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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1 20:44:56

앤드루 시어

제35대 캐나다 연방하원의장
제2대 캐나다 보수당 대표
앤드루 제임스 시어
Andrew James Scheer
파일:Andrew Scheer profile image.jpg
<colbgcolor=#002855><colcolor=#fff> 출생 1979년 5월 20일 ([age(1979-05-20)]세)
캐나다 온타리오오타와
국적
[[캐나다|]][[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거주지 캐나다 서스캐처원리자이나 스토노웨이
현직 캐나다 보수당 연방하원 원내대표
캐나다 연방하원의원
재임기간 제35대 연방하원의장
2011년 6월 2일 ~ 2015년 12월 3일
서명 파일:앤드루 시어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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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855><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제임스 D. 시어[1]
어머니 메리 제라드라 테레즈
형제자매 자매 2명
배우자 질 라이언 (2003년 결혼)
자녀 5명
친척 처남 존 라이언[2], 스티브 라이언[3]
학력 임마큘라타 고등학교 (졸업)
오타와 대학교 (범죄학 · 정치학 · 사학 / 학사)
신체 193cm
종교 가톨릭
직업 정치인
소속 정당
의원 선수 7
지역구 서스캐처원주 리자이나-콰펠 }}}}}}}}}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정치 활동
3. 성향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이중 국적 논란
5. 선거 이력

[clearfix]

1. 개요

캐나다정치인.

개혁당과 그 후신인 캐나다 동맹을 거쳐 보수통합으로 출범한 캐나다 보수당 소속으로 활동 중이며, 연방하원 부의장과 의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보수당의 제2대 당대표로 선출되었으나 2019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이끄는 캐나다 자유당에 패한 뒤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림자 내각 각료로 선임되는 등 무난한 의정 활동을 이어가다, 제4대 당대표로 선출된 피에르 폴리에브 의원의 당직 인선에 따라 보수당 연방하원 원내대표로 임명되었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씨에서 알 수 있듯 독일계의 후손이나, 조상 중에 루마니아계도 있다고 한다. 오타와에 있는 기사회 고등학교[4]를 졸업했으며, 오타와 대학교에서 범죄학·정치학·역사학을 전공했다. 다만 학부 공부에 그리 열의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2008년이 되어서야 졸업했다.

졸업 후 중서부 내륙의 서스캐처원주에서 보험중개사 자격시험 공부를 하여 자격증을 취득해 일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혀왔으나, 훗날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중개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이수 과정의 4과목 중 1과목만 수강했기 때문에 자격증을 정식으로 취득한 적이 없었던 것.# 이는 2019년 연방 총선 선거운동 기간에 논란이 되어, 후술할 캐나다-미국 이중국적 논란과 함께 캐나다 보수당의 선거전략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2. 정치 활동

오타와 대학교 학부에 재학 중이던 1998년 보수 성향의 지역정당 '캐나다 개혁당'[5]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분열된 채로 자유당에 줄줄이 패하던 보수진영의 대통합을 지지하고 나섰다.[6] 자신이 속한 개혁당이 2000년 전국정당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캐나다 동맹'으로 재창당되자 여기에 다시 합류했고, 캐나다 동맹 소속인 래리 스펜서 연방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 후 2003년 캐나다 동맹진보보수당이 보수대통합의 대의를 내세워 합당, 캐나다 보수당을 창당하자 자연스럽게 보수당 소속이 되었다.

2004년 연방 총선에서 서스캐처원리자이나-콰펠 선거구에 보수당 후보로 출마했고, 35.8%(10,012표)를 득표해 지역구 현역인 론 E. 나이스트롬(Lorne Edmund Nystrom) 신민당 후보(32.7%, 9,151표)를 3.1%p차로 꺾고 당선되어 연방 하원에 처음으로 입성했다. 의정 활동과 지역구 관리에 호평을 받았는지 2006년에 치러진 연방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나이스트롬 후보와 재대결을 벌인 결과 41.3%(12,753표)를 득표, 직전 선거보다 더 큰 격차로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 연방 총선 때도 동일 지역구에서 3선 고지에 올랐으며, 51.7%(14,068표)를 득표함으로써 선거가 거듭될수록 더 큰 득표수와 더 높은 득표율을 얻는 저력을 보였다.

