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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11:23:29

써에이스쇼 sirace show

파일:쎄에이스프로필.jpg
크리에이터 닉네임 <colbgcolor=#ffffff,#191919>써에이스
채널 이름 써에이스쇼
가입일 2016년 4월 10일
구독자 수 46.1만 명[A]
총 조회수 76,911,477회[A]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유튜브 활동3. 여담4. 논란
4.1. 영상 내용 관련 논란4.2. 차별금지법 반대4.3. 2024년 의대 증원 관련4.4.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영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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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역사 및 정치/시사 유튜버.
최근에는 정치시사 쪽으로 비중을 높이고 있는 추세이며, 성향은 우파적이다.
지금까지 ~시리즈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써에이스였습니다.

시리즈 마무리 멘트

2. 유튜브 활동

3. 여담

4. 논란

4.1. 영상 내용 관련 논란

4.2. 차별금지법 반대

차별금지법에 반대합니다.
아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을 때 우려되는 점입니다.
-약자는 절대적으로 옳으며 비판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성역이 생김
-성소수자들이 평등을 넘어 우대받는 분위기가 조성됨
-조금씩 법이 강화돼 약자 보호 뿐 아니라 사상/이념으로 까지 영역이 확장될 우려가 있음
-시정명령이 이행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계속해서 부과됨
-차별금지법/평등법이 통과된 나라에서 PC주의나 래디컬 페미니즘이 만연한 것을 보면 우려가 현실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음.
-차별행위 부분에서 추상적이고 모호한(예: 성감수성)
-피해자가 차별받았다고 주장하면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을 상대방 입증해야 함(유죄추정 원칙)
-결국 표현의 자유가 위축됨 개념으로 구성돼 광범위하게 적용될 우려가 있음.

역사 유튜버로서 저는 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이 맞이한 중대한 문제이며 유튜버 로서 자유롭게 영상을 만드는데도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생각해 용기를 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의견에 반대하신다면 댓글 달아주세요.

감사합니다.

4.3. 2024년 의대 증원 관련



2024년 의대 증원 및 전공의 집단 사직과 관련한 영상을 올렸다. 중립을 표방한다는 본인의 설명과 달리 사실상 영상이 편향된 시각으로 의사쪽의 주장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이 많았으며, 본인의 영역인 역사 영상에나 집중하라는 반응이 늘어났다.

4.4.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영상 논란


2024년 7월 27일 마르크스에 대한 악마화를 시도한 영상이 올라왔다.

마르크스에 대한 경제적, 철학적, 과학적 논증에 대한 비판은 역사적으로 지속해서 이어졌지고 칼 포퍼와 같은 "마르크스의 주장이 과학인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 등 매우 건설적인 비판을 담은 내용이 아닌, 일방적인 비방만이 담겨 있는 내용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써에이스쇼는 마르크스가 작성한 공산당 선언은 공산주의의 10개 강령을 명시했으며, 급진적인 정책을 내놓았다고 말했으나 이는 공산당 선언의 책 한 글자도 들여다보지 않은 무지함을 나타냈다.

또한 마르크스 주의와 그 이후에 있던 소련(중국,북한 맥락상 그렇다) 공산주의와 동일시하게 여기며 공산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짚었는데 근대 역사에 대한 무지를 나타낸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그가 영상의 참고자료로 사용한 책들에 있다.
써에이스쇼는 3가지 책을 핵심 근거로 삼았는데, 로버트 페인의 전기인《마르크스》, 리처드 웜브런트의 《마르크스와 사탄》, 폴 켄고르의 《악마와 마르크스》이다. 그 중 리처드 웜브런트를 가장 많이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저술들이 일반적인 학술적 분석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는 선이고 저들은 악이라는 이분법적이고 기독교 기반 종교적인 메시지가 강한 책이란 점이다.

로버트 페인

먼저 로버트 페인은 전기 작가로 유명한 인물이긴 하나, 그는 "정확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기 보다는 읽기 쉽고 문학적인 표현"으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도 많이 받았다.

로버트 페인은 "정치적 음모론"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며, 그 스스로도 역사적 추측이나 음모를 곧이곧대로 서술로 옮겼다고 시인한 바 있다. 즉, 페인은 기본적으로 역사적 고증에 철저한 편이 아니었다. 이것이 가장 큰 논란으로 번졌던 것이 그가 쓴 《히틀러》에 대한 전기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히틀러를 의도적으로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하려 했고, 그가 히틀러의 인간적 특성을 옹호하기 위해 내세운 자료들조차 이미 학계에서는 반증된 자료들이라 큰 비판을 받았다. [13]

따라서 로버트 페인의 전기를 근거로 역사적 고증을 시도하려는 것은 완전한 오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리처드 웜브런트

리처드 웜브런트는 루마니아에서 활동하던 기독교 사제이다. 기본적으로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서로 반목하는 관계에 있었다. 실제로 그는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탄압과 박해를 받았던 종교인이었다. 따라서 미국으로 이주 이후에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억압받는 기독교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개시했다.

