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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20:08:27

알렉산더 알레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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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세계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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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리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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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ander Alekhine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Але́хин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알레힌
파일:Alexandre_Alekhine_Color.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1892년 10월 31일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 모스크바
사망 1946년 3월 24일 (향년 53세)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이스토릴
국적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 (1892~1917)

[[소련|]][[틀:국기|]][[틀:국기|]] (1918~1922)
파일:국기.svg 무국적 (1922~1927)

[[프랑스|]][[틀:국기|]][[틀:국기|]] (1927~1940)

[[나치 독일|]][[틀:국기|]][[틀:국기|]] (1941~1943)
파일:국기.svg 무국적 (1943~1946)
타이틀 없음 (타이틀 도입 이전)
세계 챔피언 1927~1935
1937~1946
Elo 레이팅 없음 (Elo 도입 이전)
CMR 레이팅 2854 [1]

1. 개요2. 생애3. 기풍

[clearfix]

1. 개요

러시아 제국 출신의 제4대 체스 세계 챔피언.

자신의 이름을 딴 오프닝알레킨 디펜스가 있으며 기물이 +룩+ 순서로 배터리를 이룬 것을 알레킨의 총이라고 부른다.

2. 생애

어린 나이부터 체스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22세부터 가장 뛰어난 체스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1914년 대회 참가로 인해 독일에 있던 중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다른 러시아 선수들과 독일에 구금된 적이 있다. 이때 같이 구금된 에핌 보골류보프와 체스판 없이 대화로 체스를 두며 연구를 했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 후 1921년 소련을 떠나 프랑스 시민으로 귀화했다. 1920년대에 출전한 대부분의 토너먼트에서 승리했고 1927년 쿠바의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를 이기고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은 8년 후 네덜란드의 막스 오이베에게 빼앗기고 말았지만, 2년 만에 다시 챔피언 타이틀을 탈환한다.

아내와 아내가 갖고 있던 프랑스 성채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에 부역하면서 나치 독일에서 열린 여러 체스 대회에 참가하였지만 그 대가로 나치 패망 이후 챔피언임에도 대회에 거의 초청받지 못했다.

1946년 미하일 보트비닉과의 챔피언 방어전을 준비하던 중 사망했다. 죽을때까지 세계 챔피언 자리를 유지한 유일한 체스 선수다. 유족이 소련 당국이 암살했다는 주장을 했지만 정설은 아니다.[2] 사후 공석으로 남아있던 체스 챔피언 자리는 1948년에 열린 월드 챔피언십 우승자인 미하일 보트비닉에게 돌아갔다.

3. 기풍

- 체스는 이론과 논리가 전부는 아니다.
- 콤비네이션은 체스의 영혼이다.

뛰어난 공격형 선수로, 포지션이 크게 우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뛰어난 전술적 콤비네이션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계산 능력 덕분으로, 그의 게임은 당연한 수들의 모임으로 보이지만 마지막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공격을 위한 포지션을 만드면서도 자신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지는 않게 했다. 그의 깊은 수읽기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기로는 1925년 레티와의 경기가 있다.

그의 기풍답게 사용한 오프닝들도 안정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갬빗 등을 사용한 복잡하고 날카로운 라인들이 대부분이다. 알레킨 디펜스는 물론 루이 로페즈프렌치 디펜스, 클로즈드 게임[3]를 자주 두었고 흑으로 시실리안 디펜스는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백으로는 당시 인기가 많았던 시실리안 드래곤에서 클래시컬 바리에이션을 자주 사용했다. 비엔나 게임, 부다페스트 갬빗, 카탈란 오프닝, 더치 디펜스 등에 그의 이름이 붙은 라인이 있을 정도로 연구하고 시도한 오프닝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1] CMR기준 역대 4위[2] 처음엔 심장마비로 발표되었지만 부검 결과 고기가 기도를 막아 질식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고기엔 씹은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3] QGD, 슬라브 디펜스 모두 자주 두었고 QGA를 포함한 이론의 발전에도 공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