2008년 연방 총선에서 3선 의원으로 생환한 직후 보수당 몫으로 배정된 연방하원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는데, 당시 나이가 29세였다.[7] 그렇게 의회부의장으로 재임하며 맞이한 2011년 연방 총선에서 역시 동일한 지역구에 출마, 53.5%(15,896표)를 득표하며 4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선거 종료 후 새 의회가 개원하는 2011년 6월 2일 32세의 젊은 나이로 연방하원의장의 자리에 올랐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4선 의원에다 연방의회 부의장과 의장을 모두 역임하게 된 것. 이러한 경력 덕에 보수당 내 일각에서는 차기 총리 후보로 알음알음 거론되기도 했다.

2015년 연방 총선에서도 역시 같은 지역구에서 5선에 성공했으나, 직전 총선에서 4.7%(3위) 득표에 그쳤던 자유당 후보가 다른 인물로 대체된 이번 선거에선 22.78%(3위)를 가져가며 선전하면서 44.7%(16,486표) 득표로 1위, 득표수 자체는 늘었지만 득표율은 낮아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선거에서 보수당쥐스탱 트뤼도 대표를 앞세운 자유당에 패하며 10년에 걸친 집권을 끝내고 정권 교체에 따라 야당으로 밀려났다. 이에 따라 보수당 대표를 겸직하던 스티븐 하퍼 총리는 선거 패배와 실각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차기 당내 경선 전까지 임시 당대표를 맡게 된 로나 앰브로스(Rona Ambrose) 의원의 지도부가 새로 출범하자 앰브로스 임시대표의 인선으로 보수당 연방하원 원내대표의 자리에 임명되었으며, 이 당시에도 아직 36세의 젊은 나이였다.

2016년 9월 28일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진짜 보수, 진짜 지도자(Real Conservative, Real Leader)"라는 구호를 내걸고 당원들을 설득한 결과 당내 온건파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했으며, 13라운드에 걸친 당대표 경선 투표 대장정 끝에 마지막 최종 2인 대결에서 50.95%(17,222.2포인트)를 득표, 49.05%(16,577.80포인트)를 득표한 강경파의 막심 베르니에(Maxime Bernier)를 근소한 차이로 꺾고 2017년 5월 27일 38세의 젊은 나이스티븐 하퍼의 뒤를 잇는 보수당 제2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의회 부의장과 의장, 제1야당 연방하원 원내대표까지 지낸 5선 중진이었음에도 젊은 나이로 인해 중후한 장년 이미지인 베르니에의 득표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으며 정치권과 언론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워낙 근소한 표차로 당락이 갈린 탓에 당내 분열이 일어났다. 결국 경선 결과에 불복한 베르니에는 당내 강경파를 이끌고 탈당해 캐나다 인민당을 창당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난맥상을 제대로 통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경선 결과가 뒤집히는 일은 당연히 없었고, 30대 후반에 원내 제2당인 제1야당의 대표로서 '공식적인 야당 대표(Leader of the Official Opposition)' 직함을 얻게 되었다.

2019년 연방 총선에서 보수당을 이끌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자유당과 정면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선거를 총지휘하는 컨트롤타워로서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트뤼도 총리보다도 8살이나 어린 젊은 당대표로서 호기롭게 선거전에 뛰어들었지만 각 당 대표들이 모여 정책 공약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강정책 TV 토론회에서는 트뤼도 총리의 언변에 밀린다는 평을 들었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보험중개사 자격증 취득 경력이 허위였다는 것과 캐나다-미국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거센 비판에 휘말리며 갈팡질팡했다. 결국 자신을 향한 네거티브 공세를 막아내느라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자유당의 선거 전략에 비해 정책 대안 제시가 부족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선거 결과 보수당의 정당 득표율 자체는 자유당에 근소하게 앞섰지만[8],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의 특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많은 선거구에서 1위를 놓쳐 낙선하며 제1당 탈환을 놓치면서 패배했다. 스티븐 하퍼 총리에 대한 심판론으로 크게 패했던 직전 총선보다는 의석수를 늘렸으나 인구수 1위와 2위 지역인 온타리오주와 퀘벡주에서 대패했으며, 동부 대서양 연안 4개 주(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와 중부 내륙의 매니토바주에서 많은 의석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텃밭인 중서부 내륙의 앨버타주, 서스캐처원주에서 대승하고 서부 태평양에 면한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동부 지역과 온타리오주, 퀘벡주의 도시 지역에서 일부 의석을 얻어 121석의 원내 제2당으로 선거를 마쳤다. 자신도 이전과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6선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자유당이 157석을 얻어 원내 제1당 자리를 지키면서 정권 교체는 무위로 돌아갔다.