웜브런트는 공산주의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것은 사실이나, 그가 시도한 마르크스에 대해 접근한 방식이 중립적일 수 없었을 뿐더러, 학술적 측면을 벗어난 기독교인 관점에서의 일방적인 비난에 가깝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그의 저서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폴 켄고르

폴 켄고르는 신자유주의자이자 열렬한 레이거노믹스 신봉자였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그 역시 열렬한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보수 싱크탱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주로 레이건과 조지 W.부시와 같은 미국 내 신자유주의의 부흥을 이끌었던 인물에 대한 저술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정치/사회적 면에서 진중하게 따지고 든 책이 아니란 점이 문제이다.

폴 켄고르는 그의 신앙적 배경에 기반하여 인물을 평가했고, 마르크스를 사탄에 빗댄 것과 반대로, 《레이건과 십자군》, 《하나님과 로널드 레이건》같은 저술을 통해 그가 지지하는 인물에 한해서는 그 공과를 떠나서 거의 신적인 숭배와 찬양을 한 인물이다. [14]

즉, 위 세 인물의 저작 모두 역사적 고증이나 학술적 논의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들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념적 편향성을 기반으로 저술을 했고, 냉전 시기에 영향을 크게 받은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기독교'라는 종교적 특성에 깊이 관여하여 마르크스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기록으로 보기 힘들다. 실제로 이들의 저술이 학계에서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많은 비판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학문과는 관계 없는 노골적인 종교적 특성에 있다.

써에이스쇼가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정치학이나 역사학을 기반으로 한 저술이 아닌 종교 계열과 깊이 연관된 저술을 참고문헌으로 이용했다는 것은 사실관계에 심각한 오류와 편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사실, 써에이스쇼가 공산주의를 비판하고 싶었다면 이에 관한 공신력있는 참고문헌은 많다. 대표적으로 공산주의 이념과 매커니즘이 필연적으로 자유의 억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치밀하게 분석한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2》, 보수주의 학자로서 공산주의의 흥망성쇠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서 왜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를 주장한 리처드 파이프스의 《공산주의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공산주의의 모순이나 결점을 지적한 학술서들이나 양서들은 차고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써에이스쇼는 이념이나 사상에 대한 공신력 있는 비판이 아니라, 단순한 음모론 취급을 받는 종교적 서적과 이분법적 논리를 통해 메신저(마르크스) 자체를 악마화하는 작업에 치중했다.

이런 것은 종교적 편향, 비종교적 편향을 떠나서 학문의 '가치중립성' 측면에서 위배된다. 물론, 모든 학문이 학자 개인의 가치관과 배경이 관여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함에도 모든 논문 평가는 치밀한 토론과 반박을 통해서 최대한의 중립성을 지키는 선에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학계에서 과연 일방적으로 "OOO는 사탄숭배자다.", 그러한 서신과 행동을 내가 봤다고 주장한다고 그것에 찬동하는 학자가 몇이나 있을까? 나아가 "그는 악마니까 그의 사상을 논의하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말을 학계에서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다. 이것은 좌우의 문제를 떠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음모론과 악마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동시에 수많은 학문적 가치가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마르크스를 악마화하여, 그의 사상이 사실상 사탄숭배에서 비롯됐다는 방식으로 사상과 논리를 와해시키는 것은 매우 편하고 쉬운 작업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철저하고 오랜 연구를 통해 그 문제점과 모순을 비판한 여러 학자들의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러한 음모론이 학계에서 정당하게 받아들여졌다면, 칼 포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리처드 파이프스,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학자들은 상대 논리를 손쉽게 논파할 이런 악마화 작업에 대해 일언반구도 인용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학문적 비판에 정당성을 부여해주지 못함을 알기 때문이다.

