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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8:18:02

앨런 커비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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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앨런 커비시리
Alan Curbishley
본명 루웰른 찰스 커비시리
Llewellyn Charles Curbishley
출생 1957년 11월 8일 ([age(1957-11-08)]세)
잉글랜드 에식스주 포레스트 게이트[1]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74~1979)
버밍엄 시티 (1979~1983)
아스톤 빌라 (1983~1984)
찰튼 애슬레틱 (1984~1987)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1987~1990)
찰튼 애슬래틱 (1990~1993)
지도자 경력 찰튼 애슬레틱 (1991~2006)[2]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2006~2008)
풀럼 (2015 / 코치)

1. 개요2. 일생
2.1. 선수 시절2.2. 감독 시절
2.2.1. 찰튼 애슬레틱2.2.2. 웨스트햄 시절2.2.3. 풀럼 시절
2.3. 감독 스타일
3. 기록
3.1. 선수 기록3.2. 감독 기록

[clearfix]

1. 개요

영국(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및 축구감독이다.

2. 일생

2.1. 선수 시절

파일:external/img.thesun.co.uk/alan_curbishley_wes_130535a.jpg
웨스트햄 선수 시절 모습.

파일:external/www.sporting-heroes.net/13849-zoom.jpg
버밍엄 시절 모습.

파일:external/1ab64bf350551fda635d33fa0a1b74cde89821c14c48f0a0f408857bb1788956.jpg
아스톤 빌라 시절 모습.

파일:enkku393.jpg
찰튼 선수시절 모습.

1957년에 에섹스 주 포레스트 게이트에서 런던 항만 노동자의 5남 중 하나로[3] 태어나 웨스트 햄 역 인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7세 때인 1974년에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것을 시작으로 1993년 은퇴 때까지 버밍엄, 찰튼, 브라이튼 등 5개의 팀을 전전하며 평범한 선수생활을 보냈다. 특히 찰튼 시절인 1986년에는 2부 리그에서 준우승하여 팀을 오랜만에 1부 리그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2.2. 감독 시절

2.2.1. 찰튼 애슬레틱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303182-00004DDA00000CB2-782_634x395.jpg
1991년에 팀 동료인 스티브 그리트와 공동 감독으로 취임할 적의 모습.

1991년에 전임 감독이자 스승인 레니 로렌스가 9년만에 팀을 떠나자 동료인 스티브 그리트와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 1993년에는 선수 생활을 청산하고 감독직에 전념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는 그리트가 감독직을 사퇴하자 단독으로 팀을 지휘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3.bp.blogspot.com/Charlton+celebrate.jpg
그는 숀 뉴튼, 스콧 파커, 폴 콘체스키, 케빈 리스비, 스튜어트 발머, 마크 킨셀라, 스티브 브라운 등의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성하여 점차 전력을 올렸고, 마침내 1997/98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 4위로 마치고 플옵 결승에서 선더랜드 AFC를 상대로 4-4 동점을 기록했으나 페널티킥에서 7-6으로 이겨 8년만에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확정지었으나 1998/99 시즌에 선수들의 부상 등 악재로 인해 18위로 아쉽게 강등당했다.

파일:external/www.squawka.com/1965941-e1463481342179.jpg
강등 이후 경질설이 흘러나왔으나 구단은 그를 신뢰했고, 커비실리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팀을 다잡아 1999/2000 시즌에 2부 리그를 씹어먹고 우승하여 또다시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하였다.

이후 맷 홀랜드, 숀 바틀렛, 요나탄 요한슨 등의 깜짝 스타들을 배출하면서 중위권에서 놀았다. 특히 2002~2004년까지가 압권이었는데, 2002/03 시즌에는 초~중반에 6위까지 치고 올라가다 후반부엔 뒷심 부족으로 12위를 찍었으나, 2003/04 시즌에는 아스날이 무패우승으로 리그를 씹어먹던 상황에도 7위를 기록해 꽤 선전한 바 있다. 그리고 그가 물러나기 하루 전인 2006년 5월 7일에는 맨유 원정에 출전하여 찰턴의 레전드급 감독인 지미 시드의 729경기 기록을 경신한 바 있었다.

2.2.2. 웨스트햄 시절

파일:external/i.telegraph.co.uk/alan_curbishley_dea_791944c.jpg
찰턴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떠난 커비실리는 TV에 축구전문가로 잠시 출연하다 2006년 12월에 앨런 파듀가 팀을 강등권으로 내몬 책임을 지고 쫓겨나 찰튼으로 옮기자 바로 웨스트 햄의 감독이 되었고 얼마 안 가 찰턴은 파듀를 커비쉴리의 후임 감독으로 임명하여[4] 서로 감독을 맞바꾼 모양새가 되었다. 앨런 커비실리의 웨스트햄에서의 첫 경기는 12경기 무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맨유와의 홈경기였는데 주장 레오 코커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 승리를 마지막으로 레딩 FC에 0-6으로 패하는 등 11경기 연속 무승(3무8패)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선수단이 도박에 빠져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리버풀로 떠났다.

