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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지도와 숙군성의 위치 |
宿軍城
1. 개요
고대 요서에 있었던 오호십육국시대 후연과 북연의 성. 그리고 고구려와 관련된 요서의 성 중 하나였다. 숙군성은 "군사들이 머무는 성"이라는 뜻이다. 요서에 위치해 있으므로 초원과 요동이 중원과 서로 넘나드는 중간기착지로써 전초기지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함락되고 탈환하고를 반복했을 것으로 보인다.2. 역사
후연의 수도였던 화룡성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가까웠던 곳이라서 화룡성을 지켰던 성 중 하나였다. 후연이 고구려를 침공하자 402년 5월[1] 광개토대왕도 숙군성을 침공하여 점령했으며, 평주자사였던 모용귀는 도망쳤다.이후 다시 후연의 땅이 되었으나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고구려가 이곳에서 철수하고 후연이 되찾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특별한 전투 기록이 남지 않은 걸로 봐선, 성 자체가 평야지대인 요서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고구려측에서는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반면, 후연의 본진과는 매우 가까웠으므로 후연의 공격을 되돌린 뒤에는 방어가 어렵다고 판단해 스스로 철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몇 년 안 되어 후연이 멸망하고 북연이 건국되면서 북연의 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