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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 | ||||
음악 | 필립 글래스 | |||
대본 | 크리스토퍼 햄튼(Christopher Hampton)[1] | |||
원작자 | 존 맥스웰 쿠체(John Maxwell Coetzee) | |||
원작 |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 |
원작 | ||||
작가 | 존 맥스웰 쿠체(John Maxwell Coetzee) |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 | ||||
사운드 오브 보이스 (2003) | → | 야만인을 기다리며 (2005) | → | 애퍼매톡스 (2007) |
미국의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
남아공 출신의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맥스웰 쿠체(John Maxwell Coetzee)가 쓴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원작이다.
1980년에 발표된 원작 소설을 필립 글래스가 오페라로 만들겠다며 작업에 착수한 것은 1991년이었지만, 14년이 지난 2005년에서야 이 작품은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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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맥스웰 쿠체는 누구인가?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 존 맥스웰 쿠체는 영미권 최대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등 ‘노벨상을 제외한 굵직한 상은 모두 탔다’는 평을 들으며 매년 노벨문학상 최상위 후보로 거론돼 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쿠체의 작품은 정교한 구성과 풍부한 화법으로 잔인한 인종주의와 서구 문명의 위선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진지하게 의심해 왔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남아공 작가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두 번째로 1991년 나딘 고디머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쿠체가 지닌 국제적 명성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독자층이 적었던 남아공 문학계도 그의 수상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선배 수상작가인 나딘 고디머는 쿠체의 수상 소식을 듣고 “그는 나의 좋은 친구며 위대한 작가다. 그가 두 번째로 이 상을 탄 것은 남아공의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쿠체의 수상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쉬운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인 호레이스 엥달은 “작품의 다양성과 고르게 높은 수준으로 볼 때 쿠체가 문학계에 끼친 공헌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4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우스터에서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쿠체는 부모로부터 아프리칸스어와 영어 등 2개 언어를 동시에 배우며 성장했다.
1964년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전 세계를 돌며 다양한 문화체험을 쌓았다. 언어학 연구로 방향을 전환해 명문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1년 고국인 남아공으로 돌아간 뒤에도 뉴욕주립대(버펄로), 존스홉킨스대, 하버드대 등에서 문학과 어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생활을 하며 창작에 몰두해왔다.
1974년 첫 작품 ‘더스크랜즈’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현실의 직접 고발에 비중을 둔 나딘 고디머와는 사뭇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도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등의 대립항이 설정된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체제에서의 삶을 직접 묘사하는 것을 거부하며 남아공의 치욕스럽고 복잡다단한 현대사를 완곡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그의 대표작이자 부커상 수상작인 ‘추락’ 역시 흑백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들의 내면 갈등 및 사회상의 간접적인 묘사를 통해 주제를 차츰 선명하게 떠올리는 기법을 드러내고 있다.
느린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들의 면모에서 드러나듯 그는 감정을 겉으로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 조용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두 차례의 부커상 시상식에도 불참해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의 이름조차도 ‘존 맥스웰 쿠체’ ‘존 마이클 쿠체’ 등으로 엇갈려 심지어 ‘존 미스터리 쿠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다.
그와 절친한 남아공 작가 라이언 메일런은 “쿠체는 거의 사제(司祭)와 같이 자기를 단련하며 창작에 헌신한다. 흡연이나 음주, 육식도 하지 않으며, 매일 자전거를 탄 뒤 아침마다 집필용 책상에 단정히 앉는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1984년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교수로 취임한 그는 지난해 정년퇴직한 뒤 호주의 애들레이드로 이주해 생활해 왔으며 올 가을학기부터 미국 시카고대에서 플라톤과 시인 월트 휘트먼을 강의하고 있다. 첫 부인인 필리파와는 1980년대에 헤어졌으며 1남1녀 중 아들은 사고로 사망했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으로는 대표작인 ‘추락’(동아일보사)과 ‘야만인을 기다리며’(들녘),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책세상) 등이 있다.