29라운드 토트넘 핫스퍼와의 홈경기에서 최악의 먹튀로 시즌 내내 득점이 하나도 없었던 카를로스 테베스는 그제서야 프리킥으로 시즌 첫 마수걸이 골을 신고한다. 테베스는 데뷔골에 2개의 어시스트를 추가하였고 종료 직전까지 3-2로 이기면서 팀은 10경기만에 무승에서 탈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추가시간에 베르바토프에 동점골을 허용한 후, 종료 직전에는 이영표의 태클로부터 시작된 역습에 의해 폴 스톨테리의 결승골로 역전을 허용해 3-4로 패배한다. 이날 경기결과로 웨스트햄은 5승 5무 19패에 꼴찌로 추락하여 잔류권인 17위와 10점차로 벌어졌고 #, 기적이 일어나야만 잔류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웨스트햄에 기적이 일어났다. 남은 9경기에서 30라운드인 블랙번 로버스와의 2-1 승리를 시작으로[5] 7승 2패를 기록하여 기적적으로 강등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중에는 아스날을 상대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사상 첫 패배를 안기는 1-0 승리도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최종전인데, 이제 웨스트햄은 승점 1점만 추가해도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짓는 상황. 그러나 상대팀은 우승을 확정지은 1위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고 장소도 원정팀의 무덤이라는 올드 트래포드. 만일 웨스트햄이 지고 위건 애슬레틱이 강등 라이벌인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승리하면 강등되는 상황. 웨스트햄은 시종일관 홈팀인 맨유에 밀렸지만 전반 종료 직전 터진 테베스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적지에서 맨유를 1-0으로 이기고 자력으로 프리미어리그 잔류를 확정짓게 된다. 테베스는 이날 결승골을 포함하여 마지막 10경기에서 7골을 득점하여 웨스트햄의 최악의 먹튀에서 강등에서 팀을 구해낸 영웅으로 바뀌게 된다.[6]

가까스로 강등을 피한 웨스트햄은 07/08시즌 10위로 안정적으로 중위권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마그누손 회장이 아이슬란드의 큰 은행인 랜즈방키 소유주 비요르골푸르 구드문드손에게 회장 자리를 넘겼고, 커비쉴리는 첼시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인 파울루 페레이라줄리아누 벨레티 중 하나를 영입하길 요구해왔으나 구단 측은 이들의 이적 협상을 성의 있게 진행하지 않고 대신 조지 매카트니안톤 퍼디난드를 선더랜드에 팔아버린 데에 불만을 품고 결국 리그 개막 3주만에 사임하였다.

특이한 사항이 있는데 찰턴 재임 기간에는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웨스트햄 재임 20개월 동안 3연승을 거두며 상대전적 3승1패를 기록했다. 2006-07 시즌 부임 첫 경기 승리와 잔류를 확정짓는 최종전 승리의 제물이 맨유였다.

2.2.3. 풀럼 시절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2551890-1AF8BB0000000578-436_634x412.jpg
한동안 야인으로 지낸 커비실리는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풀럼의 기술이사로 부임하였다가 2014년에 펠릭스 마가트가 부임한 뒤 2달만에 물러났다가 2015년 3월 5일에 킷 시몬스 감독에 의해 코치가 되었으나 그해 11월에 시몬스가 경질되자 같이 물러났다.

2.3. 감독 스타일

그는 강등위기 팀을 중위권에 안착시킬 정도로 나름 탁월한 지도력을 지녔으나, 이보다 가장 빛을 발하는 건 선수 스카우트 능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찰튼은 맨유같은 명문 클럽처럼 스타 선수를 영입할 재정형편이 못 되기 때문에 북유럽이나 아프리카 등지 제3세계 선수들을 영입했고, 당장의 성적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CEO스런 안목으로 키워냈다.

그 결과 요나단 요한슨이나 클라우스 옌슨, 숀 바틀렛 같은 선수들이 국가대표급 선수로 키워졌고, 폴 콘체스키와 스콧 파커도 2002 한일월드컵 때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3. 기록

3.1. 선수 기록

3.2. 감독 기록


[1] 현재는 런던 뉴엄 소속[2] 1995년 까지는 스티브 그리트와 공동 감독.[3] 형 빌은 록그룹 'The WHO'의 프로모터였다.[4] 이 둘 사이에 당시 수석 코치이던 레스 리드가 잠시 감독을 하다가 얼마 안가 파듀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5] 웨스트 햄의 역전골은 선을 완전히 넘지 않았지만 심판은 득점으로 인정하는 오심을 만들었다.#[6] 그리고 공교롭게도 카를로스 테베스는 최종전에서 자신의 골로 격침한 맨유로 이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