |
15대 | [[신한국당|]] | 1996년 5월 30일 ~ 2000년 5월 29일 | |
16대 |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 |
17대 | 김양수 |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18대 | | | |
박희태[3] | 2009년 10월 28일 ~ 2012년 5월 29일 | ||
19대 | 윤영석 | [[새누리당|]]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
3. 양산군 (1988 ~ 1996)
1973년 양산군에 병합되어 1995년 부산에 편입된 舊 동래군, 現 기장군을 포함한 영역이다.3.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양산군 양산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나오연(羅午淵) | 36,604 | 2위 |
| 48.71% | 낙선 | |
2 | 김동주(金東周) | 38,537 | 1위 |
[[통일민주당|]] | 51.28%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92,109 | 투표율 82.65% |
투표 수 | 76,128 | ||
무효표 수 | 987 |
3.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양산군 양산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나오연(羅午淵) | 49,001 | 1위 |
[[민주자유당|]] | 59.23% | 당선 | |
2 | 오근섭(吳根燮) | 30,718 | 2위 |
[[통일국민당|]] | 37.13% | 낙선 | |
3 | 김대오(金大午) | 1,635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97% | 낙선 | |
4 | 허지성(許枝星) | 1,374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6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0,021 | 투표율 76.20% |
투표 수 | 83,801 | ||
무효표 수 | 1,073 |
4. 양산시 (1996 ~ 2012)
4.1.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양산시 양산시 일원[양산]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나오연(羅午淵) | 31,249 | 1위 |
[[신한국당|]] | 48.08% | 당선 | |
2 | 이미애(李美愛) | 4,199 | 4위 |
[[새정치국민회의|]] | 6.46% | 낙선 | |
3 | 박수근(朴壽根) | 4,409 | 3위 |
| 6.78% | 낙선 | |
4 | 박봉식(朴奉植) | 22,272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4.26% | 낙선 | |
5 | 박인(朴仁) | 2,861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4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8,275 | 투표율 61.30% |
투표 수 | 66,388 | ||
무효표 수 | 1,398 |
4.2.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양산시 양산시 일원[양산]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나오연(羅午淵) | 30,798 | 1위 |
| 47.81% | 당선 | |
2 | 정대근(鄭大根) | 5,769 | 4위 |
[[새천년민주당|]] | 8.95% | 낙선 | |
4 | 김정희(金正熙) | 8,907 | 3위 |
[[민주국민당(2000년)|]] | 13.82% | 낙선 | |
5 | 박봉식(朴奉植) | 10,700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6.61% | 낙선 | |
6 | 박인(朴仁) | 3,335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17% | 낙선 | |
7 | 손경락(孫慶洛) | 4,898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7.60%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6,162 | 투표율 51.78% |
투표 수 | 65,331 | ||
무효표 수 | 924 |
4.3.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양산시 양산시 일원[양산]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김양수(金陽秀) | 30,679 | 1위 |
| 35.87% | 당선 | |
2 | 전덕용(全德龍) | 1,156 | 8위 |
[[새천년민주당|]] | 1.35% | 낙선 | |
3 | 송인배(宋仁培) | 29,577 | 2위 |
[[열린우리당|]] | 34.58% | 낙선 | |
4 | 이성경(李星卿) | 2,135 | 6위 |
| 2.49% | 낙선 | |
5 | 김영진(金榮珍) | 4,286 | 5위 |
[[민주노동당|]] | 5.01% | 낙선 | |
6 | 김동주(金東周) | 9,720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1.36% | 낙선 | |
7 | 김정희(金正熙) | 2,004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34% | 낙선 | |
8 | 나오연(羅午淵) | 5,951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6.9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48,641 | 투표율 58.07% |
투표 수 | 86,315 | ||
