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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주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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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주주의당
Νέα Δημοκρατία | New Democracy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35cc7> 한글명칭 신민주주의, 신민주주의당, 신민주당, 신민당
슬로건 Σταθερά, Τολμηρά, Μπροστά
꾸준하고 과감하게 앞으로!
창당일 1974년 10월 4일
당사 아테네
대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의회
156석 / 300석
유럽의회
7석 / 21석
상징색
파란색 (#135CC7)
이념 자유보수주의
친유럽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스펙트럼 중도우파
청년 조직 신민주주의청년조직
노동조합 조직 노동자민주독립운동(ΔΑΚΕ)
유럽 정당 유럽 인민당
유럽의회 정당
국제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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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당가4. 역대 선거결과

[clearfix]

1. 개요

그리스중도우파 정당.

1974년 그리스 군사정권이 무너진 이후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창당하였다. 전 세계 보수 정당의 협력기구인 국제민주연합 회원이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가 총리에 선출되면서 여당이 되었다.

당명을 직역하면 그냥 '신민주주의'이지만, 정당 이름이 '당'으로 끝나는 것에 익숙한 한국 정서상 국내 언론들은 '신민주주의당' 혹은 '신민주당'으로 표기하고 있다.

2. 상세

그리스 왕국 시절에 권력을 잡았던 우익 왕당파 정당인 국민급진연합[1]의 후신이지만, 1974년 국민투표에서 왕정복고가 부결된 이후 당의 주류 세력은 현 공화국 체제를 지지하는 노선으로 전환하고, 끝까지 왕당파로 남은 세력은 당내에서 비주류로 전락했으며, 지금은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가 이끌던 자유당의 후예들이 보수화된 자유주의 우파부터 정교회에 기반한 기독교 민주주의기독교 우파 세력까지 다양한 부류가 포진해 있다.

1970년대부터 2천년대까진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과 함께 사실상 양당제로 그리스 정국을 이끌어왔다.

지역적으로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앙 마케도니아~서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중산층, 노년층에서 지지를 주로 얻는 편이다. 에게해들의 무수한 섬과, 아테네 근방, 아티키, 서부 그리스 등지에서는 인기가 없다. 전체적으로 동부 및 북쪽에서 지지를 얻는다고 보면 된다.

왕정 시절에 총리를 지내다가 1962년 총선 패배 이후에 프랑스로 떠났고, 군사독재정권이 들어서자 반독재운동을 펼쳤던,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귀국한 뒤에 국민들의 신임을 바탕으로 거국내각을 이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신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는 신민주당을 창당한 뒤에 1974년 총선에서 2/3를 넘는 개헌의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두었고, 차근차근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1977년 총선에서 171석을 확보해 정권연장에 성공했다. 카라만리스는 유럽공동체(EC) 가입을 하는 등의 업적을 이루어냈다.

1980년에 카라만리스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후임인 게오르기 오스라리스가 재임했으나 EC가입으로 농민들이 큰 타격을 입고, 고물가, 고실업, 빈부격차 문제로 지지율이 떨어져 결국 재임 1년만인 1981년 총선에서 115석에 그치는 참패를 해,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에게 정권을 내주고 이후 8년간을 야당 신세로 지낸다. 그런데 범 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소속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2기 집권 말에 승무원 출신의 34세 이혼녀(당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69세)와 사귀고 조강지처와 이혼하는 스캔들을 일으킨다. 또 크레타 은행 비리사건에 측근들과 각료들이 대거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궁지에 몰리게 되면서 그 반작용으로 신민주주의 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여 1989년 총선에서 신민주주의당은 원내 1당으로 올라선다. 결국 공산당(!)과 거국정부를 설립했고 이후에 다시 치러진 1990년 총선에서 드디어 단독 집권에 성공했다. 거국 정부 수립 당시에 사회당의 지지율이 크레타 은행 스캔들로 급하락했던 상황이긴 했지만 의석보정제도 폐지로 신민주당의 의석은 과반을 넘길수준이 아니었고, 타 보수정당의 의석수를 합해도 과반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촌극이 벌어진 덕분에 1993년 총선때부터 의석보정제도를 재시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단독집권 후에 신민주주의당은 대대적인 사기업화와 긴축정책으로 지지율이 떨어졌고 93년 총선에서 참패하여 고작 4년만에 야당신세로 전락하고 다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의 사회주의 운동에게 정권을 넘겨줬다. 그리고 11년을 야당신세로 지내다가 2004년 총선때 당시 올림픽으로 사회주의 운동당이 유리할것이라는 에측이 있었지만 선거 도중에 거액의 올림픽 개최비용 문제와 당시 10%을 넘던 고실업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궁지에 물리던 사회주의 운동 정권을 제압하고 집권에 성공했다. 신민주주의당은 집권하면서 관광산업 호황과 부동산 활황을 바탕으로 연 4%대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었고, 긴축정책도 충실히 수행하면서 그리스를 그럭저럭 잘 이끌어나갔다. 지금이야 빈부격차가 커졌다는 문제 등으로 엄청나게 까이지만 당시 유럽연합으로부터 긴축정책 모범국으로 칭송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7년 대규모 산불사태가 일어나고 미흡한 대처로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경기가 활황이었기 때문에 재집권에 성공했었다. 하지만 여기에 훼이크가 있었다.

