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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kt 소닉붐/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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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산 시절 김병천 황순팔 폭행 사건2. 연고지 이전: 광주여수부산수원3. 전창진 승부조작 사건 및 이적 루머4. 중국 구단과의 난투극5. 조성민 트레이드 후 팬들의 분노 및 수원 연고 이전 루머6. 박철호 음주운전 사건7. 앨런 더햄, 바이런 멀린스 자진 퇴단 사건8. 농구판 족발게이트9. 허훈 광고판 가격 사건

1. 나산 시절 김병천 황순팔 폭행 사건

2. 연고지 이전: 광주여수부산수원

kt 소닉붐은 연고지를 세 번이나 옮겼는데, 앞선 두 번의 연고지 이전농구단으로서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다른 연고지 이전 사례와 비교하면 결별 과정이 상당히 매끄러웠다.[3]

최초의 홈구장이었던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염주종합체육관은 규모가 엄청 큰데 반해 나산 플라망스의 인기가 저조했고[4], 대관료가 엄청 비싸서 구단 운영에 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광주가 아닌 전라북도 군산시 사정동의 군산월명체육관에서[5] 홈 경기를 나누어서 치렀는데, 군산의 농구 열기가 광주보다 뜨거워서 사실상 월명을 홈 경기장으로 애용했다. 같은 시기에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흥국 체육관에서 일부 경기가 진행되었으나 여수의 농구 열기는 군산보다 더 뜨거웠다. 결국 팀이 나산에서 골드뱅크로 바뀔 때 연고지도 아예 여수로 옮겨졌다. 여수 진남체육관은 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 농구단의 홈 경기장으로 활용되었다(2000년~2003년).

하지만 골드뱅크-코리아텐더 구단마저도 생존에 위협을 느끼게 됐고, 또 다시 구단 매각을 추진하게 된다. 코리아텐더는 선수들의 안정적인 현역 생활 지속을 위해 의욕적으로 매각을 추진했지만, 시장은 좁디 좁은 여수의 시장성을 눈여겨보지 않았다.[6] 결국 구단 측이 "농구밖에 모르는 선수들의 생존을 위해 여수를 떠납니다. 집안의 미래를 위해 가난한 딸을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고 생각해주십시오. 그래야만 친정이 있는 서쪽 여수의 하늘이라도 바라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시민들에게 눈물로 호소했고, 여수 시민들은 아쉽지만 이왕 큰 도시에 가서 잘 되길 바란다고 환송하면서 당시 프로농구팀이 없었던 부산광역시로의 연고지 이전을 승낙했다. 결국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후 거대 통신 기업인 KTF(現 KT 이동통신 부문)에 인수돼 안정적인 환경에서 구단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7]