- 유윤종, '2003 노벨문학상' 쿠체의 삶과 문학, 동아일보, 2003년 10월 3일
스웨덴 한림원은 “쿠체의 작품은 정교한 구성과 풍부한 화법으로 잔인한 인종주의와 서구 문명의 위선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진지하게 의심해 왔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남아공 작가로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두 번째로 1991년 나딘 고디머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쿠체가 지닌 국제적 명성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독자층이 적었던 남아공 문학계도 그의 수상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선배 수상작가인 나딘 고디머는 쿠체의 수상 소식을 듣고 “그는 나의 좋은 친구며 위대한 작가다. 그가 두 번째로 이 상을 탄 것은 남아공의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쿠체의 수상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쉬운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인 호레이스 엥달은 “작품의 다양성과 고르게 높은 수준으로 볼 때 쿠체가 문학계에 끼친 공헌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40년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우스터에서 농장주의 아들로 태어난 쿠체는 부모로부터 아프리칸스어와 영어 등 2개 언어를 동시에 배우며 성장했다.
1964년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전 세계를 돌며 다양한 문화체험을 쌓았다. 언어학 연구로 방향을 전환해 명문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1년 고국인 남아공으로 돌아간 뒤에도 뉴욕주립대(버펄로), 존스홉킨스대, 하버드대 등에서 문학과 어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생활을 하며 창작에 몰두해왔다.
1974년 첫 작품 ‘더스크랜즈’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현실의 직접 고발에 비중을 둔 나딘 고디머와는 사뭇 다른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도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등의 대립항이 설정된다. 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체제에서의 삶을 직접 묘사하는 것을 거부하며 남아공의 치욕스럽고 복잡다단한 현대사를 완곡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그의 대표작이자 부커상 수상작인 ‘추락’ 역시 흑백갈등을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들의 내면 갈등 및 사회상의 간접적인 묘사를 통해 주제를 차츰 선명하게 떠올리는 기법을 드러내고 있다.
느린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들의 면모에서 드러나듯 그는 감정을 겉으로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 조용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두 차례의 부커상 시상식에도 불참해 노벨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의 이름조차도 ‘존 맥스웰 쿠체’ ‘존 마이클 쿠체’ 등으로 엇갈려 심지어 ‘존 미스터리 쿠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다.
그와 절친한 남아공 작가 라이언 메일런은 “쿠체는 거의 사제(司祭)와 같이 자기를 단련하며 창작에 헌신한다. 흡연이나 음주, 육식도 하지 않으며, 매일 자전거를 탄 뒤 아침마다 집필용 책상에 단정히 앉는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1984년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교수로 취임한 그는 지난해 정년퇴직한 뒤 호주의 애들레이드로 이주해 생활해 왔으며 올 가을학기부터 미국 시카고대에서 플라톤과 시인 월트 휘트먼을 강의하고 있다. 첫 부인인 필리파와는 1980년대에 헤어졌으며 1남1녀 중 아들은 사고로 사망했다.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작품으로는 대표작인 ‘추락’(동아일보사)과 ‘야만인을 기다리며’(들녘),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책세상) 등이 있다.
- 유윤종, '2003 노벨문학상' 쿠체의 삶과 문학, 동아일보, 2003년 10월 3일
2. 존 맥스웰 쿠체의 작품세계는?
쿠체는 남아공 작가들 가운데 예외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 왔다. 그는 억압받는 정치적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는 그 이데올로기의 실체와 허상을 포스트모더니즘 방식으로 해체했다는 평을 얻어왔다.
남아공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 2년 후인 1987년에 작가가 한 이야기는 그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소설과 역사가 같은 풀밭 위에서 풀을 뜯으며 각자의 할 일만 하는… 현재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압력 밑에서는, 소설은 ‘보조적인 역할’ 혹은 ‘경쟁’이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길 외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흑인들의 해방투쟁에 극단적인 폭력으로 맞섰던 시기로, 그만큼 작가의 현실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쿠체는 “소설이란 천편일률적으로 현실을 재단해서는 안 되고, 자체의 패러다임과 신화를 전개해야 하며, 어쩌면 역사의 신화적 상태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쿠체는 보다 자유로운 담론의 공간이 필요했고, 그런 그에게 남아공은 분명 숨 막히는 곳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세계는 이런 편협한 공간을 자양분으로 구축됐다. 쿠체는 아파르트헤이트 이데올로기, 그와 관련된 남아공의 현실을 하나의 ‘변종’으로서가 아니라 ‘식민주의-후기식민주의-신식민주의’에서 흔히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했다.
