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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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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슬람에서 기원했지만 대다수 드루즈인들조차도 스스로를 별개의 종교로 분류한다.
  • * 일반적으로 시아파와는 별개의 종파로 분류되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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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li_at_Kufah_in_the_seventh_century_following_the_murder_of_'Uthman,_from_a_late-16th_century_Turkish_manuscript_on_the_martyrdom_of_Husayn.jpg
알레비파의 상징인 알리가 추대되는 모습.
1. 개요2. 역사3. 교리4. 취급5. 예술

1. 개요

아랍어: علويون(알라위윤)
튀르키예어: Alevilik (알레빌리크)
Hararet nardadır sacda değildir,
Kerâmet sendedir, tâc’da değildir,
Her ne arar isen, kendinde ara,
Kûdüs’te Mekke’de hâç’da değildir
열은 불에서 나는 것이지 번철판에서 나는 것이 아니요,
신의 축복은 너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왕관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무엇을 구하든 그대 스스로에게서 구하라,
예루살렘에서도, 메카에서도, 십자가에서도 아니라. (하즈 벡타시 벨리)
Ben Allah'ım. Allah benim.
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나이다. (캄베르)
Cehennem dediğin, dal odun yoktur
Herkes ateşini kendi götürür.
자네가 지옥이라고 하는 그곳에는 덤불도 땔감도 없다네
모두들 불을 스스로 가져올 뿐. (압달 피르 술탄)

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로 신자는 1~2천만 명 정도로 추정되며 거의 튀르키예에 분포한다. 다만 시아파라고 하기에는 수피의 영향력이 지대하며 수피즘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다. 아예 이바디파처럼 독자적인 종파로 취급되기도 한다. 다만 시아파 핵심 국가인 이란에서는 알레비파를 시아파의 일부로 공식 인정했으며,[1] 이란에 거주하는 알레비 신도는 공식 통계에서 모두 시아파로 집계된다.

시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알라위파와는 관련이 없다. 튀르키예의 알레비파와 시리아의 알라위파는 서로 이름만 같을 뿐 동일하지 않다는 게 학계 주류 의견이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시아파라고 할 수 있는 알라위파는 알레비파보다 역사가 더 깊으며 알레비파의 교조인 하즈 벡타시 벨리, 메르잔 데데 같은 성인들의 전통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알라위파는 주로 아랍인, 알레비파는 주로 튀르크인이 믿어 민족적인 차이도 있다.

2. 역사

알레비 운동은 중앙아시아튀르크계 부족들에게 이슬람이 전파되던 시절에 형성되었다.

알레비파는 기본적으로 수피 종단들과 마찬가지로 데데(Dede)라 불리는 장로를 중심으로 뭉치며 신비주의를 강조한다. 알레비 영성의 핵심은 신이란 절대적 존재가 아니며 인간이 깨달음을 얻으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신을 깨닫게 된다고 가르친다. 알레비의 종교의식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면서 반복되는 노래를 부르고 이에 무아지경에 빠져 황홀감을 체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알레비파의 많은 성인들은 하늘을 난다거나 혼자선 도저히 들 수 없는 무거운 절구를 한 손으로 들어올린다거나 하는 기적들을 일으켜 많은 튀르크계 부족들을 감화시켰다고 한다.

3. 교리

'알레비'라는 명칭이 '알리와 관계됨'을 뜻하는 아랍어 '알라위(علوي / ʿAlawi)'에서 유래된 것인 만큼 이들은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를 신성시하는데 심지어 하나님과 무함마드알리는 깨달은 이들로 곧 셋의 속성은 동일하다삼위일체 비슷한 교리도 갖고 있다. 물론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데 동일 위격의 무함마드와 알리를 통해 알라의 인격이 나타나지만 두 선지자가 알라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즉 굳이 따지자면 신성 교리는 여호와의 증인과 제일 비슷하다. 일부 급진적인 분파는 무함마드와 알리의 권능도 부정하고 오로지 알라와 나 자신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기도 하지만 이는 소수에 그친다.

알레비파에서 강조하는 것은 수행을 통해 마음속의 신을 깨달으면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이로써 자연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Erimiş) 합일하게 되고 그가 바로 깨달은 사람이며 신이라는 것이다.

즉, 튀르크계 부족들의 유목민 성향과 고유 종교인 샤머니즘영지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두루두루 받은 종파다.

알레비들의 종교의식은 젬에비(Cemevi)라는 곳에서 이루어지며 이들의 종교의식은 '젬'(Cem 지혜)이라고 불린다. 알레비들이 현이 달린 쿠란이라고까지 부르는 사즈(Saz)의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데 이때 보통 무슬림들과는 달리 남녀가 섞여서 앉는다. 애초에 알레비 입교식도 부부동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게 얼마나 굉장한 것이냐면 세속주의 국가인 데다 이맘의 대부분이 전향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이슬람 입교식 때 남녀가 섞여서 앉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입교식 때 남녀가 같이 춤을 춘다.