선거에서 패배한 뒤 당내에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사임을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2020년 7~8월에 차기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었기에 그 전후로 후임자에게 당대표직을 넘기고 물러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9], 2019년 12월 12일 갑작스럽게 당대표직에서 물러난다며 사임을 발표했다.# "바쁜 업무로 인해 우리 가족, 특히 자식들과의 관계에 너무 소홀해졌다"며 "이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예상치 못한 '깜짝 사임'에 당 안팎에서 당황스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그런데 사임 발표 직후 언론사 '글로벌 뉴스(Global News)'의 보도로 수만 달러어치의 보수당 자금을 자녀의 교육비로 유용했다는 증거가 제시되며 파문이 일었다.# 비판이 거세지면서 언론은 물론 대다수 시민들은 이 자금 유용이 '기습 사임'의 진짜 원인이라고 의심했으나, 대변인을 통해 내놓은 해명에서 "자녀 교육비로 쓰인 자금은 극히 일부"라며 이것이 자신의 사임 원인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매년 17,000 캐나다 달러에 달하는 자금 규모에 대해 '극히 일부'라는 해명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었다. '기습 사임'으로 촉발된 일련의 논란 속에 2020년 전당대회를 통한 새 당대표 선출 이전까지 당대표직을 유지할지 여부를 묻는 절차가 개시되었으며, 보수당 전당원투표에서 이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며 당대표 임기를 이어가게 되었다.# 당원투표 결과에 의한 재신임 이후 당내에서 관련 논란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2020년 들어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국면 속에서 국민의 소득 손실 및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쥐스탱 트뤼도 내각이 추진한 '긴급생활보조금(재난지원금)' 지급 정책을 놓고 그 해 5월 의회에서 논쟁을 벌였다. "격리에 관한 규제가 점차 풀리면서 사람들이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행하고 있는데, 1,000 캐나다 달러 이상의 소득을 버는 국민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이들은 보조금 지급이 끊길까 두려워한다. 무엇보다 거액의 지원금을 계속 지급하면 국민들이 앞으로 이것만 받으며 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점진적으로 지원금 지급 액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이 이제 막 진정되기 시작했을 뿐 아직도 확산 위험 자체는 높은데 말투가 마치 국민들에게 일터로 나오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상당수 국민의 생활비 액수에 비해 보조금 지급 규모는 턱없이 낮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코로나19 경제 충격의 여파로 취업난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대다수 시민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2020년 8월 치러진 보수당 차기 당대표 경선에서 당내 온건파의 지지를 받은 에린 오툴(Erin O'Toole) 의원[10]이 제3대 당대표로 선출되자 8월 24일 그에게 대표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당대표 퇴임 후 9월 8일 오툴 대표의 그림자 내각 인선에서 인프라·커뮤니티부 장관으로 선임되었다.

2021년 9월 20일 치러진 연방 총선에서 리자이나-콰펠 지역구에 보수당 후보로 재출마, 61.8%(20,400표)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아날리스 보스(Annaliese Bos) 신민당 후보(20.9%, 6,883표)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7선에 성공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한국에서라면 꿈도 못 꿀 의회 부의장·의장,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모두 역임한 7선 중진이 된 셈. 그러나 오툴 대표 역시 트뤼도 총리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고, 보수당은 또 다시 자유당에 밀려 119석의 원내 제2당이라는 결과를 받아들면서 패배했다.

선거 패배 후 오툴 대표가 당내 강경파의 주도로 불신임되어 중도사퇴하면서 캔디스 버건 부대표의 임시 당대표(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했고, 2022년 전당대회에서 피에르 폴리에브 의원이 제4대 당대표로 선출된 뒤 그의 당직 인선으로 연방하원 원내대표에 임명되었다. 이에 따라 2015년 연방 총선 패배 직후 앰브로스 임시대표 체제에서 원내대표를 맡고 2017년 제2대 당대표로 선출된 지 7년여 만에 다시 원내대표로 복귀했다.

3. 성향

사회·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보수적인 색채는 드러내고 있다. 감세와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은 전임 스티븐 하퍼와 유사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하퍼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분류되는 편이었다[11]. 트뤼도의 대마초 합법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12] 이민 문제에 있어서도 트뤼도보단 입맛가리는 입장을 취하며, 난민도 "이슬람 국가에서 탄압 받는 기독교인"은 받자고 주장하나, "이슬람 난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다.