‘더스크랜즈’에서 시작해 ‘마이클 K’를 거쳐 ‘추락’에 이르는 쿠체의 소설들이 모두 우의(알레고리)적인 형태를 띠고 서구의 담론 즉 페미니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인식론에 바탕을 둔다.
쿠체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소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는 대가(도스토예프스키)가 아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가는 내용으로 아들의 자살이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편력이 투영된 듯 보인다.
쿠체에게 소설은 ‘사유의 한 방식’이다. 그는 단문 중심의 현재형 내러티브를 즐겨 사용한다. 부조리한 현실을 그리는 가운데 깊은 사유와 해석을 담아내 난해하다는 평도 자주 듣는다. 나딘 고디머는 쿠체에 대해 “종달새처럼 날아올라 매처럼 내려다보는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 조이영, '2003 노벨문학상' 쿠체의 삶과 문학, 동아일보, 2003년 10월 3일
남아공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 2년 후인 1987년에 작가가 한 이야기는 그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소설과 역사가 같은 풀밭 위에서 풀을 뜯으며 각자의 할 일만 하는… 현재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압력 밑에서는, 소설은 ‘보조적인 역할’ 혹은 ‘경쟁’이라는 두 가지 선택의 길 외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흑인들의 해방투쟁에 극단적인 폭력으로 맞섰던 시기로, 그만큼 작가의 현실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쿠체는 “소설이란 천편일률적으로 현실을 재단해서는 안 되고, 자체의 패러다임과 신화를 전개해야 하며, 어쩌면 역사의 신화적 상태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쿠체는 보다 자유로운 담론의 공간이 필요했고, 그런 그에게 남아공은 분명 숨 막히는 곳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품세계는 이런 편협한 공간을 자양분으로 구축됐다. 쿠체는 아파르트헤이트 이데올로기, 그와 관련된 남아공의 현실을 하나의 ‘변종’으로서가 아니라 ‘식민주의-후기식민주의-신식민주의’에서 흔히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식했다.
‘더스크랜즈’에서 시작해 ‘마이클 K’를 거쳐 ‘추락’에 이르는 쿠체의 소설들이 모두 우의(알레고리)적인 형태를 띠고 서구의 담론 즉 페미니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인식론에 바탕을 둔다.
쿠체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소설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는 대가(도스토예프스키)가 아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쳐가는 내용으로 아들의 자살이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편력이 투영된 듯 보인다.
쿠체에게 소설은 ‘사유의 한 방식’이다. 그는 단문 중심의 현재형 내러티브를 즐겨 사용한다. 부조리한 현실을 그리는 가운데 깊은 사유와 해석을 담아내 난해하다는 평도 자주 듣는다. 나딘 고디머는 쿠체에 대해 “종달새처럼 날아올라 매처럼 내려다보는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고 평한 바 있다.
