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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4 10:35:11

알렉산드르 안크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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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 세르게이 바갑시 알렉산드르 안크바프 라울 하짐바
제5대
아슬란 브자니야 }}}}}}}}}
압하지야 공화국 제3대 대통령
알렉산드르 안크바프
Александр Анкваб | Alexander Ankvab
파일:Александр_Анкваб_03_(cropped).jpg
<colbgcolor=#00993e><colcolor=#ffffff> 본명 알르크산드르 졸로틴스카이파 안콰브[1]
Алықьсандр Золотинска-иԥа Анқәаб
출생 1952년 12월 26일
소련 그루지야 SSR 압하스 ASSR 수후미
재임기간 압하지야 총리
2005년 2월 14일 ~ 2010년 2월 12일
압하지야 부통령
2010년 2월 12일 ~ 2011년 5월 29일
압하지야 대통령 권한대행
2011년 5월 29일 ~ 2011년 9월 26일
압하지야 대통령
2011년 9월 26일 ~ 2014년 6월 1일
압하지야 총리
2020년 4월 23일 ~ 2024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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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93e><colcolor=#ffffff> 부모 <colcolor=#373a3c,#ddd>조부 졸로틴스카 안크바프[2]
배우자 림마 라코바
자녀 아들 알렉산드르, 이날
학력 로스토프 주립 대학교 }}}}}}}}}

1. 개요2. 생애3.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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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산드르 안크바프는 압하지야의 정치인으로, 제3대 압하지야 대통령을 지냈다.

2. 생애

1952년 철도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을 수후미에서 보낸 후 로스토프 주립대학교 법학과에서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5년 압하스 ASSR 법무부에서 근무하였고 콤소몰 지역위원회 비서로 선출되었다. 이후 소련 해체시까지 압하스 소비에트 자치공화국 내무부의 다양한 행정직을 맡았다. 압하지야의 독립선언 이후 1991년 압하지야 최고소비에트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92년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압하지야 전쟁 초기 조지아군이 수도 수후미를 점령하고 블라디슬라프 아르진바 대통령 내각이 구다우타(Gudauta)로 대피하였을때, 내무부 장관이었던 안크바프는 조지아군과 적대행위 금지를 위한 협상을 수행하였다. 이 당시 조지아와의 협상을 통해 조지아와의 유화적인 스탠스가 형성되었고, 이에 1993년 아르진바 대통령은 안크바프를 내무부 장관에서 해임한다.

장관 해임 이후 안크바프는 러시아로 건너가 기업가로 활동하는 한편 차기 압하지야 대통령 후보로 오르게 된다. 2003년 압하스 민족주의당인 아이타이라(Aitaira) 당을 창당하여 아르진바 정부의 부패를 비판하였다. 2004년 압하지야 대선에 출마하고자 하였으나 대통령 후보의 압하지야 거주 요건에 충족하지 못하여 대선 후보로 출마하지 못하였고, 대신 세르게이 바갑시 후보를 지지하였다. 바갑시가 2005년 재투표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바갑시 정부 내각에서 총리직을 수행하였다. 2009년 대선에서 바갑시가 재선될 때 부통령 후보로 올라 당선되었다.

바갑시 대통령이 2011년 질병으로 사망한 이후 대통령 대행이 되었고 이후 대선에 출마하여 56.2%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안크바프는 러시아 및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발전시키는 한편 조지아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2014년 4월 남동부 조지아계 주민에게 압하지야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정책에 반발한 시위대가 대통령궁을 점거하였고 사퇴 압박을 받았다. 안크바프는 러시아 해군기지가 위치한 구다우타로 대피하였고 결국 2014년 6월 1일 대통령직에서 사퇴하였다.

이후 2017년까지 러시아로 돌아가서 시위대를 이끌고 대선에서 승리한 라울 하짐바 당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였고, 2017년 압하지야로 귀국하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2019년 대선에서 하짐바 대통령이 재선되었으나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재선거에서 아이타이라 계열의 아슬란 브자니야가 승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이후 브자니야 정부에서 다시 총리직을 수행하였다.

2024년 11월 러시아에 유리한 투자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다시 대통령궁을 점거하였고, 브자니야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같이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공직생활 동안 총 6번의 암살 시도에서 벗어난 경력이 있다.

3. 성향

압하지야 시민권자이지만 러시아 시민권자이기도 하다.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증진하는 데에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지아와의 관계개선 또한 중요시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조지아와의 동등한 국가 관계를 수립하고자 노력하는거지, 조지아의 국가 통합 시도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1] 압하스어 이름으로, 러시아어 이름은 '알렉산드르 졸로틴스코비치 안크바프(Александр Золотинскович Анкваб)'.[2] '졸로틴스카' 혹은 '졸로틴스크'는 철도 노동자였던 그의 가계에서 이름을 압하지야 철도 건설자 중 한명의 성인 '졸로틴스키'(Золотинский)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압하스인들이 러시아 인명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성을 이름으로 썼던 것.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캅카스 주민 이름 중에는 이렇게 좋아보이는 이름을 아무거나 갖다붙인 인명이 꽤 발견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