한편 KTF는 부산에 와서도 홈 경기장을 한 번 옮겨야 했다. 여수를 떠나 처음 부산에 둥지를 틀었을 때는 금정구 두구동금정체육관[8]을 썼는데, 부산에서도 제일 북쪽에 치우쳐 있고 대중교통편이 애매해 관중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06년부터 부산 시내 한복판에 있는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사직실내체육관으로 홈 코트를 옮겼고 선수단 역시 부산에 거처를 마련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좋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구단명이 kt로 바뀐 이후에는 오히려 부산을 홀대했다. 2010년 9월 15일 경기도 수원시kt빅토리움[9]이 개장되면서 선수단의 거처도 부산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는데, 이미 기존부터 클럽하우스가 수도권에 있어도 연고지 내에 어떻게든 발을 붙여보려는 다른 팀들과 달리[10] kt에게 있어 부산은 그저 홈 경기를 치르기 위해 찾아오는 조금 편한 원정지에 불과했다. 선수들은 울산, 창원 경기가 있지 않고서야 홈 경기가 끝나면 항상 버스를 타고 부산에서 300km 떨어진 경기도 수원에 있는 클럽하우스인 kt빅토리움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선수들도 다 kt 빅토리움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산에서 롯데 자이언츠부산 아이파크 선수는 봤어도 kt 농구 선수를 봤다는 말은 거의 없었다.[11]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7년부터 이따금씩 kt의 수원 연고지 이전 떡밥이 떴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2023년부터 KBL이 전 구단의 연고지 완전 정착제 도입을 확정했는데, 본래 연고지에 사무국과 선수단 숙소, 훈련장 등 구단의 거점을 구축해 업무를 효율화하고 연고지 팬들의 마음을 얻게 하려고 도입한 이 제도가 오히려 kt의 연고지를 수원으로 옮기는 데 있어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말았다. KBL에 따르면 2023년부터는 모든 팀들의 홈구장, 구단 사무실, 클럽하우스, 연습체육관은 각 팀의 연고지 내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정해졌다고 한다.[12] 그래서 kt 측은 부산시에 사직체육관 옆 수영장의 보조체육관을 연습체육관으로 쓰게 해달라고 제안했으나, 부산시는 "생활체육관은 이미 부산 시민들이 쓰고 있으니, 부산시가 내주는 땅에 체육관을 알아서 지어라"라고 반박했다. 이에 가뜩이나 사직체육관의 높은 대관료와 시의 비협조 등을 겪으며 없던 정마저도 떠나버린 kt는 새 체육관을 지을 여력이 없다며 부산시의 제안을 거부해 버렸고, 결국 2021년 6월 4일 "농구단의 연고지를 수원시로 옮기겠다"고 통보하게 된다. 뒤늦게 부산시가 강서체육공원이나 기장체육관을 쓰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13] kt는 더 완강하게 수원행을 고집했고, 결국 6월 7일 KBL에 수원으로의 연고지 이전 신청을 했다. kt 측은 "수원시에는 클럽하우스와 연습체육관이 있고 전용 홈구장으로 쓸 서수원칠보체육관도 있으며, 수원을 연고로 하는 형제 야구단도 있다"며 수원행의 당위성을 강조하였다.

2021년 6월 9일, KBL은 이사회를 개최해 kt의 연고지 이전을 승인하였다. 결국 2003년부터 이어온 부산의 남자 농구팀 역사는 막을 내렸고, 부산은 2001년 기아 엔터프라이즈울산광역시에게 빼앗긴 이후 20년 만에 또 다시 두 번이나 프로농구단을 다른 대도시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이번 이전으로 대다수의 부산 농구팬들은 큰 충격을 받아 다른 구단으로 갈아타는 등 팬덤 이탈도 꽤 있었으며, 여러모로 부산 농구팬들에게는 영원한 상처로 남게 되었다.

한편 kt가 수원으로 떠난 후 부산 BNK 썸이 2021-22 시즌부터 사직체육관을 사용하고 있다.[14] 2년 뒤 전주 KCC 이지스가 전주의 신축체육관 건립 문제 지연으로 인해 결국 부산으로 연고 이전을 단행하면서 자신들이 15년간 사용하고 버리고 떠난 사직체육관을 홈으로 결정하면서 부산 더비가 성사되었다.

