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1:22:31

신진현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신진현
申璡炫[1]炫으로 기재되어 있다.]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신진섭(申振燮, 申鎭燮)
진옥(進玉)
본관 아주 신씨[2]
출생 1892년 6월 9일
경상도 의성현 산운면 개일동
(현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갑장골마을)[3]
사망 1950년 6월 26일[4] (향년 58세)
묘소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갑장골마을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신산축은 그의 7촌 재당숙(再堂叔)이다.

2. 생애

1892년 6월 9일 경상도 의성현 산운면 개일동(현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개일리 갑장골마을)에서 아버지 신명식(申命植, 1857 ~ 1944. 11. 25)과 어머니 함양 박씨(1858 ~ 1933. 1. 9) 박두섭(朴斗燮)의 딸 사이의 4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통의부에 입단하였고, 1923년부터 대한통의부 소속 흥경현(興京縣)[5] 총관부원(總管部員)으로 흥경현을 비롯해 봉천성 관내의 개원현(開原縣)[6], 철령현(鐵嶺縣), 무순현(撫順縣) 등지를 순회하며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1924년 1월 봉천 주재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고, 같은 해 2월 1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하다가, 6.25 전쟁 발발 이튿날인 6월 26일 사망했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1] 1924년 수형인명부에는[2] 판관공파 23세 현(炫) 섭(燮) 항렬.[3] 인근의 도경리·하리와 함께 아주 신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신산축도 이 마을 출신이다.[4] 아주신씨족보에는 6월 29일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5]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만주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6]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 톄링시 카이위안시(開原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