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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 콜/클럽 경력/첼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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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슐리 콜
2006-2014
파일:1uelitjtvok71.jpg
▲ 2006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첼시 FC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3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07-16).svg
228경기
7득점 19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60경기
7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 가로형.svg
3경기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28경기
4도움
파일:capital.png
10경기
파일:crR1Bvv.png
4경기
1도움
파일:UEFA 슈퍼컵 로고_white.svg 2경기
파일:FIFA 클럽 월드컵 로고.svg 2경기
1도움
합산 성적
337경기
7득점 32도움

[clearfix]

1. 개요

애슐리 콜첼시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이적

주급 인상 문제로 불화를 겪고 결국 2006년 8월 31일에 윌리엄 갈라스에 현금을 더한 트레이드로 첼시로 이적했다. 공교롭게도 국가대표팀 경쟁자인 웨인 브리지와 클럽에서도 같이 경쟁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첼시와 불법접촉 논란까지 일었고, 실제로 청문회를 통해 불법접촉한게 밝혀졌다. 게다가 당시 콜은 아스날과 재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된 상황이었다. 거기에 첼시로 이적한 뒤 자서전에서 아스날 디스까지 해댔으니.. 당연히 아스날 선수와 팬들이 이를 갈 만 하다. 이후 아스날 팬들은 그를 돈슐리 콜(Cashley Cole)란 멸칭을 붙였고, 첼시와 아스날의 경기가 있을때 콜이 공만 잡으면 엄청난 야유를 쏟아냈다.

3. 2006-07 시즌

그러던 2007년 1월 31일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열린 프리미어 리그, 3-0으로 승리한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정밀 검사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는 않았기에, 2006-07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다. 콜은 그 말대로 시즌이 끝날 때 가까스로 돌아왔는데, 그는 웸블리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2007년 FA컵 결승 경기에 출장했다. 주제 무리뉴 감독이 그를 결승전 선수 명단에서 뺄 것이라고 처음에는 예상됐지만 첼시에서의 첫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6-07 시즌: 39경기(선발 38경기) 4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2 21 1 0 2
챔피언스 리그 9 9 0 0 2
FA컵 5 5 0 0 0
칼링컵 3 3 0 0 0
합계 39 38 1 0 4

4. 2007-08 시즌

지난 시즌 종료 후 주제 무리뉴감독이 경질되자 애슐리 콜은 이러한 경질 판단의 격분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애슐리 콜은 2008년 3월 웨스트 햄과의 경기에서 첼시소속으로 첫 골을 기록했다. 웨인 브릿지와의 경쟁에서 점차 우위를 점하며 점점 주전으로 출전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번엔 첼시 소속으로 챔스 결승에 진출했으나 다시 준우승을 기록했다. 챔스만 준우승 한것이 아니라 리그, 챔스, 칼링컵, 커뮤니티 실드 모두 우승에 실패하며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2007-08 시즌: 41경기(선발 40경기) 1골 2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7 27 0 1 1
챔피언스 리그 10 10 0 0 0
FA컵 1 1 0 0 0
칼링컵 2 1 1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1
합계 41 40 1 1 2

5. 2008-09 시즌

2008-09 시즌 프리미어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첼시는 콜의 골로 3-2로 승리하였다. 시즌 초반 스콜라리 체제에서 많은 부침이 있던 첼시 였으나 후반기 히딩크 감독이 대행으로 부임하며 첼시는 빠르게 안정화가 되었고 챔스 우승을 다시 노렸으나 바르셀로나에게 4강에서 석패하며 마무리한다. 그래도 FA컵을 우승하며 기분 좋게 시즌을 마무리 했고, 콜도 FA컵 우승의 주요 선수였다.

2008-09 시즌: 49경기(선발 48경기) 1골 2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4 33 1 1 0
챔피언스 리그 8 8 0 0 0
FA컵 7 7 0 0 2
합계 49 48 1 1 2

6. 2009-10 시즌

09-10 시즌 콜은 초반 6경기에 연속 출장했으며, 번리, 토트넘 홋스퍼,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각각 그의 3, 4, 5번째 득점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2009년 9월 2일, 첼시와의 4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거기에 새로 부임한 안첼로티와 지난 시즌 좋았던 선수들의 폼이 쭉 이어지며 리그에 우승했고 애슐리 콜도 공격적인 재능을 살려 풀백으로 많은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신음했던 기간들이 있었는데 그 공백을 새로 영입했던 지르코프가 그래도 메꿔주었다.