2008년에 거품경제 붕괴가 가시화 되고, 청년실업과 저임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사실 유로존 위기때문에 2000년대 중반에 그리스가 엄청나게 꿀 빨아댔다가 망했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상 계층이나 세대별로 그 혜택의 수위는 크게 달랐고, 빈민층의 경우에는 유로화 가입 이후 물가(특히 부동산값)가 급속히 오르는 바람에 상당한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고 한다.[2] 그리스의 경우 특히 젊은층은 2000년대 중반 호경기 시절에도 청년실업률이 20%대에 달했고, 취직한다해도 저임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뭐, 최저임금이 592유로로 떨어진데다가(2000년대 중반 당시에는 최저임금이 750유로였다.) 청년실업률이 거의 60%에 달하는 상황이라 그 정도 수준의 임금도 감지덕지한 상황인 2010년대에 비하면 한참 낫기는 했지만.

청년실업과 저임금문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던 차에 과잉진압으로 시위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분노한 청년들의 시위가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신민주주의당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진다. 결국 2009년에 조기총선을 치렀고 조기총선에서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에게 정권을 빼았기고 개헌저지선을 밑도는 참패를 당했다.

하지만 범 그리스 사회주의 운동도 경제위기에 관해 딱히 긴축외엔 다른 대책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그 이전에도 재정적자 문제가 있었긴 했지만 범 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이 정권을 탈환하고 나서 감사를 벌이던 도중에 신민주당 정권 당시 재정적자를 대규모로 은폐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때문에 갚아야 할 빚이 급증했는데, 안 그래도 부동산 시장 붕괴와 청년실업,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의한 관광산업 침체라는 3중고를 겪던 상황이라 세수가 줄어들었으면 줄어들었지 늘어날리는 당연히 없었기 때문에 결국 공약으로 내세웠던 실업문제 해소와 복지확충은 고사하고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긴축재정에 매달릴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2011년 '그리스 신민주주의당'과 '범 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은 대연정을 구성했다. 하지만 연정했다고해서 경제가 더 나아지지는 않았고, 결국에 독립 그리스인이나 황금 새벽당에게 상당한 지지기반을 내주고 시리자가 원내 2당이 될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긴장하는 추세다.

2012년 유럽연합이나 전 세계의 투자자들은 6월 17일 2차 총선에서 이 정당이 정권을 잡기를 정말정말 바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시리자가 집권할경우 디폴트 선언으로 유로존을 파국으로 끌고 갈거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신민주당을 측면 지원하기 위해 긴축안을 유지하면 대출 금리를 낮춰주겠다라는 당근책을 제시했고 시리자도 이 당근책에 과격한 입장에서 물러서는 양상. 과연 유럽연합의 당근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두고봐야할듯. 실제 결과는 시리자를 근소하게 앞서 1당을 유지했고 동시에 보너스 의석을 얻어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민주좌파당와 안정적인 연립정권을 구성할걸로 보인다. 이로써 금융기관과 EU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6월 20일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민주좌파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이 정당의 대표인 안토니스 사마라스 수상이 취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 전문가들은 이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재무장관을 좌파쪽에게 넘겨주긴 했으나 대부분의 각료들을 보수 우파들로 채워넣은 탓에 연정이 쉽게 깨질수도 있다는것. 물론 미증유의 국난 상황이라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등의 좌파가 쉽게 발을 빼지는 않는다고는 해도 정권의 불안정성은 지속될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시리자는 이점을 지적하면서 결국 정권이 시리자에게 넘어올것이라고 하는중.

이런 우려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연정은 처음부터 구설수에 휩싸이고 있다. 본래 재무장관에 지명된 바실리스 라파노스 지명자가 건강상의 이유로 지명을 포기함에 따라 유로존 가입에 자문을 한 경제학자 야니스 스투르나라스가 새로 재무장관에 지명되었다. 또한 기오르고스 베르니코스 상업해양부 장관도 전격 사퇴했는데 이유는 해외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것 때문에 야당의 비판을 피하기 위한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급진좌파연합한테 참패했다.

2014년 연말에 대통령 선출에 실패하면서 실시된 2015년 1월 25일에 열리는 조기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에게 패하여 정권을 내어주었다.

2015년 2월 12~13일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조기총선때보다도 지지율(18.4%)이 추락해 라이벌인 시리자(45.4%)에게 크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2차 총선 판세를 보면 대체적으로 시리자와 초 접전을 보이고 있다. 신민당의 지지율이 특별하게 높은게 아니고 시리자가 두개의 정당으로 분당된 영향이 큰걸로 보인다. 급진좌파연합 탈당파들이 만든 민중연합이 5% 이상씩 먹고 있으니까.. 이런데도 접전이다?? 하지만 정작 개표함까보니까 사상 최저의석을 얻었고 득표율도 소폭 오르기는 했지만 투표율이 55.2%로 사상최저치를 기록한걸 감안하면 대패한거나 다름없다.

