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농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김병천 金炳天 | ||
출생 | 1975년 4월 30일 ([age(1975-04-30)]세) |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0cm|체중 82kg | |
직업 | 농구선수(슈팅 가드, 포인트 가드/ 은퇴) 농구코치 | |
학력 | 답십리초등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졸업) | |
프로 입단 | 1998년 드래프트 2라운드 7순위 (광주 나산) | |
현역시절 등번호 | 7[1], 11[2], 8[3]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광주 나산/골드뱅크-여수 골드뱅크/코리아텐더 (1998~2001) 창원 LG 세이커스 (2001~2002) 안양 SBS 스타즈 (2002~2003) |
코치 | 중앙대학교 (2008~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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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농구선수였다. 선수 시절 주먹으로 황순팔 심판을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아마추어 시절
용산고등학교 시절 제3회 학산배에서 청소년 대표팀에 합류로 빠진 이세범과 전재경의 공백을 잘 메운 덕분에 두번째 우승을 안겨주면서 MVP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연맹회장기에서는 구병두와 조우현이 이끈 동아고등학교와의 결승전에서 우승하지는 못했다.중앙대학교로 진학한 뒤 임재현과 같은 가드진들에게 빼앗겨 백업으로 뛰기만 한 바람에 좀처럼 기회는 많지 않았다.
3. 선수 시절
1998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7순위로 광주 나산에 지명된 이후 시즌 초반부터 주전급으로 뛰며 3점슛 성공룔 37.4%를 기록한 유일한 3점 슈터로 촉망받았다. 그러나 1999년 3월 7일 충무체육관에서 개최된 대전 현대 걸리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조성원을 밀쳐 반칙 휘슬이 불리자 말도 안 된다는 판정에 항의하다 테크니컬 파울을 받은 뒤 거친 욕을 하다가 퇴장 명령을 받은 심판[4]에게 주먹을 휘두르면서 남은 모든 경기를 뛰지 못했고 벌금 200만원을 부과받았다.[5]
징계가 풀린 1999-2000 시즌에는 신인 조상현과 센터 에릭 이버츠가 가세해 진 바람에 제몫을 하지 못한데 이어 여수 코리아텐더로 변경된 2001-02 시즌 도중 4:4 트레이드[6]에 포함되어 창원 LG 세이커스로 이적한 뒤에도 출전 기회는 없었다.
2002-2003 시즌 강대협과 함께 안양 SBS 스타즈로 트레이드[7]된 이후 평균 14분을 뛰며 4.4득점 1.8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 FA 계약 결렬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