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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1 13:47:02

안토니 암스트롱존스

<colbgcolor=#ffdab9><colcolor=#000000> 제1대 스노든 백작
안토니 암스트롱존스
Antony Armstrong-Jones, 1st Earl of Snowden
파일:gettyimages-73606826.jpg
이름 안토니 암스트롱존스
(Antony Armstrong-Jones)
출생 1930년 3월 7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이턴테라스
사망 2017년 1월 13일 (향년 86세)
영국 잉글랜드 런던 켄싱턴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영국귀족이자 마거릿 공주의 전 남편.

2. 생애

변호사 롤런드 암스트롱존스와 앤 마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튼 칼리지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지저스 컬리지를 졸업했다. 이후 마거릿 공주와 1960년 5월 6일 결혼했고, 엘리자베스 2세는 안토니에게 스노든 백작위와 린리 자작위를 수여했다. 마거릿 공주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둘의 결혼 생활은 불륜 등의 이유로 끝이나고 1978년 7월 11일 이혼했다.

마거릿과 똑같이 맞바람을 피우던 안토니는 마거릿 공주와 이혼하자마자 불륜 상대였던 루시 린지호그와 재혼했다. 안토니는 과거 상류층이긴 하지만 작위 하나 없는 남자가 공주와 결혼한다는 모양새가 별로라[1] 왕실에서 내려준 스노든 백작 작위를 이혼 후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안토니의 상간녀는 후처가 되어 새로운 스노든 백작부인이 되었고, 그녀 소생의 딸 또한 백작의 딸로서 레이디로 불리며 제트코스터급 신분상승을 이뤄냈다.[2]

안토니는 상간녀와 재혼한 이후에도 대놓고 정부를 들여 사생아를 낳는 등 '방탕한 귀족의 삶'을 정석대로 실천하며 살았다. 그러나 왕실과는 계속해서 친분을 유지했으며 왕실의 결혼식, 아기, 가족사진 등을 찍으며 왕실 사진사로서 계속 인연을 이어왔다. 마거릿이 2002년에 사망한 후에도 15년을 더 살다가 2017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너무 망나니처럼 살다 죽어 영국인 중 그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사실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마거릿의 후손이 왕실 본가와 계승권에서 한참 멀기 때문에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래도 2017년 4월에 열린 추도식에는 여왕 부부를 비롯한 왕실 일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안토니가 남긴 자녀는 총 5명인데, 자녀들의 어머니는 4명이며 복잡한 사생활로 자식들의 성씨가 제각각이다. 마거릿 공주와의 결혼 전 애인에게서 1명, 마거릿으로부터 2명, 후처에게서 1명, 다른 애인으로부터 1명을 낳았다. 적자녀들인 세 명의 자식들 중 두 딸은 결혼하면서 성씨가 바뀌었고 나머지 두 명은 사생아라 어머니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애초에 5명의 자식들 중 왕실의 일원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는건 마거릿과의 사이에서 낳은 데이비드와 사라 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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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할아버지는 기사 작위가 있었고, 친할머니는 기사 작위가 있는 부친(안토니의 증조할아버지)를 두었다. 어머니는 그의 아버지와 이혼한 뒤에 6대 로스 백작과 재혼해 로스 백작부인이 되었으며, 현 7대 로스 백작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친누나 수잔은 6대 베시 자작과 결혼해 자작부인이 되었고, 현 7대 베시 자작의 어머니이다.[2] 후처는 본래 상류사회와는 인연이 없는 집안의 평민 출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