- 조이영, '2003 노벨문학상' 쿠체의 삶과 문학, 동아일보, 2003년 10월 3일
3. 시놉시스
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는 압제자와 피압제자 간의 전쟁에 관한 끔찍한 알레고리다.4. 등장인물
배역 | 배역 영문명 | 역할 | 목소리 |
치안 판사 | Magistrate/Prefect | 제국 변경 소도시의 치안 판사 | 바리톤 |
졸 대령 | Colonel Joll | 제국 수도의 정보부 경찰 | 바리톤 |
만델 준위 | Warrant Officer Mandel | 제국 수도의 정보부 경찰 | 베이스 |
야만인 여자 | Barbarian Girl | 고문당한 야만인 여자 | 메조 소프라노 |
요리사 | Cook | 요리사[2] | 소프라노 |
5. 구성
1막번호 | 차례 | 제목 | 번역 제목 |
1 | Prelude | 전주곡 | |
2 | Scene One | "In fact, we never had a prison" | "사실 우리에게는 죄수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습니다."[3] |
3 | Scene Two | "Dreamscape No. 1" | "꿈의 정경 1번" |
4 | Scene Three | "You sent for me." | "너가 나에게 보냈다" |
5 | Scene Four | "You're working late." | "판사님은 늦게 일하고 계시군요" |
6 | Scene Five | "Normally speaking, we would never approve of torture..." | "보통 " |
7 | Scene Six[4] | "Take off your cap" | "모자를 벗으렴"[5] |
8 | Scene Seven | "Dreamscape No. 2" | "꿈의 정경 2번" |
9 | Scene Eight | "Do you like living in the town?" | "이 작은 도시에서 사는 게 마음에 드니?"[6] |
10 | Scene Nine | "...To demonstrate our strength to the barbarians" | "" |
11 | Scene Ten | "Did you have a good evening?" | "" |
12 | Scene Eleven | "Dreamscape No. 3" | "꿈의 정경 3번" |
13 | Scene Twelve | "What is it?" | "" |
14 | Scene Thirteen | "Can you see them? (Trip into the mountains) | "저 사람들이 보여? (산으로 이동)"[7] |
15 | Scene Fourteen | "Who gave you permission to desert your post?" | "당신은 누구의 허락을 받고 직무를 이탈했소?"[8] |
번호 | 차례 | 제목 | 번역 제목 |
1 | Scene One | "Here, In the dark" | "여기, 어둠 속에서" |
2 | Scene Two | "Dreamscape No. 4" | "꿈의 정경 4번" |
3 | Scene Three | "What is going on?" | "" |
4 | Prologue to Scene Four | 장면4의 프롤로그 | |
5 | Scene Four | "Perhaps you would be so kind" | "" |
6 | Scene Five | "Enemy, Barbarian Lover!" | "적이다, 야만인 내통자다!" |
7 | Scene Six | "So we're still feeding you well?" | "" |
8 | Scene Seven | "Dreamscape No. 5" | "꿈의 정경 5번" |
9 | Scene Eight | "Tell me, what has happened"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
10 | Scene Nine | "You don't have to go" | "너는 안 가도 돼" |
11 | Scene Ten | "Our town is beautiful" | "우리 도시는 아름다워" |
6. 위촉
독일 튀링겐주 에어푸르트(Erfurt)의 Erfurt Theater7. 초연
날짜: 2005년 10월 10일장소: 독일 튀링겐주 에어푸르트(Erfurt)의 Erfurt Theater
감독: Guy Montavon
지휘: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Dennis Russell Davies)
8. 리뷰
영국 가디언 ★★★★ 리뷰9. 공연 사진
[1] 유명한 연극 극작가이자 어톤먼트, 더 파더, 더 썬 등을 쓴 영화 각본가.[2] 야만인 여자가 마을에 있을 때, 부엌에서 같이 일했다. 극의 후반부에 치안 판사 앞에서 야만인 여자를 회고한다. 등장은 짧지만, 치안 판사와 야만인 여자와의 관계를 제3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또 야만인 여자의 존재는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마무리를 위해 아주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3] 왕은철의 번역본 문장을 조금 수정했다.(들녘, 2003) 치안 판사가 죨 대령에게 한 말이다. "여기에는 범죄도 별로 많지 않으며, 죄를 지을 경우 벌금형을 내리거나 강제노동을 시키는 게 보통입니다."[4] 야만인 여자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5] 왕은철의 번역본 문장이다.(들녁, 2003) 치안 판사가 야만인 여자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다.[6] 왕은철의 번역본 문장을 조금 수정했다.(들녘, 2003) 치안 판사가 야만인 여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야만인 여자는 "대부분은 좋아요. 할 일이 더 많으니까요."라고 말하면서도, "여동생이 보고 싶어요."라고도 했다. 치안 판사는 "정말로 네가 돌아가고 싶다면 데려다주마."라고 응답했다.[7] 왕은철의 번역본 문장이다.(들녁, 2003) 치안 판사가 야만인 여자에게 한 말이다. 산에서 만난 야만인 동족들이 눈에 보이냐는 뜻이다.[8] 왕은철의 번역본 문장이다.(들녁, 2003) 만델 준위가 치안 판사를 질책하면서 하는 말이다. "당신은 적과 반역적인 내통을 했소. 어째서 당신은 그들과 내통을 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