일단 2016년 초 지지율은 시리자를 제치고 1위를 탈환한 상태이며 2017년 초에는 시리자를 더블 스코어로 앞서고 있다.#

2015년 75명이 당선되었는데, 이 당 소속으로 당선된 2명의 의원이 탈당해서 그리스 기독민주당대중정교회연대로 입당했는데, 오히려 3명의 타 당 의원을 끌어와서 76명으로 한 석 늘었다. 그 후, 2명은 다시 복귀하여 선거때보다 78석으로 늘어났다.

2019년 총선을 앞두고 시리자 정권하에서 2015년부터 계속 되었던 긴축 정책과 치프라스 총리가 마케도니아 명칭 분쟁에서 마케도니아를 북마케도니아로 국명을 변경하는 것을 밀어붙이면서 불거진 엄청난 반대여론의 여파로 인해 안 그래도 떨어지는 시리자의 지지율이 점점 더 떨어지면서 신민당이 시리자에게 여론조사 평균 두자릿 수의 지지율 우위를 보이면서 정권 탈환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9년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치러진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시리자는 신민당이 득표율 33.11%을 달성, 집권 여당인 시리자의 23.78% 득표율을 앞서는 쾌거를 이뤘다. 결국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2019년 10월에 예정되어있었던 총선 일정을 앞당겨 7월 7일에 치르기로 결정했다. # 여기에 유럽의회 선거와 같은 날에 치러진 지방선거와 다음 달인 6월 2일에 치러졌던 지방선거 결선 투표에서도 수도인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주를 비롯한 전체 13개 주 가운데 12개 주의 주지사 선거를 싹쓸이하는 대승을 거둬 시리자로부터 정권 탈환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

결국 2019년 7월 조기총선에서 40%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으며 158석을 확보해, 단독과반을 돌파했다. 매일경제는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당대표가 세금 감면, 일자리 창출, 공기업 민영화,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시장 친화적 정책을 내세워서 시장의 기대감이 높아졌다고 한다. 좌파적 경제 정책에 국민들이 염증을 느꼈다고 분석했다. # 다만 반대의견도 있는데, 애초에 시리자와 치프라스가 취했던 경제정책들은 좌파적 경제정책이 아니라 국제채권단이 요구한 신자유주의적인 구제금융 체제를 받아들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국제채권단이란게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국가이다. 긴축정책도 국제채권단이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즉, 비판을 하자면 총선에선 좌파적 공약으로 당선된 급진좌파연합이 이후 공약을 파기하고 긴축정책을 편 것을 지적해야지 좌파적 경제 정책 운운하는건 핀트가 엇나갔다는 것.

더구나 지지율 격차도 신민주주의당이 39.8%이고 시리자가 31.6%로 선거전에 예측되었던 것보단 훨씬 줄어 줄었다. 만약 마케도니아 명칭 문제로 그리스 국민 감정이 악화되지 않았다면 신민주주의당이 승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더구나 황금새벽당이 몰락하면서 우파표가 신민주주의당으로 몰린 것도 승리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게다가 신민주주의당이 158석을 확보한 건 선거 결과 제1당에 추가로 50석을 배정해주는 그리스의 선거 제도 때문이다. 즉, 선거에서 실제 획득한 의석수는 108석. 다만 이 총선을 마지막으로 선거법이 개정되어 향후 총선부턴 제1당 50석 추가는 볼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신민주주의당이 집권 이후 선거법을 바로 갈아버리면서 원래대로 돌아갔다.

3. 당가


4. 역대 선거결과

1974 220/300 73.33% - 개헌선을 넘어서는 역대 최다의석.
1977 171/300 41.84%
1981 115/300 35.87% - 정권 상실.
1985 126/300 40.84%
1989 1차 145/300 44.28%
1989 2차 148/300 46.19%
1990 150/300 46.89% - 집권.
1993 111/300 39.30% - 정권 상실.
1996 108/300 38.12%
2000 125/300 42.74%
2004 165/300 45.36% - 집권.
2007 152/300 41.84%
2009 91/300 33.84% - 정권 상실. 개헌저지선에 미달하는 역대 최저 의석수.
2012 1차 108/300 18.85% : 득표율로만 보면 2009년 총선때보다 15% 가량 낮으나 의석 보정제도 덕택에 개헌저지선 확보.
2012 2차 129/300 29.66%
2015 1차 76/300 27.81%
2015 2차 75/300 28.1%
2019 158/300 39.8% - 집권
2023.5 146/300 40.79% - 정권 상실
2023.6 158/300 40.55% - 집권

[1] National Radical Union[2] 이 때 진짜로 꿀빨아먹었던 곳은 아일랜드룩셈부르크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