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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9:07:32

안토니 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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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네덜란드 가톨릭방송 KRO가 네덜란드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인 100명'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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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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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포커(Anton Herman Gerard "Anthony" Fokker : 1890년 4월 6일~1939년 12월 23일)

1. 개요2. 금수저였던 어린 시절3. 독일로 이주4. 1차 대전을 바꾼 발명5. 고국으로6. 미국으로의 이주와 사망

1. 개요

네덜란드의 항공기 공학자이다.

2. 금수저였던 어린 시절

네덜란드가 낳아 한때는 항공기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포커(Fokker) 사의 설립자 안토니 포커(Anton Fokker)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블리타르(Blitar)에서 태어났다. 어떤 자료에서는 30 km 정도 떨어진 케디리(Kediri)에서 태어났다고도 하지만, 이 주장은 교차 검증 결과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의 아버지 헤르만 포커(Herman Fokker : 1851~1924)는 커피 농장의 소유자로 안토니 포커는 한 살 터울의 누나 카타리나 포커(Catharina Jacoba Fokker : 1889~1918)와 함께 하인들을 부리며 부족함 없이 부유하게 자라났다.

그의 가족들은 남매의 교육 문제로 포커가 4살이 되었을 때 본국 네덜란드로 돌아와 하를럼(Haarlem)에 정착하였다. 공학에 재능이 있던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토니 역시 공부보다는 철도 모형증기 기관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결국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버리게 된다. 안토니는 어린 나이에 벌써 공기가 새지 않는 타이어를 고안해냈지만, 이미 기존에 발명이 이루어진 것이어서 특허를 등록하지는 못했다.

3. 독일로 이주

1910년에 그의 아버지는 20세가 된 아들에게 엔지니어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하여 그를 공학 선진국인 독일로 보냈다. 그러나 포커의 관심사는 비행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설득하여 학교를 옮겼다. 같은 해 포커는 '데 스핀(de Spin, 거미)'이라는 자신의 첫 비행기를 제작했지만 그의 사업 동료가 하나 뿐인 원형기를 몰다가 나무에 충돌하는 바람에 박살나버렸다. 그는 이 비행기를 다시 만들어 조종 면허를 따냈다. 그는 세 번째 '거미'를 제작하여 1911년 8월 31일에 하를럼 상공을 날아다님으로써 "플라잉 더치맨''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는 이때 얻은 유명세 덕분에 국왕인 빌헬미나 여왕(Queen Wilhelmina)의 생일에 축하 비행을 하는 영예를 얻기도 하였다.

1912년이 되자 포커는 베를린 부근의 요하니스탈(Johannisthal)로 이사하여 그의 첫 회사인 Fokker Aeroplanbau를 설립하였다. 몇 해 동안 그는 다양한 항공기들을 제작하였으며 이후 공장을 슈베린(Schwerin)으로 이전하면서 회사명을 포커 비행기 유한회사(Fokker Flugzeugwerke GmbH)로 변경하였고, 나중에 다시 포커 공업사(Fokker Werke GmbH)로 바꿔부르게 된다.

4. 1차 대전을 바꾼 발명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정부는 포커의 공장 경영권을 가져가 버렸다. 그렇지만 포커는 감독 겸 설계기사로 남아 독일 제국 육군항공대(Luftstreitkrafte)를 위한 여러가지 군용기들을 제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포커 아인데커와 독일 출신의 톱 에이스인 붉은 남작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Manfred von Richthofen)이 조종하여 유명해진 포커 Dr.1 삼엽기 같은 일세를 풍미하며 적들을 떨게 만든 치명적인 전투기를 개발해냈다. 포커가 전투기에 남긴 최대의 업적은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간격 사이에 기관총을 발사할 수 있도록 하는 동조 기어를 개발하여 독일군의 제공권 확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이다. '포커의 징벌(Fokker Scourge)'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프랑스 공군을 위시한 연합군 파일럿들을 추풍낙엽처럼 떨어뜨린 신병기였다. 1차 대전 동안 그의 회사는 독일군에 700대가 넘는 각종 항공기를 제공하였다.

5. 고국으로

전후 체결된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독일 내에서 항공기를 생산하는 일이 불가능해지자, 1919년에 포커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전임자들과 함께 네덜란드 항공기 공장(Nederlandse Vliegtuigenfabriek)이라는 새 항공기 제작사를 설립하였다. 베르사이유 조약으로 인한 군비 해체가 진행 중이었지만 그는 열차에 알바트로스 전투기와 C.I 전투기를 잔뜩 싣고 몰래 독일 국경을 넘어 네덜란드로 반입시키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를 통하여 그는 새 작업장에 필요한 자재와 원형기를 조달할 수 있었으며, 이후로는 군용기 대신 민항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엔진 3개 달린 포커 D.VII 같은 기체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19년 5월 25일에 포커는 소피 마리 엘리자베스 폰 모르겐(Sophie Marie Elisabeth von Morgen : 1895~?)과 하를럼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이 결혼 생활은 4년만에 끝장이 났다.

6. 미국으로의 이주와 사망

1922년에 포커는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1927년에 미국 지사인 Atlantic Aircraft Corporation을 설립하였고 뉴욕에서 바이올렛 오스트만(Violet Austman : 1900~1929)과 재혼하였다. 오스트만은 1929년 2월 8일에 호텔 수행원과 함께 떨어져 사망하는 불가사의한 죽음을 맞았다. 포커 역시 그 생은 길지 않아서, 당시에는 치명적이었던 질병인 뇌막염에 걸려 1939년에 49세의 한창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