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6-28 21:18:44

아키코노무 중궁


1. 개요2. 특징3. 행적
3.1. 정편3.2. 속편(우지 10첩)
4. 기타

1. 개요

秋好中宮

겐지모노가타리의 등장인물로 정편과 속편 모두에 등장했다.

2. 특징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아버지 기리츠보테이(桐壺帝)의 동생이자 본편에서는 사망한 동궁(東宮)과 동궁비(東宮妃)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六条御息所)의 딸이다. 황제가 될 예정이었던 황태자의 딸이었기 때문에 신분상 내친왕(內親王)으로 추정된다.

여어 시절에는 재궁 출신이라서 재궁 여어(斎宮女御)라고 불렸으며,[1] 우메츠보(梅壺)에 거처한다고 해서 우메츠보 뇨보(梅壺女御)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키코노무 중궁(秋好中宮)이라는 명칭은 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와 육조원에서 대화할 당시 봄과 가을 중 어느 쪽이 뛰어나다는 논쟁을 할 당시 자신의 어머니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六条御息所)가 죽은 시기인 가을이 더 좋다고 하여 붙은 명칭이다.

3. 행적

3.1. 정편

斎宮女御/梅壺女御 → 秋好中宮

재궁 여어/우메츠보 여어 → 아키코노무 중궁

사망한 동궁과 동궁비 사이에서 태어난 동궁의 외동딸로 동궁이 일찍 사망하자 동궁비는 황궁에 딸과 함께 남으라는 기리츠보테이(桐壺帝)의 요청을 거부하고 육조원에 거처하게 되어 육조의 황태제비라 하여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六条御息所)라 불리며[2] 육조원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자라게 된다. 도중 자신이 어린 시절 히카루 겐지와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가 연인이 되기도 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이세 신궁을 관리하기 위한 재궁과 재원을 선출했는데 이들은 그 기간 동안은 무녀로서 금혼이었으며 궁을 떠나 이세에 머물러야 했다. 새로운 천황이 즉위하거나 천황이 바뀌면 새로운 재궁과 재원을 선출했으며 천황이 죽거나 물러나게 되면 궁으로 돌아오고 금혼령도 풀렸다.[3]

기리츠보테이(桐壺帝)가 상황으로 물러나고 기리츠보인(桐壺院)이 고키덴 뇨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스자쿠테이(朱雀帝)가 즉위하게 되자 이세 신궁의 재궁을 황족 여인들 중에서 하나 선출해야 했는데, 이때 선출되어 이세로 내려가게 된다. 이때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는 애집을 청산하기 위해[4] 육조원을 떠나 딸과 함께 이세로 같이 내려가게 된다. 이 때 재궁의 나이는 14살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스자쿠테이(朱雀帝)가 히카루 겐지의 아들 레제테이(冷泉帝)에게 황위를 물려주게 되자 어머니인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와 함께 상경해 겐지와도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는 얼마 후 사망하게 되어 부모 없는 홀몸이 되어버린다. 사실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는 이미 딸의 나이가 재궁 활동으로 20살 남짓이나 되었고 일반적으로 재궁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독신으로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입지가 불안하다는 것을 자신의 일로 잘 아는 만큼,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는 사망하기 전 겐지에게 딸의 후견인이 되어줄 것과 딸에게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겐지는 황족이라는 것 외에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던 불안한 신세였던 황녀의 후견인이 되기로 한다.

이는 순수한 호의만은 아니었는데 겐지는 과거 예언으로 아들 하나는 황제가, 아들 하나는 태정대신이, 딸 하나는 황후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아 그 이외의 자식을 기대할 수 없었고 아카시노카타(明石の方) 사이에서 낳은 아카시노히메키미(明石姬君)는 당시 너무 어려서 입궐시킬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겐지는 세도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후견하는 여인을 당시 황제였던 레제테이(冷泉帝)에게 보낼 필요가 있었다. 그를 위해서 동궁의 딸이자 자신 외에 의지할 자가 없던 고아 황녀를 택한 것이다.

겐지는 황녀를 입궐시키려 했는데 과거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와 함께 이세로 내려갈 당시 송별해주었던 인연으로 상황 스자쿠인(朱雀院)이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했지만 겐지는 권력을 잡기 위해 레제테이(冷泉帝)에게 보내기로 결심한 터라 거절하고 레제테이(冷泉帝)의 여어(女御)로 입궐시킨다. 이 때 레제테이의 나이는 11살, 홍휘전 여어는 12살, 재궁 여어는 20살이었다. 겐지가 양녀로 삼는 것도 고려했지만 비공식 처였던 니조노우에와 나이 차이가 1살밖에 안 돼서 그건 안 한 것 같다. 입궐할 때는 겐지와 정치적으로 연합한 후지츠보 입도 중궁[5]도 도왔다고 한다. 입궐한 황녀는 과거 재궁이었던 경험이 있어서 사이구 뇨고/재궁 여어(斎宮女御)라고 불리게 된다. 겐지는 우메츠보 여어[6]에게 연심이 있음을 고백하나 후견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고 우메츠보 여어는 모르는 척 했다.

