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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06 07:57:48

스톡턴-달링턴 철도

1. 배경2. 왜 스톡턴-달링턴인가?3. 개통 및 효과4. 왜 잊혔나5. 기타

1. 배경


Stockton and Darlington Railway
세계 최초상업철도 노선으로, 스톡턴과 달링턴, 그리고 쉴돈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이었으며 동시에 해당 노선을 운영했던 회사의 이름이다.

사실 스톡턴-달링턴 철도 이전에도 단거리 철도노선이 시범적으로 몇 개 있었고 운행도 해봤지만 어디까지나 테스트 내지 시연적인 운행이었고 상업적으로 철도가 운행되지는 않았다. 철도라는 불확실한, 그러면서도 거액의 투자가 필요한 발명품 기반 사업에 선뜻 나서려는 사람은 없었다.

2. 왜 스톡턴-달링턴인가?

스톡턴과 달링턴은 모두 잉글랜드 북부 지방에 위치한 도시이다. 21세기 초 기준으로 두 도시 모두 많이 쇠퇴하고 미들즈브러[1]옆동네(...) 취급을 받고 있지만 달링턴은 17세기 이래 석탄 산업이 발달한 내륙도시이며 영국 제2의 탄전지대라는 노섬벌랜드 탄전의 주요 도시였다. 스톡턴은 인접한 티스 강의 수운을 통해 물자가 오가는 요충지였다. 달링턴에서 산출한 석탄을 스톡턴까지 옮겨서 다른 지역으로 운송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철도 개통 이전 기존의 석탄 운송은 당연히 마차였다. 마차는 당대 그 어떤 운송수단보다 뛰어난 효율과 속도를 자랑했으나 쏟아져나오는 석탄 및 관련 산물, 동반되는 여객의 수요를 감당하기엔 벅찼고 가격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이때문에 지역에서는 마차의 대안을 끊임없이 찾고 있었고 18세기 중반부터 운하를 파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지질 및 비용 문제로 실패했다.

이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버트 스티븐슨, 바로 그 조지 스티븐슨의 아들인 로버트가 과감하게 신기술인 철도의 사용을 제안하여 1818년 달링턴에서 주식을 발행하여 출자자를 모집했으며, 토지 소유주들로부터 토지를 매입하고 의회에 철도 설치 관련 허가법안의 통과를 요청하는 등 진통 끝에 21km 길이에 달하는 철도의 건설을 허가받았다.

3. 개통 및 효과

공사비 상승 등의 우여곡절 끝에 1825년 9월 27일, 스톡턴-달링턴 노선의 철도 개통식을 겸한 시승행사가 열렸다. 이때의 속도는 약 13km/h로 마차와의 속도경쟁력에서 열세였으나 철도의 초창기라는 것과 시승행사로 속도를 조정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철도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는데, 마차와 달리 한 번에 대규모로 석탄을 운반할 수 있다보니 석탄의 톤당 운송비용이 급감했고 덕분에 석탄 실수요지에서의 석탄 판매가가 12~18실링정도 하락했다. 이후 조지 스티븐슨이 제작한 새로운 기관차가 1828년부터 노선에 투입되어 효율성이 더더욱 증대되었다.

4. 왜 잊혔나

세계 최초의 상업철도라는 그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철도 동호인들은 물론 경제사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데 이는 1830년 개통된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때문이다. 평범한 석탄 산지-항구를 연결한 스톡턴-달링턴 철도와 달리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양대 대도시를 연결하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를 진정한 철도시대의 개막으로 보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아울러 스톡턴-달링턴 철도는 철저히 화물 영업만 했기 때문에, 여객 영업을 시작한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에 묻힌 점도 크다.

물론 경제적, 역사적 의의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 쪽이 앞선다. 하지만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스톡턴-달링턴 철도의 성공과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조지 스티븐슨 덕분이었다.

5. 기타


[1] 미들즈브러는 이 문서의 철도가 연장되어 생긴 신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