유럽 문제긴 하지만, 브렉시트 문제에서도 적극적인 찬성 입장을 보였으며,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매우 쿨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나름 영미권에서 강경 보수 성향으로 지도자가 된 도널드 트럼프보리스 존슨과 방향성을 맞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본인이 총리가 되든 아니든 캐나다외교정책미국, 영국,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이중 국적 논란

2019년 총선 기간 동안 캐나다-미국 이중 국적 보유로 논란이 되었는데, 이에 "8월부터 미국 국적 포기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이중국적자가 총리가 되는 데 문제는 없으나,[13] 어느 나라에서나 이중국적자가 정치하는 것은 정서상 꽤나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다.[14] 시어가 비난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본인도 이중국적자면서 과거 프랑스 국적의 이중국적자가 캐나다 총독으로 임명되자 이를 비난하는듯한 뉘앙스의 내로남불성 글을 올린게 컸다. 또한 과거 자신과 같은 포지션인 제1야당 당수가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것을 트집잡아 빼박성 내로남불이 되었다.

이후 총선 패배와 대표 사임으로 인해 더 이상 총리가 될 가능성이 없어지자 미국 국적 포기 절차를 포기했다고 한다. 아마 미국의 국적포기세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국적 포기는 정치적인 쇼에 불과했고 미국 국적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비춰지기도 해서 또 다시 비난을 받게 되었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2004년 캐나다 연방 선거 리자이나-콰펠
10,012 (35.76%) 당선(1위) 초선
2006 2006년 캐나다 연방 선거 12,753 (41.21%) 재선
2008 2008년 캐나다 연방 선거 14,068 (51.70%) 3선
2011 2011년 캐나다 연방 선거 16,197 (53.19%) 4선
2015 2015년 캐나다 연방 선거 16,486 (44.70%) 5선
2019 2019년 캐나다 연방 선거 24,463 (63.12%) 6선
2021 2021년 캐나다 연방 선거 20,400 (61.42%) 7선


[1] 미국인[2] 프로 축구선수이다.[3] 신민당 소속 정치인이다.[4] #[5] 훗날 캐나다 동맹이라는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되며, 보수진영의 대표 격인 캐나다 보수당의 역사적 전신 중 한 곳이 된다. 앨버타주를 필두로 한 서부 내륙 지역을 기반으로 하던 우익 정당이었다.[6] 당시 보수진영의 거대 정당이었던 진보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이 1993년 연방 총선에서 단 2석밖에 얻지 못하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 캐나다의 보수세력은 지리멸렬한 상태로 지역구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대표제 조합의 선거제 하에서 진보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당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7] 한국 정치권에서 이 나이에 국회부의장은 고사하고 초선 국회의원조차 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인들 시각으로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8] 절대적 득표율 수치만 놓고 보면 보수당이 앞섰지만, 이 역시 보수-진보 진영 대결 구도로 보면 보수당이 다소 밀리는 형국이긴 하다. 캐나다 내에서 대표적인 보수 텃밭 앨버타서스캐처원이 70~80%의 표를 보수당에게 집중적으로 몰아주어 지역별 정당득표율 편차가 심하기 때문.[9] #[10] 온타리오주 더럼(Durham) 선거구, 3선(당대표 선출 당시). 2012년 보궐선거에서 처음 당선되었다.[11] 하퍼가 캐나다판 분서갱유, 참전용사 복지에 관련해서 문제를 많이 일으켰지만 그래도 보수당내 극우파들을 잘 막아낸것은 인정할만 하다. 그러나 시어는 이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미흡한편이어서 총선전에도 우려가 나왔았는데, 결국 그 부분은 보수당이 온타리오, 퀘벡주에서 참패당하면서 증명하게 됐다.[12] 다만 본인이 집권 시 다시 불법화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놓고 다시 불법화한다고 하면 총선에서 질게 뻔하니.[13] 명목상 캐나다의 총리직은 국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즉, 만 18세 이상의 한국 국민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얘기. 물론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현직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데, 국회의원 자격은 캐나다 국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언급한 '조건'은 아무런 의미가 없긴 하다. 다만 국회의원도 이중국적을 허용하기 때문에 캐나다/한국 복수 국적이면서 캐나다 총리가 되는 것은 정서상 어려울 뿐 이론상으론 가능하다.[14] 아예 일부 국가들은 해외 국적을 보유한 사람의 피선거권을 대놓고 박탈하기도 한다. 호주 같은 경우에는 아예 헌법에 이중국적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있어서 2017-18년 사이 이중국적자인 사실이 드러난 부총리를 포함한 10여명의 의원들이 대거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그 중 대부분은 다른 국적(주로 영국이나 뉴질랜드 시민권)을 포기하고 보궐 선거로 복귀하였다. 반대로 영국에서는 영미, 영불 등 이중국적자들이 시장, 귀족원 의원, 서민원 의원, 상임위원장, 차관 등을 맡는 등 꽤 개방적인 편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도 런던 시장을 역임할 때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외무장관이 될 때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