3. 전창진 승부조작 사건 및 이적 루머

4. 중국 구단과의 난투극

5. 조성민 트레이드 후 팬들의 분노 및 수원 연고 이전 루머

6. 박철호 음주운전 사건

7. 앨런 더햄, 바이런 멀린스 자진 퇴단 사건

8. 농구판 족발게이트

9. 허훈 광고판 가격 사건



[1] 2014년에 개명을 했다.[2] 신인 시절 김병천은 식스맨 겸 로테이션 주전으로 나오는 등 활약을 하고 있었다. 좀만 더 크면 팀의 핵심 멤버가 될 만한 인재였지만 이 사건으로 프로 인생이 꼬이고 만다.[3] 연고지 이전 문서를 참조하면 알 수 있듯이 결별 과정이 웬만한 막장 부부의 이혼을 뺨칠 정도로 지저분한 사례가 꽤 있다. 그러나 kt도 훗날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는 연고지 이전을 단행하게 된다.[4] 애초에 나산 농구단은 옛 중소기업은행 실업 농구단이 실질적 전신이었기에 김상식이민형 외에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없었고, 광주라는 도시 자체가 해태-KIA 타이거즈의 인기가 압도적인 곳이라는 한계가 있었다.[5]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전주 KCC 이지스제2 홈구장으로 쓰였다.[6] 당시 코리아텐더의 팀 사정이 좋지 못해 드래프트에서 코리아텐더를 기피하는 선수들도 있었고, 클럽하우스가 없어서 여수 시내의 30평 아파트 2채를 숙소로 사용하고 전용체육관 또한 없어서 동네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하거나 고등학교 체육관에서 훈련을 했었다.[7] 당시 여수 시민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부산 KTF 매직윙스는 여수 시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2007-08 시즌 마지막 홈 경기(vs KT&G)를 여수 진남체육관에서 치렀다. 이 경기에서 80:77로 승리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8] 부산광역시청보다 양산시청이 더 가깝다. 2019년부터는 부산 BNK 썸 여자 프로농구단의 홈 구장으로 쓰인다.[9] kt빅토리움을 건설할 때 부산에선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었다.[10] 대표적인 케이스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현대모비스의 클럽하우스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현대모비스 용인체육관이지만, 울산 홈 경기 및 창원, 부산에서 경기할 때는 울산광역시 북구 양정동의 현대모비스 사택 일부를 숙소로 쓰고 있다.[11]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 선수들은 부산에서 지내며, 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들도 부산 내에 위치한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한다. 하물며 kt보다 훨씬 나중에 들어온 부산 BNK 썸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있는 BNK부산은행 연수원을 클럽하우스로 사용한다. kt 남자 농구팀만 유일하게 객식구 신세인 셈이다.[12] 이 규정 때문에 창원 LG 세이커스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 있던 구단 사무실과 이천 챔피언스 파크에 있던 연습 체육관을 창원실내체육관으로 옮겼고, 선수들의 거처도 모두 창원시 내에 마련하도록 했다. LG 세이커스는 거점 시설의 연고 정착을 택한 이후 신인 선수나 시즌 중도 트레이드로 합류한 선수, 신규 영입 선수에게는 일정 시한을 두고 창원 내의 호텔을 따로 잡아주고 있다.[13] 근데 두 지역 모두 부산 시내에서 한참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교통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주변에 먹거리 상점 또한 부족하기도 하고.[14] 다만 금정체육관이 BNK금융그룹 네이밍 스폰서가 있어서 이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15] 이 당시의 롯데로 치면 손민한NC로 헐값에 이적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다만 손민한은 다른 문제가 겹쳤다는 점이 차이점이다.[16] 시즌권을 소유한 팬들만 앉을 수 있는 좌석에 조성민 유니폼을 두기만 하고 경기를 보지도 않는 식으로 항의를 했다. 다만 김영환도 억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성민과 같은 처지였다. 게다가 김영환은 kt에서도 5년이나 뛰었던 선수이기 때문에 사실상 친정팀에 돌아온 것이다. 사실상 저 욕설한 팬들이 당연히 잘못한 일이다.[17]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kt의 숙소 겸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kt빅토리움이 수원시에 위치해 있으며, 2010-2011 시즌부터 사용 중이다. 전신 KTF 시절부터 2009-2010 시즌까지는 숙소가 없어서 사직실내체육관 인근인 부산 사직동의 한 아파트에서 숙식을 해결했다.[18] 잠실종합운동장 돔구장 건설 계획이 확장되면서 잠실학생체육관잠실실내체육관을 전부 없애게 되어 SK 나이츠삼성 썬더스가 모두 홈구장이 일시적으로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미치지 않는 이상 서울특별시 연고를 포기할 팀은 없기에 그래도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수원에 서울 삼성 썬더스를 제외하면 시설도 좋지 못한 삼성 썬더스의 홈이었던 수원체육관과 WKBL 위탁운영팀으로 OK 읏샷의 임시 홈이었던 서수원칠보체육관으로의 연고 이전 가능성은 낮다.[19] 기승호가 3번을 본다지만, 김영환과 비교하여 BQ, 골 결정력, 전술 이해도 측면에서 훨씬 하위호환이다. 그렇다고 마리오 리틀이 팀플레이에 잘 녹아드는 선수냐 하면 그게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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