무효표 수 | 807 |
||<-6><tablealign=center><bgcolor=#0095da><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95da> 제17대 총선 경남 양산시 개표 결과 ||
<colbgcolor=#eee,#353535> 정당 | 한나라당 | 열린우리당 | 무소속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김양수 | 송인배 | 김동주 | ||
득표수 (득표율) | 30,679 (35.87%) | 29,577 (34.58%) | 9,720 (11.36%) | +1,102 (△1.29) | 58.07% |
웅상읍 | 38.61% | 37.92% | 9.04% | △0.69 | 55.74 |
물금읍 | 34.95% | 33.17% | 11.97% | △1.78 | 58.39 |
동면 | 38.53% | 33.58% | 12.96% | △4.95 | 61.57 |
원동면 | 40.36% | 23.06% | 22.45% | △17.30 | 63.74 |
상북면 | 35.36% | 31.16% | 10.42% | △4.20 | 56.77 |
하북면 | 34.52% | 27.44% | 15.85% | △7.08 | 57.39 |
중앙동 | 35.43% | 34.06% | 12.71% | △1.38 | 57.79 |
삼성동 | 33.38% | 36.55% | 9.33% | ▼3.17 | 57.37 |
강서동 | 29.59% | 34.22% | 18.48% | ▼4.63 | 56.38 |
후보 | 김양수 | 송인배 | 김동주 | 격차 | |
부재자투표 | 23.52% | 34.98% | 7.89% | ▼11.46 |
4.4.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양산시 양산시 일원[양산]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2 | 허범도(許範道) | 26,802 | 1위 |
| 38.99% | 당선 | |
4 | 심경숙(沈鏡淑) | 7,159 | 3위 |
[[민주노동당|]] | 10.41% | 낙선 | |
5 | 김진명(金鎭明) | 2,250 | 6위 |
| 3.27% | 낙선 | |
6 | 김홍득(金洪得) | 1,198 | 7위 |
[[평화통일가정당|]] | 1.74% | 낙선 | |
7 | 송인배(宋仁培) | 4,793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6.97% | 낙선 | |
8 | 유재명(柳在명) | 22,937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3.37% | 낙선 | |
9 | 정병문(鄭秉文) | 3,585 | 5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2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71,714 | 투표율 40.48% |
투표 수 | 69,513 | ||
무효표 수 | 789 |
4.5. 2009년 재보궐선거
양산시 양산시 일원[양산]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희태(朴熺太) | 30,801 | 1위 |
| 38.13% | 당선 | |
2 | 송인배(宋仁培) | 27,502 | 2위 |
[[민주당(2008년)|]] | 34.05% | 낙선 | |
5 | 박승흡(朴昇洽) | 2,836 | 5위 |
[[민주노동당|]] | 3.51% | 낙선 | |
7 | 김상걸(金相杰) | 2,436 | 6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01% | 낙선 | |
8 | 김양수(金陽秀) | 11,162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3.82% | 낙선 | |
9 | 김용구(金勇久) | 443 | 8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54% | 낙선 | |
10 | 김진명(金鎭明) | 546 | 7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0.67% | 낙선 | |
11 | 유재명(柳在명) | 5,033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6.2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84,691 | 투표율 43.91% |
투표 수 | 81,103 | ||
무효표 수 | 344 |
||<-6><tablealign=center><bgcolor=#0095da><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0095DA> 2009년 재보선 경남 양산시 개표 결과 ||
전임자 허범도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인해 치러진 선거이다. 한나라당에선 당 대표였던 박희태가 양산시 출마를 선언했는데 이 때문에 이곳에서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양수가 반발해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에 나섰다. 박근혜의 특보를 지낸 친박 정치인 유재명은 박심을 등에 업고 친이계 중진 박희태 대표에 각을 세우면서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한편, 이곳에서 2차례 도전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송인배 후보는 민주당으로 복당했고 다시 단수 공천을 받아 3번째로 출마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에서도 박승흡 후보가 출마하여 결국 보수, 진보 양 진영 모두 분열되는 흥미로운 상황에 놓였다. 그 밖에도 여러 군소 무소속 후보들이 출마하여 무려 8명이나 되는 후보들이 난립하였다.<colbgcolor=#eee,#353535> 정당 | 한나라당 | 민주당 | 무소속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박희태 | 송인배 | 김양수 | ||