써에이스쇼는 영상 말미에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언급하며, 이들이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 마르크스 악마화 작업을 통해서 이를 뿌리에 둔 학문에 대한 손쉬운 비판을 빌드업하고 있는 셈이다.
실례로 페미니즘, 민권운동을 시작으로 현재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PC주의)'의 태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을 비롯한 6.8혁명 이후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런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작업은 이미 학계에서 진중하게 논의되고 있다.
가드 사드의 《기생충 마인드》, 더글러스 머리의 《군중의 광기》, J.린지의 《냉소적 이론들》 등은 이미 대중서적으로 시중에 출판되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누군가를 악마화함으로써 사상을 와해할 수 있다면 이들의 연구와 학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긴 시간, 수많은 참고 문헌을 뒤져가며 연구하며 결과를 내놓았는데 어떤 이들은 단순히 음모론 하나 뚝딱 던져서 모든 논의를 무마하려고 한다면 학문에는 어떤 가치가 남아있을 수 있을까?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해 매우 비판적이지만, 저자가 놀라울 정도로 자신이 비판하는 그 사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자각시켜준다.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생각이든 약간의 진리는 포함하고 있기에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논의를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토양에서야 자유란 가치는 지켜질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많은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화" 작업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탈인격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좌우를 막론하고 수많은 독재자들이 즐겨썼던 방식임을 알아야 한다. 특정 인종, 사상에 대한 제노사이드가 일어나는 방식은 먼저 한 사람의 인격을 말소시키는 것에 있다. 히틀러, 무솔리니는 물론이며 써에이스쇼가 비판하는 인물인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와 같은 자들이 제노사이드에 앞서 했던 행위가 바로 학살 대상에 대한 비인격화, 악마화 작업임을 기억하라.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을 때, 스탈린이 대숙청을 시작했을 때 이들은 사상검증의 일환으로 그들의 인격적 반성을 성토할 것을 강요했고, 대중 앞에 그들을 악마로 몰아 돌멩이를 던지도록 만들었다.

써에이스쇼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고 비난하던 그 똑같은 방식으로, 특정 인물을 비판하여 사상적 토대를 허무려고 한다. 과연 그것은 온당한 작업인가? 그리고 역으로 한 인물에 대한 우상숭배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어째서 폴 켄고르와 같이 레이건에 대한 우상숭배 작업을 시도한 인물의 책을 인용한 것일까? 이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교학으로서의 기독교 사상 연구와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을 위해 사탄과 악마를 언급하는 일종의 '이단심문'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다. 프란시스 쉐퍼,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같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그들의 신학적 작업에 과연 특정 사상이나 인물을 악마화하는 일에 열정적이었는가? 좀 더 대중적인 신학자인 C.S 루이스만 하더라도 자극적인 언동과 선언으로 '이단심문'과 '악마사냥'에 열중했던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그들이 종교적으로 신앙적으로 헌신했던 학문은 악마사냥과 음모론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15]
그리고 이런 악마사냥 형식의 '이단심문'이, 같은 의미로 사상검증을 위한 '인민심판'과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보라.

써에이스쇼의 작업은 마치 "극과 극은 통한다"라는 이야기처럼, 자신이 반대하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반박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한 인물의 인격과 그 인물의 작업물을 동일시하는 것 역시 오류이다.
당장, 위대한 업적을 쌓은 인물 중에 인격적으로도 성인군자였던 인물이 몇이나 있을까? 이러한 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인들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성 때문에 그들이 낳은 유산이 부정되지는 못한다. [16] 예를 들어, 칸트를 보자. 그는 매우 엄격한 의무론적 윤리관을 정립하여, 어떠한 이익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닌 마땅히 행해야 하기에 그 행동을 하는 것을 올바르다 보았다. 하지만 칸트도 인간인지라 언제나 자신의 주장대로만 살 수는 없었을 것이며 때로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자신의 윤리사상과 배치되는 행적을 보인 적이 있다는 점으로 그의 윤리학을 비판하며 이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매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비판일까? 이러한 식의 매도는 대단히 온당치 못하다.