2009-10 시즌: 35경기(선발 32경기) 4골 5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7 25 2 4 3
챔피언스 리그 4 4 0 0 1
FA컵 2 2 0 0 1
칼링컵 1 0 1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35 32 3 4 5

7. 2010-11 시즌

그런데 2010년 여름 또 이적 문제가 불거졌다. 무리뉴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설이 터진 것. 물론 첼시는 부인했다. 사실 이 이적 문제는 돈 문제와 함께 이혼으로 인한 잉글랜드 타블로이드지들의 집착취재에 질린 나머지 스페인으로 떠나려 한 측면도 있었다. 무리뉴가 지속적으로 구애를 하기도 했고 말이다. 이적이 꽤 유력해 보였으나 안첼로티 감독의 설득으로 일단은 첼시에 잔류했다. 그렇게 잔류한 콜은 2010-11 시즌에도 리그에서 38경기에 출장했으며, 첼시 선수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10-11 시즌: 48경기(선발 48경기) 3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8 38 0 0 3
챔피언스 리그 7 7 0 0 0
FA컵 2 2 0 0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8 48 0 0 3

8. 2011-12 시즌

파일:20210112_211816.jpg
2011-12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발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첼시는 이 시즌 감독 경질로 시끄러웠는데 16강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특히 존 테리가 빠진채 참여한 결승전에서는 페트르 체흐프랭크 램파드, 다비드 루이스, 게리 케이힐라이언 버트란드등의 선수들과 함께 을 충실히 보필했다. 4강전 바르셀로나전 수비에서 방패 역할을 충실히 실행했고 골라인에서 가까스로 걷어내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결승전에선 특히 마리오 고메스를 충실히 틀어막아 분데스리가 득점순위 2위인 고메스가 한 골도 넣지 못하게 막았고 가장 중요한 로베리 라인을 첼시 선수들과 잘 막았으나 후반 83분 토마스 뮐러 마킹에 실패하면서 뮌헨에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으나 드록바가 동점골을 집어넣으며 연장으로 이끌었고 연장전에선 체흐의 골키퍼 원맨쇼로 승부차기 끝에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

2011-12 시즌: 48경기(선발 46경기) 9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31 1 0 6
챔피언스 리그 12 11 1 0 3
FA컵 4 4 0 0 0
합계 48 46 2 0 9

9. 2012-13 시즌

이후 12-13 시즌에도 주전으로 활약하였고, 2012년 12월 1일, 콜은 본인의 리그 350번째 경기에 출장하였다. 2013년 1월 22일에는 첼시와의 1년 재계약 연장에 합의하였다. 또한 이 시즌에 첼시는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면서 두 시즌 연속으로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2-13 시즌: 50경기(선발 49경기) 1골 5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1 31 0 1 2
챔피언스 리그 5 5 0 0 1
유로파 리그 3 3 0 0 0
FA컵 5 5 0 0 1
캐피탈 원 컵 3 2 1 0 0
슈퍼컵 1 1 0 0 0
클럽 월드컵 2 2 0 0 1
합계 50 49 1 1 5

10. 2013-14 시즌

2013-14 시즌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와 함께 첼시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노장(?)이지만[1] 셋 중 가장 입지가 위태로운 상태다. 본인의 폼이 떨어진 것도 있고 부상당한 동안 라이트백인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가 급성장하여 레프트백 주전을 꿰찼기 때문에 경기에 나오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 그래서인지 재계약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있고 이적설이 간간히 돌고 있는 상태다. 소속팀에서의 입지와 함께 부동의 자리로 여겨졌던 국가대표에서의 입지 역시 심각히 악화된 상태로 레이턴 베인스에게 주전 자리를 사실상 넘긴 상태. 문제는 백업 자리마저도 신예 루크 쇼의 등장으로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에서 애쉴리 콜을 볼 수 없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 결국 베인스와 쇼에게 밀려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고,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택했다.

2014년 7월 1일 첼시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8시즌간의 첼시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자유계약이 된 콜은 AS 로마와 계약을 맺었다.

2013-14 시즌: 26경기(선발 24경기) 2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7 15 2 0 2
챔피언스 리그 5 5 0 0 0
FA컵 2 2 0 0 0
캐피탈 원 컵 1 1 0 0 0
슈퍼컵 1 1 0 0 0
합계 26 24 2 0 2

11. 총평

잉글랜드 리그 최고의 레프트 백이자 첼시 역대 최고의 레프트 백으로 거론되며 윙어들의 무덤이자 맨유 시절 호날두의 천적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첼시의 상징인 드램테체 에게는 살짝 밀리지만 그래도 첼시 최고의 레전드 중 한명이며 첼시의 첫 챔스 우승시즌에 그의 활약이 없었다면 첼시의 챔스 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1] 슈왈쳐 골키퍼는 1년 단기계약이니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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