득표수 (득표율) | 30,801 (38.13%) | 27,502 (34.05%) | 11,162 (13.82%) | +3,299 (△4.08) | 43.91% |
물금읍 | 36.53% | 38.42% | 11.98% | ▼1.89 | 43.80 |
동면 | 38.64% | 30.97% | 17.50% | △7.67 | 44.93 |
원동면 | 53.25% | 18.76% | 14.30% | △34.49 | 56.96 |
상북면 | 41.22% | 26.61% | 14.84% | △14.61 | 46.49 |
하북면 | 31.36% | 18.43% | 6.63% | △12.93[9] | 51.38 |
중앙동 | 34.48% | 40.47% | 12.84% | ▼5.99 | 45.70 |
삼성동 | 39.87% | 36.17% | 11.58% | △3.70 | 41.30 |
강서동 | 33.53% | 33.50% | 21.07% | △0.03[10] | 47.45 |
서창동 | 37.32% | 35.01% | 18.25% | △2.31 | 37.62 |
소주동 | 40.09% | 33.81% | 15.41% | △6.28 | 38.24 |
평산동 | 44.04% | 34.08% | 12.66% | △9.96 | 39.06 |
덕계동 | 42.59% | 33.67% | 14.20% | △8.92 | 38.49 |
후보 | 박희태 | 송인배 | 김양수 | 격차 | |
부재자투표 | 36.30% | 26.40% | 15.41% | △9.90 |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실상 박희태 VS 송인배 VS 김양수 3파전으로 압축되었다. 과연 관록의 박희태가 당선될 것인지 송인배의 대반란이 성공할 것인지가 주목되었다.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 김양수의 표 분산으로 선거는 상당히 접전으로 전개되었지만 결국 최종 개표 결과 한나라당 박희태 후보가 38.13% : 34.05%로 민주당 송인배 후보를 득표율 4.08%, 득표 수 3,299표 차란 근소한 격차로 꺾고 당선되었다. 송인배 후보로서는 크게 선전했지만 또 다시 석패하는 불운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6선 고지에 오른 박희태 의원은 이를 발판으로 삼아 18대 국회 후반기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 올랐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박희태 후보는 물금읍, 하북면, 중앙동 3곳을 제외한 모든 동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먼저 동면에선 313표 차, 원동면에선 673표 차, 상북면에선 878표 차로 승리했다. 하북면에선 송인배 후보를 525표 차로 이겼으나 이곳의 1위는 그가 아니라 무소속 김상걸 후보였다. 그리고 삼성동에선 265표 차로 승리했고 강서동에선 단 1표 차로 간신히 이겼다. 그리고 웅상 지역인 서창동에선 162표 차, 소주동에서 323표 차, 평산동에서 742표 차, 덕계동에서 318표 차로 승리했다. 그 밖에 부재자투표에서도 289표 차로 승리했다. 반면, 송인배 후보는 물금읍에서 225표 차, 중앙동에서 965표 차로 승리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4.6.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양산시 양산시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윤영석(尹永碩) | 56,808 | 1위 |
[[새누리당|]] | 52.30% | 당선 | |
2 | 송인배(宋仁培) | 51,809 | 2위 |
[[민주통합당|]] | 47.6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204,259 | 투표율 53.72% |
투표 수 | 109,724 | ||
무효표 수 | 1,107 |
||<-8><tablealign=center><bgcolor=#c9252b><tablebordercolor=#c9252b><tablebgcolor=#fff,#191919> 19대 총선 경남 양산시 개표 결과 ||
전임 국회의원이었던 박희태가 돈봉투 살포 사건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한 것은 물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에선 새 인물을 공천해야 했다. 그 결과 원동면 출신의 윤영석 후보가 공천을 받았다. 한편, 민주통합당에선 노무현 정권 비서관 출신의 송인배 후보가 다시 단수공천을 받아 4번째 도전에 나섰다. 야권 연대를 통해 다른 당에서는 공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여야 후보 1 : 1 단판 승부로 결정되었다. 과연 새누리당이 양산신도시 건설로 점점 강해지는 민주당 지지세를 누르고 지역구 수성에 성공할지 송인배 후보의 3전 4기가 이루어질지 주목되었다.<colbgcolor=#eee,#353535> 정당 | 새누리당 | 민주통합당 | 격차 (1위/2위) | 투표율 (선거인/표수) |
후보 | 윤영석 | 송인배 | ||
득표수 (득표율) | 56,808 (52.30%) | 51,809 (47.69%) | +4,999 (△4.61) | 53.72% |
물금읍 | 49.99% | 50.01% | ▼0.02[11] | 55.64 |
동면 | 55.37% | 44.63% | △10.74 | 54.32 |
원동면 | 81.26% | 18.74% | △62.52 | 62.41 |
상북면 | 59.36% | 40.64% | △18.72 | 53.34 |
하북면 | 65.76% | 34.24% | △31.52 | 52.99 |
중앙동 | 59.53% | 40.47% | △19.06 | 49.47 |
양주동 | 44.76% | 55.24% | ▼10.48 | 60.65 |
