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8-14 15:11:33

스테판 오스토이치

파일:보스니아 왕국 국장.png
보스니아 국왕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5C337, #F5C337 20%, #F5C337 80%, #F5C337); color:#white;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6D7585> 코트로마니치 왕조
<rowcolor=#6D7585>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트브르트코 1세 스테판 다비샤 옐레나 그루바 스테판 오스토야 트브르트코 2세
<rowcolor=#6D7585> 복위 제6대 복위 반왕 제7대
스테판 오스토야 스테판 오스토이치 트브르트코 2세 라디보이 오스토이치 스테판 토마시
<rowcolor=#6D7585> 제8대
스테판 토마셰비치 }}}}}}}}}

<colbgcolor=#F5C337><colcolor=#6D7585> 보스니아 국왕
{{{#fff {{{+1
스테판 오스토이치}}} }}}
{{{#fff
Stephen Ostojić}}}
출생 미상
사망 1421년 4월 이후 (향년 불명)
재위 보스니아 국왕
1418년 ~ 1420년
아버지 스테판 오스토야
어머니 쿠야바 라디노비치
가문 코트로마니치 가문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보스니아 왕국 제6대 국왕.

2. 생애

보스니아 왕국 제4대 국왕 스테판 오스토야와 보스니아 지주 라딘 아블라니치의 딸인 쿠야바 라디노비치의 외아들이다. 1416년, 아버지 스테판 오스토야는 쿠야바를 저버리고 보스니아 대공으로서 막대한 영지를 누렸던 흐르보예 부크치치 흐르바티니치의 미망인인 옐레나 네립치치와 재혼해 상당한 영토를 지참금 형식으로 받아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 1세는 스테판 오스토야가 이대로 강해지길 원하지 않았다. 메흐메트 1세는 오스토야를 반대하는 회의를 소집한 뒤, 산달지, 라디슬라프 파블로비치, 그리고 스테판 오스토이치를 오스토야는 이 회의에서 파블레 라디노비치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메흐메트 1세는 코사차와 라디노비치 가문이 이 문제를 계기로 서로 갈등을 벌이도록 유도해 보스니아의 단결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오스토야는 이렇듯 오스만 제국의 위협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1418년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바보비츠의 왕릉에 안장되었다.

그 후 오스토이치는 보스니아 의회에 의해 새로운 국왕에 선임되었다. 그는 즉시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했고, 1419년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계모 옐레나를 투옥했다. 오스토이치는 라구사 공화국에 자신이 왕이 되었다고 알리며 공물을 납부하라고 요구했다. 라구사인들은 이에 대해 오스만 제국이 쳐들어와서 곤란하다며 공물 납부를 지연했다. 이에 흐르보예의 전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Protovestiarios: 재무 장관)인 미호 카보가는 그에게 라구사인들의 도시인 스톤을 공략하라고 촉구했다.

오스토이치는 이에 혹해 라구사 공화국에 라구사에 있는 흐르보예 가문의 재산과 슬라노를 둘러싼 해안, 그리고 모든 "왕실의 재물"을 청구했다. 만약 그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를 명분으로 삼아 스톤을 공략하려 했다. 하지만 1419년 3월 즈베카 회의에서 어머니 쿠야바와 귀족들의 강력한 권고에 따라 라구사인들과 뎌 이상 갈등을 벌이지 않기로 하고, 전임자들이 라구사에 부여한 특권을 확인했다. 또한 같은 해에 가신인 산달리 흐라니치 코사차가 코나블리와 소콜 요새를 라구사에 매각하는 걸 확인했다.

1419년 9월, 오스토이치는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베네치아 공화국과의 동맹을 갱신하기로 했다. 이후 제타 공작 발샤 3세가 알바니아를 침공했을 때 알바니아인들이 구원을 요청하자, 알바니아에 이권이 있는 베네치아의 호의를 사기 위해 발샤 3세와 전쟁을 벌이기로 했다. 이로 인해 발샤 3세의 계부이자 후견인을 맡았던 산달리가 반감을 품었다. 1420년 이샤크 베이가 이끄는 오스마군이 스테판 오스토이치와 그의 모계 친척 및 지지자, 파블로비치 귀족 가문의 영토를 표적으로 삼아 습격 작전을 벌이자, 산달리는 오스토이치에게 등을 돌리고 오스만 제국의 후원을 받는 그의 사촌인 트브르트코 2세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다른 귀족들도 대거 가담했고, 그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1420년 8월에 공식적으로 폐위되었다.

오스토이치는 해안으로 도망쳐서 왕위를 되찾기 위한 음모를 꾸몄다. 1421년 4월에는 베네치아에 동맹을 갱신하겠다고 제안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베네치아는 끝내 그를 복위하기 위한 군대를 보내주지 않았고, 보스니아 귀족들은 그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