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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16:27:58

신산축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명 신윤식(申潤植)
덕휘(德輝)
출생 1907년 8월 2일
경상북도 의성군 산운면 개일동
(현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갑장골마을)[1]
사망 1939년 3월 25일[2] (향년 31세)
일본 제국 나고야시
본관 아주 신씨[3]
묘소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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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신진현은 그의 7촌 재종질(再從姪)이다.

2. 생애

신산축은 1907년 8월 2일 경상북도 의성군 산운면 개일동(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갑장골마을)에서 아버지 신한주(申漢柱, 1876 ~ 1953. 1. 19)와 어머니 영천 이씨(永川 李氏) 이유재(李柳在)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4]

그는 1932년 5월 17일 일본 아이치현에서 문화보급회를 조직하여 한국인 노동자의 권익보호활동 및 민족의식 고양을 위한 계몽활동을 하였으며, 1933년 6월경에는 나고야부 노리타케정(則武町)에 거주하면서 나고야에도 문화보급회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던 중 1938년 12월 5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939년 2월 12일 나고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도중에 잔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같은 해 3월 25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인근의 도경리·하리와 함께 아주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진현도 이 마을 출신이다.[2] 아주신씨 인터넷족보에는 1935년 2월 4일에 사망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3] 판관공파 22세 식(植) 항렬.[4] 어머니 영천 이씨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며, 첫째 부인 창녕 성씨 성인식(成仁植)의 딸은 1879년 부용당 성안의(芙蓉堂 成安義)의 후손으로 태어나 자식을 낳지 못하고 1899년 12월 29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