재궁 여어는 레제테이의 여어로서 먼저 입궐해 딸을 가진 내대신[7]의 딸 홍휘전 여어와 경쟁하게 되는데 이는 이들을 후원하며 권력을 쥐려고 한 겐지와 내대신 후지와라씨와의 경쟁이기도 했다. 레제테이는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 대결을 펼치기로 하고 둘은 온갖 수단을 사용해서 우수한 그림들을 모아 서로 비등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겐지가 스마 퇴거 시절 그린 그림으로[8] 레제테이가 재궁 여어의 손을 들면서 승리한 것을 계기로 권력에 우세점을 점하게 되어 홍휘전 여어를 제치고 중궁이 된다. 재궁 여어는 중궁이 되기 전 아카시노히메키미가 입궐하면 후견을 맡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여담으로 이때 제시한 그림의 컨셉은 후지와라노 테이시 중궁을 모셨던 세이 쇼나곤이 추구하던 미관이 홍휘전 여어로, 후지와라노 쇼시를 모신 무라사키 시키부가 추구하던 미관이 재궁 여어로 나타나기 때문에 재궁 여어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즉 작가의 자뻑이다 사실 무라사키 시키부후지와라노 쇼시 밑의 직장동료인 이즈미 시키부후지와라노 테이시를 섬긴 세이 쇼나곤을 험담하는 등 성격이 그리 좋지 않았다.

겐지의 영화의 정점을 상징하는 육조원[9]의 가을 저택을 사가로 삼아 영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된다. 육조원에서 가을 저택을 사가로 삼은 것 또한 본래 어머니의 사가였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일환이다. 재궁 여어 시절 겐지가 자신에게 들이대기도 했으며 이 때 무라사키노우에와 봄과 가을 중 어느 쪽이 낫냐고 주장할 때 어머니가 죽은 가을이 낫다고 했다.(19첩 우스구모) 그로 인해 아키코노무 중궁이라 불리게 된다.

이후 육조원이 완성되었을 당시가 가을이라 자뻑으로 무라사키노우에를 도발했다가 춘추 우열 논쟁이 붙어서 논쟁한 끝에 무라사키노우에가 이긴다. 훗날 무라사키노우에가 죽자 아키코노무 중궁은 무라사키노우에가 그토록 좋아하던 꽃들이 가을에 저물기 때문에 가을을 꺼렸던 것이라는 와카를 겐지에게 보내 애도했다.

세월이 흘러 겐지 일가가 파멸하던 당시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의 사령이 겐지에게 나타나 나를 위해 염해달라 부탁해 겐지가 극락왕생 공양을 올리지만 온나산노미야의 계에도 등장하자 어머니를 위해 출가하려 하지만 "중궁인 네가 출가하면 안 된다"는 겐지의 말에 출가는 그만두고 추선 공양을 올려 어머니가 성불하기를 바란다. 무라사키노우에 사후 겐지에게 애도의 와카를 보내고, 1년 뒤 절망한 겐지가 출가를 하게 되었을 당시 카시와기의 아들인 카오루를 아키코노무 중궁에게 맡겼다.

3.2. 속편(우지 10첩)

겐지 사후 타마카즈라의 후일담 격인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겐지보다 아랫세대 사람인지라 겐지 사후를 배경으로 하는 속편 시점에서도 상황후 신분으로 살아있다.

상황 레제인(上皇 冷泉院)의 황후로 레제인이 타마카즈라의 장녀를 자기 후궁으로 달라고 하자 타마카즈라가 흔쾌히 들어주는데 이 여자가 미야스도코로(御息所)가 되어 처음에는 레제인의 딸을 낳았다 아들까지 낳게 되자 다른 레제인의 후궁들과 마찬가지로 좋지 않게 보았다. 아키코노무 중궁은 겐지의 보정을 받아 레제인의 첫 번째 부인이자 딸까지 둔 홍휘전 여어를 재치고 중궁이 되었지만, 아들은커녕 임신조차 하지 못했으니 좋게 보였을 리가 없다.

4. 기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홀몸으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인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그를 표현하는 모습이 많다.
[1] 보통 이세 신궁을 관장하는 재궁은 무녀로서 처녀로 살았으며 천황이 바뀌면 교체되었지만, 일반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작중에서는 재원이었던 아사가오노히메키미가 대표적이다. 그걸 고려한다면 작중에서 히카루 겐지의 지원이 있었다지만 입궐해서 황후 자리까지 오른 건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2] 미야스도코로(御息所)는 본래 천황의 아이를 가진 후궁을 칭하는 말이지만, 황태자비나 친왕비를 칭하는 말이기도 했다.[3] 현대에는 기혼자라도 상관없이 황족 여인이 이세 신궁의 신관을 맡고 있으며, 쇼와 시대 이후에는 혼인으로 황적이탈한 이후의 전 황족 여인이 신관직을 물려받고 있다. 현 신관은 상황의 딸 구로다 사야코.[4] 아오이노우에와의 마찰로 인해 생령이 되어 아오이노우에를 죽이는 사건이 바로 얼마 전에 있었다.[5] 후지츠보 중궁의 출가 후 명칭.[6] 겐지모노가타리에 나온 재궁 여어의 이명.[7] 주로 두중장이라 불리는 겐지의 전 처남.[8] 겐지는 그림에 상당히 뛰어나다.[9] 겐지가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에게 넘겨받은 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름을 붙여 크게 개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