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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02:55:09

안청

安淸
(? ~ 170?)
1. 개요2. 관련 사료

1. 개요

후한 말의 승려로 중국식 이름은 안청(安淸) 또는 안후(安候)이며, 자는 세고(世高).

본래는 파르티아의 왕과 정후 사이에서 태어난 태자로 어려서부터 효행으로 칭송을 받거나 총명하고 민첩하게 공부해 배우기를 좋아했으며, 외국의 서적이나 칠요(요일), 의술, 이상한 술법 등에 능했다고 한다. 길을 가다가 한 떼의 제비가 지저귀는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말대로 먹을 것을 가져왔다고 하며, 사람들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빼어나 남다르다는 명성이 서역에 퍼졌다.

출가하기 전부터 계율을 받드는 것을 엄격히 했으며, 부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했지만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해 출가했다. 경장[1]에 능해 특히 아비담학[2]에 정통하면서 참선수행[3]을 게을리 하지 않아 미묘함의 극에 가까운 경지를 성취했다 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널리 교화를 펴다가 후한환제 초기에 중국에 이르게 되었다.

재주와 깨달음이 빠르고 민첩해 한 번만 들어도 능숙해 중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중국말을 완전하게 익혔으며, 20여년간 안반수의경, 음지입경, 대, 소의 십이문경, 백육심품경 등의 경전을 번역해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옮겼다고 한다. 인도의 중호(saṃgharakṣita)가 경의 요점을 모아 저술해 27장을 지은 것에서 7장을 뽑아 한문으로 번역해 도지경이라는 책을 저술했으며, 이렇게 모두 39부의 경론을 냈다.

안세고는 어느 날 스스로 전생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전생에도 이미 출가한 몸이었으며, 함께 공부하던 벗 중에 성을 잘 내는 사람이 있어 걸식하러 다니다가 시주들의 원성을 사기가 일쑤여서 꾸짖고 타일렀지만, 잘못을 뉘우치거나 고치지 않았다고 한다. 20여 년 후에 벗과 헤어지면서 경에 밝고 수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뒤지지 않지만 성품이 성을 내고 노하는 일이 많아 죽은 뒤에는 악한 몸을 받을 것이며, (윤회한) 안청 자신이 도를 얻게 된다면 제도하겠다 마음을 먹었다. 이윽고 광주(교주 남해)에 이르렀는데, 도적들이 난을 일으킨 와중에 길에서 마주친 소년에게 죽었다고 한다.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교화하여 경을 널리 펼치는 일을 했지만 영제 때 낙양이 어지럽자 강남으로 가다가 공정호의 사당에 이르렀는데, 그 사당에는 신령이 있어 장사한 사람들은 여기에서 기도하면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 지체해 머무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사당 신령의 대나무를 구하는 사람이 있어 허락받기 전에 가져가는 일이 있었다가 배가 뒤집혀서 가라앉아 이런 일이 있고서는 뱃사람들이 그 사당의 신령을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하며, 안세고와 함께 가던 30여척의 배가 사당에 희생을 바치면서 복을 빌자 신령이 축관의 입을 빌려 배 안에 있던 안세고를 불렀다.

신령이 전생에 안세고와 함께 출가해 도를 배우면서 공정호의 사당신이 되어 주변을 다스린다고 얘기하는데, 일부러 제도하러 왔다면서 신령이 자신의 흉한 모습을 사람들이 두려워할까봐 보이지 않자 모습을 드러내니 커다란 이무기였다고 한다. 그 신령과 대화를 나누다가 비단과 보물을 거두어 떠났으며, 그 이무기는 안세고가 떠나자 수명을 다해 저녁 무렵에 소년이 배 위에 올라 안세고 앞에서 무릎을 꿇자 안세고가 주문을 외면서 복을 빌어주어 그 소년이 사라져 안세고가 그 소년은 공정호 사당의 신령으로 흉한 모습에 벗어났다고 말했다.

예장에 당도해 공정호의 사당에서 가지고 온 물건으로 동사를 건립했으며, 광주에 가서 전생에 자신을 해친 소년을 찾아 인과에 얽힌 일과 숙명의 인연에 들려줬다. 광주에서 북상했다가 동쪽으로 향해 회계로 갔는데, 시장에 들어섰다가 싸움판이 벌어지는 것에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자들이 주먹을 잘못 휘둘러 머리를 맞는 바람에 결국 사망했다.

지루가참과 함께 중국 역사에서 불교의 초기 전래에 영향을 준 인물이다.

2. 관련 사료



[1]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전에는 글로 된 경전을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으나, 사망 후 생전에 시종하며 설법을 가장 많이 들은 아난을 포함한 일정 수준(아라한) 이상 도달한 제자 500명이 한 장소에 모여 아난이 "이와 같이 들었다~"의 형식으로 생전의 설법을 재현하면, 같이 배운 제자들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기록한 것이 그 시초다.[2] 아비달마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이치를, 제자 등 후학들이 설법 형식으로 풀어 옮겨놓은 학문. 파르티아는 당시 설일체유부(Sarvastivada) 계통의 불교가 대세였는데, 설일체유부는 이 아비달마를 중요하게 여겼다.[3] 가부좌 자세로 앉아 호흡을 깊이 하면서 내 마음작용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 수행 방법. 꾸준히 하면, 마음이 고요하고 외부 사물에 얽매이지 않게 되며, 완숙한 경지에 이르면 관찰하는 습관과 맞물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강해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