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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青木雄二1945.06.09~2003.09.05
일본의 만화가. 일본에서 그림은 못 그리는데 내용이 후덜덜한 돈(金)만화 그리는 만화가하면 이 사람이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는 이 사람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된다. 그리고 잘 그리는 편이다(...). 나니와 금융도라는[1] 만화로 유명하다.
2. 생애
웨이터, 운전수, 지방공무원 등 각종 직업을 전전하며 살다가 45세에 만화가로 데뷔해(...) 엄청나게 성공한 사람으로, 만화가로 데뷔하기 전에는 산요 전기철도에서 일하기도 했다. 사실 그 전에도 만화 응모를 해 당선된 적이 있다. 사실 고생으로 치자면 와카키 타미키는 이 사람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민다.1992년 코단샤 만화상, 1998년 테즈카 오사무 문화상[2] 우수상을 수상하고, 성공하면서 살다가 7년간 연재를 끝내고 5년간 절필한 뒤 폐암으로 사망했다. 말년에 부자로 산 게 낙이라면 낙일까. 비슷한 내용인 카바치타레의 초안만 짜줬다.
건물주이자 집 주인이었던 인생 말년과는 별개로, 의외로 생전에 무신론자이자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이기도 해서, 일본공산당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다.[3] 또한 자민당을 어디가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정당이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의외로 그의 사후에도 현존하는 아오키 유지 프로덕션에서 아오키가 생전에 집필한 사금융의 폐해를 고발하는 르포 서적은 물론, 유물론, 마르크스 경제학 관련 서적도 출판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만화가로 데뷔했다고 한다.
3. 만화
그의 만화 나니와 금융도는 사채만화로 평범한 삶을 살다가 채권 추심회사에 취직한 주인공의 일대기를[4] 다룬 만화이다. 2000년대 전후의 만화를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왠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을 텐데, 실제로 은과 금, 도박묵시록 카이지, 사채꾼 우시지마 등이 이 작품을 모티브로 삼기도 했고 '빚'이나 '사채'하면 나니와 금융도를 떼고 볼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일본 서브컬처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부작용으로 <미나미의 제왕>이 영화판에서 나니와 금융도를 베꼈는데, 결국 저작권침해로 법정까지 가서 스토리작가 텐노지 다이, 작화담당 코우 리키야가 모닝에 사죄광고를 실어야 했던 적이 있다.[5]사후 나니와 금융도 시리즈는 그의 개인회사이기도 한 아오키 유지 프로덕션에서 연재하고 있으며, 작화, 감수의 형태로 코단샤, 쇼가쿠칸, 사후에는 아오키 유지 프로덕션 명의로 슈에이샤에서 책을 내기도 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키타 쇼텐, 후타바샤에서도 출간되었다.
그림체가 예쁘지 않아서 주로 실사판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며, 그림체와는 다르게 당시 SMAP의 나카이 마사히로가 주연을 맡기도 했고, 영화판에서는 타카스기 마히로가 주연을 맡다. 그의 만화의 특징은 여백의 미 없이 항상 배경으로 꽉꽉 채운다는 것. 현대 만화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지만 그의 만화에는 그런 게 없다,
[1] ナニワ金融道, 1990 ~ 1997, 전 19권 완결[2] 수상동기가 일본 만화계의 레전드인 다니구치 지로, 이시노모리 쇼타로인데, 정작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오키는 테즈카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츠게 요시하루 등에 끌렸다고.[3] 일본에서는 의외로 제도권 정당으로 자리잡은 일본 공산당을 지지하는 소상공인들도 많은 편이다.[4] 샐러리맨이었던 주인공 하이바라 다츠유키(灰原達之)가 회사 사장이 회삿돈을 떼 먹고 야반도주해 회사가 망한 뒤 사채 회사에 들어가 떼인 돈을 받아내면서 성장한다는(...) 내용이다. 떼인 돈을 받아내는 것이니 당연히 기분은 안 좋지만 원래 그 바닥이 그렇다. 이 때문에 사회초년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만화로 많이 언급되며,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인생에서 읽어야 할 만화로도 많이 언급되기도 한다.[5] 이 때문에 아오키는 미나미의 제왕을 짝퉁 작품으로 보고 상당히 싫어했는데, 정작 텐노지 다이도 훗날 자신의 만화에서 사채꾼 우시지마를 비판하는 에피소드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