당대의 위인들이 쌓은 업적에 비해, 그들의 실질적인 인성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책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당장 폴 존슨의 《지식인의 두 얼굴》이나 마크 릴라의 《분별없는 열정》같은 책을 보면, 우리가 위대하다고 여겼던 인물들의 현실적 허울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저자들이 말하듯이, 그들의 실질적 면모가 그들이 쌓은 업적과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한 인간의 위선이나 악한 모습으로 그 모든 것을 평가하여, 그들의 업적과 유산을 부정하려 한다면 우리가 실생활에서 포기해야할 것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만약, 그들의 성격 문제로 그들의 사상을 부정하거나 뜯어고쳐야 주장한다면, 써에이스쇼가 비판하고자 하는 "정치적 올바름" 세력들이 과거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문화적 특성을 무시하고 "지금의 시선"에서 "자신들의 관념"을 바탕으로 저 사람은 "백인 남성이니까,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으니까"라는 이유로 그들을 배척하고 논의를 무산시키려고 하는 행위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애초에 일반적인 역사 유튜버가 사상이나 이념에 대한 특정 범주의 비판을 하는 경우도 드문 편인데, 공정한 비판을 떠나서 한 인물에 대한 '악마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도 기존 역사 유튜버의 틀과는 크게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가 현대 좌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면 의도가 더욱 명확해지는데, 좌파 사상의 상당수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마르크스는 악마숭배자이므로 그 영향을 받은 좌파 사상들 역시 악마라는 주장을 한 것이 된다. 단순히 마르크스가 아닌 좌파 자체에까지 악마화를 시도한 것이다.

사실 유튜브가 조회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음모론이나 루머를 인용하여 영상을 만드는 경우는 많다. 실례로 써에이스쇼가 언급했던 서적들도 주로 학계가 아니라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 황색언론에서 주로 인용되는 책들이다. 하지만 써에이스쇼는 단순한 유튜버가 아니라 역사를 기초로 성장한 '교양 유튜버'라는 점을 상기하여야 한다.

최근 써에이스쇼의 역사 유튜버 범주를 벗어난 대안우파적 행보, 나아가서는 기독교 보수주의적인 모습을 보았을 때, 다분히 의도적인 영상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 2023년 5월 5일 기준[A] [3] 삼국사기에서 고구려와 위나라가 요동 문제로 엮이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마의도 잠깐 등장하여 검은색 명패를 달았다.[4] 구독자 10만 기념 생방에서 언급[5] 구독자 10만 기념 생방에서 언급.[6] '기병 활용과 3단 발사 전법에는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라는 자막을 덧붙이긴 했다.[7] 임진왜란 편에서도 이 사안에 대한 지적을 받았는지 고정 댓글로 자신이 참고한 자료를 올리며 견해를 덧붙였는데, 요약하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에 가장 권위있는 자료는 당대와 '가장 근접한 시기에 쓰여진 사서'이다. 후대의 추론은 한계를 보일 가능성이 존재하며, 반론이 있다면 그에 대한 재반론도 가능하다. 하여 사서 기록을 최대한 존중하겠다. 자신이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에 대한 반론 또한 존재함을 알아달라.>라고 할 수 있다.[8] 이 주장은 스스로 역사에 대한 이해가 얄팍하다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2차 사료가 1차 사료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뢰도로 치자면 1차 사료는 2차 사료를 정리해 모아놓은 3차사료만 못한 경우가 숱하다. 당대의 기록인 1차 사료는 교차검증의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사료적 가치는 당대의 기록인 1차 사료가 더 높지만, 사료의 신뢰도는 후대의 해석이나 연구가 진행된 2차 사료가 더 높다.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사료에 편집자의 왜곡이나 곡필이 더해질 우려가 가장 심각한 것이 1차 사료이다. 톡 까놓고 말해서 역사적 자료 해석에 대한 기반 지식이 전무하거나 자신이 믿고 싶은 자료를 우선시하기 위한 변명에 가깝다. 결국 역사 유튜버 지식 출처의 한계를 뵤여줬으며 역사 유튜버의 내용을 맹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9] 정작 는 유비를 두 번 씩이나 배신했으며 만만하게 보던 유비가 갑자기 강경한 태도를 보이자 적반하장 식으로 반응한 것에 불과하다.[10] 또한 현재 추세로는 동로마, 서로마의 분열이 아니라 공화정 말기의 삼두정치나 제정 시기의 사두정치처럼 거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한 나라 안에 여러 황제를 두어 제국을 지배했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11] 이는 다르게 말하면 '서로마', '동로마' 라는 제국으로 쪼개져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것이 아닌 제국의 서부를 상실했다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다.[12] 다만 날씨와 마약 다음으로 가벼운 문제로 지적하는 점에서 확실하게 띈다고 보기도 애매한 면은 있다.[13]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Payne_(author)|#[14] https://en.wikipedia.org/wiki/Paul_Kengor[15] 물론, 이 분야에서 유명한 서적이 있긴 하다. 하인리히 크라머의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마녀사냥 시대를 위한 역사문화적 사료로 쓰긴 하더라도, 신학적 연구가치로서의 의미는 완전히 퇴색됐다는 점을 기억하자.[16] 이는 당장 기독교적 사상 측면에서도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사실과, 그 본연의 죄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죄사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일갈하는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