삼성동 | 50.35% | 49.65% | △0.70 | 50.05 |
강서동 | 49.30% | 50.70% | ▼1.40 | 53.28 |
서창동 | 49.06% | 50.94% | ▼1.88 | 47.90 |
소주동 | 51.04% | 48.96% | △2.08 | 47.83 |
평산동 | 52.32% | 47.68% | △4.64 | 49.91 |
덕계동 | 54.37% | 45.63% | △8.74 | 51.11 |
후보 | 윤영석 | 송인배 | 격차 | |
국내부재자투표 | 52.54% | 47.46% | △5.08 | |
국외부재자투표 | 43.51% | 56.49% | ▼12.98 |
하지만 개표 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새누리당 윤영석 후보가 52.3% : 47.69%로 민주통합당 송인배 후보를 득표율 4.61%, 득표 수 4,999표 차라는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며 지역구 수성에 성공했다. 결국 송인배 후보는 4번째 도전에서도 고배를 마시고 말았던 셈이다. 그저 김해시 갑의 민홍철 후보, 김해시 을의 김경수 후보에 이어 경남 지역 득표율 3위를 기록했다는 것 외에는 별 의미를 둘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도 이들 중에서 실제로 당선된 것은 김해시 갑의 민홍철 후보 뿐이었고 그 역시도 상대 진영의 표 분산 덕에 간신히 이긴 것이었다. 그만큼 지역주의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선자 윤영석 후보는 물금읍, 양주동, 강서동 등 신도시 지역과 웅상 지역 중 서창동까지 총 4곳을 제외한 나머지 읍, 면, 동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윤 후보는 동면에서 647표 차, 고향인 원동면에선 1,268표 차로 승리했다. 상북면에선 1,304표 차, 하북면에선 1,332표 차로 승리했으며 중앙동에서 987표 차, 삼성동에서 62표 차로 승리했다. 그 밖에 웅상 지역에서도 소주동에서 146표 차, 평산동에서 553표 차, 덕계동에서 402표 차로 승리했다. 그 밖에 국내부재자투표에서 211표 차로 승리했다. 반면에 2위 송인배 후보는 물금읍에서 단 4표 차, 양주동에선 무려 1,655표 차로 승리했으며 강서동에서 57표 차, 서창동에서 180표 차로 승리하는 데 그쳤다. 그 밖에 국외부재자투표에서 17표 차로 승리했다.
종합해 보면 당선자 윤영석 후보는 원동면, 상북면, 하북면 등 서부 양산의 농촌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고 신도시 지역에서는 경합 열세, 웅상 지역에서는 경합 우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도 신도시 지역에 청년층을 비롯한 외지 출신 인구가 유입되면서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과 송인배 후보가 웅상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그곳에서 표밭을 다졌던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송인배 후보 입장에선 신도시 지역인 물금읍과 양주동 등지에서 표차를 충분히 벌렸어야 했는데 애석하게도 2012년 당시는 아직 물금신도시가 건설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이었고[12] 그 때문에 물금읍에서 표 차를 크게 벌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점이 송인배 후보에겐 불운한 점이었다.
이 선거를 끝으로 양산시는 인구 상한선 초과로 인해 갑/을 선거구로 분구되었다.
[1]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갑/을 선거구로 분구된 이후엔 신도시 위주의 서부 양산인 양산시 갑은 2번 모두 보수 정당이 수성했고 웅상 위주의 동부 양산인 양산시 을은 2번 모두 민주 정당이 차지했다.[2] 동생과 회계책임자가 해당 선거에서 선거법을 위반하여 2009년 6월 23일 의원직을 상실했다.[3] 2009년 10월 28일 재보궐선거에서 당선. 기존 지역구였던 남해하동에서 공천 탈락하는 바람에 18대 총선에 나가지 못하다가 재보궐선거로 내리 6선을 달성했다. 그리고 후반기 국회의장을 맡았다. 그러나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중도 사퇴했고, 뒤이어 2014년 캐디를 성추행하여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수강 명령을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항목 참조.[양산] 웅상읍, 물금읍, 동면, 원동면, 상북면, 하북면, 중앙동, 양주동, 삼성동, 강서동[양산] 웅상읍, 물금읍, 동면, 원동면, 상북면, 하북면, 중앙동, 양주동, 삼성동, 강서동[양산] 웅상읍, 물금읍, 동면, 원동면, 상북면, 하북면, 중앙동, 양주동, 삼성동, 강서동[양산] 웅상읍, 물금읍, 동면, 원동면, 상북면, 하북면, 중앙동, 양주동, 삼성동, 강서동[양산] 물금읍, 동면, 원동면, 상북면, 하북면, 중앙동, 양주동, 삼성동, 강서동,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9] 참고로 이곳의 1위는 득표율 미달로 등재되지 못했던 무소속 김상걸 후보였다. 김상걸은 당선자 박희태보다도 218표 더 많이 득표했다. 그래서 1위 표시를 하지 않는다.[10] 단 1표 차로 승패가 갈렸다.[11] 단 4표 차이였다.[12] 실제로 물금신도시의 전철역인 부산 도시철도 2호선 증산역이 개통된 것이 2015년 9월 24일이었는데 양산선이 개통되고 7년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렇게 증산역이 늦게 개통된 것에는 물금신도시 입주가 되지 않았던 점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