카바 방향이 아니라 둥글게 모여서 앉는데 입교식 뿐만 아니라 축제 때도 이렇게 한다. 젬을 주도하는 '데데'는 깨끗한 물을 머금고 사방에 절을 한 다음에 물을 골고루 뱉는데 이는 샤먼들이 의식을 시작하기 전에 주위를 정화하는 의식을 시작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재미있는 것은 알레비들의 젬 의식은 기독교의 주일미사, 예배 같이 1주일에 단 한 번만 열리며 모이는 시각도 금요일 자정이라는 점이다. 젬을 시작하기 전에도 기도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목요일 밤에 모인다. 밤에 기도를 한다는 것도 정통 이슬람 교리와 완전히 구분되는 점이다.

영지주의적이다. 알레비 영성은 내면속의 신을 깨닫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신비한 체험뿐만 아니라 데데를 통해 전승되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깨달아야 한다고 본다. 알레비들이 부르는 종교 노래에서는 정상적인 언어 사용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어휘나 표현이 종종 발견되며 가사에서도 "이 비밀스러운 지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들어보기

4. 취급

이러다 보니 알레비파는 이슬람 세계에서 이단 취급을 받았다. 특히 튀르키예에서 알레비파는 쿠르드족만큼 오랫동안 극심한 박해를 받아 왔는데 이들 가운데 같은 시아파 계통이였던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의 후원을 받고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2][3] 알레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적성 종교를 믿는 것으로 간주되어 오스만 제국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제국의 탄압과 제국 국민들의 적개심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당시 알레비 신자들도 덩달아 수십만 명이 학살당하는 것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현대 튀르키예의 이슬람주의자들도 알레비는 배격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여전히 학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규모는 최대 수백 명이 살해당하는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평시 상황의 대규모 살상이 거의 사라진 세계의 흐름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단적인 예로 튀르키예에서 온건적인 시민단체로 알려져 있는 귈렌 운동(Gülen hareketi)조차 타 종교와의 대화를 중요시하고 실제로 그런 자리들을 마련하지만 알레비에 대해서는 예외로 반응한다.

그런데 이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교리가 비슷하여 신도가 제일 많이 유출되기 때문에 더욱 경계하고 적대시하는 것이다. 수니파와 시아파도 차라리 기독교와 공존할지언정 상대방과 공존할 수 없다고 하며 한국에서도 기독교는 기독교의 이단을 타 종교보다 훨씬 적대시한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튀르키예에서 알레비파의 인구는 대략 1000만명 정도에 달하며 알레비 시민단체에서 내놓는 통계는 좀 들쑥날쑥하지만 1200만에서 1800만명 정도에 이른다고 본다. 튀르키예 인구의 20여%나 되는 수치다.

정치적으로는 튀르키예에선 알레비파 사이에서 세속주의와 좌파 정당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앞서 말했듯 튀르키예 수니파 무슬림이나 이슬람주의 정당과 사이가 좋지 않기도 하고 행위나 의식보다도 마음 속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교리 때문에 세속주의나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총선 때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알레비파의 정당 지지율은 공화인민당 71%, 인민민주당 12%, 민족행동당 5%, 정의개발당 5%로 나타났다. 좌우 비율이 8 : 1을 넘기는 수준이다.#

알레비의 교리에서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종교를 위장하는 행위가 허용되며[4] 다수의 알레비들은 실제로 친해지지 않는 이상은 외부인들에게 자신이 알레비라고 말하는 것을 매우 꺼리며 직장에서는 수니파 무슬림인 척 하면서 알레비 교리를 어기고 모스크에서 기도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다.[5] 자신이 알레비라는 것이 알려지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고 일반인들도 면전에서는 예의를 지키지만 뒤에서는 십중팔구 뒷담의 대상이 된다.

에르도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튀르키예 정부에서도 알레비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6] 에르도안 대통령은 알레비파의 교리와 세속적인 생활상을 지적하며 알레비파를 튀르키예에서 가장 인식이 좋지 않은 집단인 무종교인과 동일시하는 발언을 자주 하며 앞에서 말했듯 알레비파 의식에서 남녀가 함께 춤을 춘다는 이유로 젬에비 건물을 나이트클럽과 동일하게 분류하는 법을 제정하는 등 모욕을 주고 있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수장으로 있는 각 정부/공공기관이나 일부 기업들은 알레비를 일부러 뽑지 않는다. 대대손손 도시에 거주하고 있던 알레비들은 대충 아닌 척 내빼고 속이면 걸리지 않는(혹은 속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버지가 알레비 마을에서 거주하고 있다가 도시에 올라온 이주 2세들은 본적을 속일 수 없기 때문에 얄짤없다. 튀르키예 중고등학교의 종교 과목 교과서 편찬 가이드라인에는 수니파 이슬람과 시아파의 12이맘파[7] 이슬람으로 분류하고 알레비파는 사교(邪敎) 내지는 타 종교로 분류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도 알레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히잡의 모양이 다르고 시골에 사는 알레비들은 대화할 때 그 지역 사투리와는 다른 특이한 말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카파도키아의 네브셰히르에 위치한 하즈 벡타시(Hacı Bektaş)의 무덤 등등 알레비들이 신성시하는 장소에 가면 맑은 물을 떠놓고 치성을 드리고 동전을 집어던지는 알레비들을 목격할 수 있다. 아래의 젬 예배(Cem ibadeti) 영상을 참고하자.



알레비파와 순니파의 사이는 여전히 썩 좋지 않다. 시바스 같은 튀르키예 동부 시골 마을이나 마니사 같은 산악지역에는 알레비들이 모여사는 마을들이 존재하는데 이 동네들은 순니파 무슬림이 마을에 얼씬거리는 것도 싫어하고 자신들도 수니파가 많은 지역은 아예 가지 않는다. 심지어 접대의 관습이 현대에도 엄격하게 지켜지는 튀르키예에서 순니파 무슬림들은 손님으로 받지도, 함께 앉아서 음식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동네들이 존재한다. 알레비파도 시아파의 일종으로, 특히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적성 종교로 간주되어 심한 박해를 받아 온 전통이 있고 공화국 수립 후에도 크고 작은 학살 사건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8] 여전히 키질바시의 마인드로 사는 것이다.

5. 예술

한편 알레비들은 특유의 음악적 감수성과 신비주의로 훌륭한 음악들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개중에는 알레비가 아닌 튀르키예인들조차도 널리 부르는 '민요'들도 있다. 특히 라크포도주를 마실 때 읊곤 하는 시들은 대부분 알레비 성인들의 작품이다.

튀르키예의 알레비들은 라마단 단식을 지키지 않고,[9] 수니파처럼 기계적으로 음식을 가려먹지도 않는다. 덕분에 알레비들은 정통 무슬림들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더 호의적이고 우호적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 알레비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을 때는 발각되면 "나는 기독교인이요! 자 보시오!" 라며 기독교인으로 위장을 시도했던 알레비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될 정도였다. 그만큼 순니파와 알레비파의 신앙적 전통은 이질적이다.


[1] 이들이 오랜 세월동안 친 이란 행보를 보여온 것이 주된 이유로 추정된다.[2] 당장 사파비 제국 성립 극초기인 바예지드 2세 치세 말기에 일어난 샤쿨루의 난이 있고 이후에도 제랄리 반란이라고 하여 17세기 중엽까지 비슷한 반란이 간간이 일어났다.[3] 똑같은 교조를 공유하는 벡타시파는 예니체리들이 많이 믿었고 오스만 제국 정부의 보호를 받으면서 번성했다. 교리상으로도 벡타시파와 알레비파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흔히 알레비-벡타시즘이라고 하는데 두 종파의 결말이 달라졌다. 벡타시파는 공화국 수립 이후 정부의 탄압을 받아 튀르키예에서는 거의 몰락했고 현재 가장 큰 벡타시파 교단은 알바니아 티라나에 있다. 반면 알레비파는 반 오스만 세속주의 공화국 정부에 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아타튀르크 정권 하에서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4] 시아파의 공통 교리다. 타키야 혹은 타기예라고 부른다.[5] 알리가 모스크에서 암살당한 것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알레비파는 절대로 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같은 맥락에서 메카 순례도 하지 않는다.[6] 원래는 정치에서 종교 문제를 꺼내기 굉장히 조심스러워했으나 알레비파 출신 야당 대표가 등장한 후에는 이 문제가 의도적으로 정치 쟁점화되었다.[7] 아제르바이잔, 이란의 다수종교이다.[8] 당장 1993년에 수니파 주민들이 알레비파 지식인 37명을 마을 호텔에 가둬놓고 불을 질러 학살한 사건이 있다.[9] 물론 단식을 하기는 하는데 이슬람력 1월인 무하람월에 12일간 물질적, 정신적, 성적 금욕과 단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라마단과 달리 이슬람 초기의 12이맘을 추모하고 그들이 당시 겪은 고난을 함께하는 의미에서 지키는 것이며 마음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라마단처럼 기계적으로 단식을 지킬 것을 강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도시의 알레비들은 거의 지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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