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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5:21:40

소녀대

1. 개요2. 멤버
2.1. 해산 당시 멤버2.2. 전 멤버
3. 주요 활동
3.1. 그룹의 결성 및 초기의 활동상황 (1983~1985)3.2. 아시아 진출의 시작, 전성기와 한국에서의 인기 (1986~1988)3.3. 해산과 그룹 재결성 (1989~2016)
4. 음반
4.1. 싱글
4.1.1. 일본 포노그램4.1.2. 폴리도르4.1.3. 도시바 EMI / Eastworld4.1.4. 빅터 엔터테인먼트
4.2. 정규
4.2.1. 일본 포노그램4.2.2. 폴리도르4.2.3. 도시바 EMI / Eastworld
4.3. 12인치 싱글
4.3.1. 일본 포노그램4.3.2. 도시바 EMI / Eastworld
4.4. 라이브 앨범
5. 소녀대의 대표곡 KOREA 가사
5.1. 일본어 버전5.2. 영어 버전
6. 기타 참고자료

1. 개요

파일:29268.jpg
(2017년 재결성된 소녀대의 모습)

少女隊

1983년에 결성하여 1984년에 데뷔한후 1989년까지 활동한 일본의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본국인 일본에 그치지 않고서 1986년 86 서울 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은상을 수상한것을 계기로 아예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음반을 발매한 최초의 1호 가수이기도 하며 일본문화 개방이 시작하기 아주 한참 전인 1980년대에 대한민국 공중파의 텔레비전에서 일본어로 노래를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레슬리 만도키와 에바 선이 불러서 히트한 KOREA라는 노래를 리메이크 하여 한 시대를 풍미한 걸그룹으로써 이것으로 일본의 J팝을 처음 접한 중년 어르신들이 많을 정도로 전설을 만들어낸 그룹이기도 하다.

2. 멤버

2.1. 해산 당시 멤버

하지만 힘겹게 밑바닥에서 연예계에서 구르고 있던 그녀는 뜻하지 않은 기회를 얻게되는데 바로 1990년대 중반에 즈음해서 떠오르고 있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던 다이치 아키타로의 존재였다.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은 애니메이션 문하생 시절부터 걸그룹 소녀대의 팬이었고 특히 야스하라 레이코의 광팬이었다. 어느 정도였나하면 예전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이 자신의 블로그에 젊은 시절 도쿄에 상경해서 혼자 생활하고 있던 방을 촬영한 것을 게시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방 벽에 야스하라 레이코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붙여져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89년 소녀대 해체 후 그녀가 연예계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누드집 출간 및 에로영화 등에 출연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소녀대 멤버들이 순탄치 못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은 자신이 맡은 애니메이션에 소녀대 멤버를 발탁하고자 한다. 그래서 우선 그는 1996년 그가 연출을 맡은 아이들의 장난감에 바빗토역을 통해 히키타 토모코를 성우로 데뷔시키고[1] 다이치 감독의 우상이었던 야스하라 레이코를 쥬베이짱을 시작으로 성우로 데뷔시키기에 이른다. 심지어 일시적이긴 하지만 쥬베이짱 애니 때는 당시 해체상태였던 소녀대 멤버 셋을 끌어모아 1999 소녀대로 재결합 시킨 후 데뷔곡이었던 Forever를 편곡해 ED 노래까지 부르게 했을 정도로 야스하라 레이코가 성우로 자리잡는데 큰 공을 세웠다. 야스하라 레이코의 캐스팅은 전적으로 감독의 팬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성우 경력도 없었던 그녀는 성우로서의 도전을 멋지게 수행해냈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야스하라 레이코가 성우 및 가수로서의 기량이 뛰어났던지라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은 레이코를 캐스팅 한 것에 대해 크게 만족했고 이후 레이코가 전문 성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역급에 캐스팅 하거나 애니메이션의 삽입곡을 맡기는 등 그녀를 지속적으로 푸쉬하기 시작한다. 특히 1999년 작품 지금, 거기에 있는 나에서는 아베리아라는 비중있는 역할을 연기하게 했고 해당 애니의 ED인 자장가라는 곡을 맡긴다. 심지어는 2000년 작품 바람 부는대로 츠키카게 란의 경우, 감독이 팬심을 발산해 아예 야스하라 레이코를 주인공으로 기용한다. 여기서 야스하라 레이코는 해당 애니매이션의 또 다른 주연이었던 전문 성우인 오카무라 아케미와 비교해서도 꿀릴게 없었을 정도로 목소리 연기를 잘해냈고 거기다가 레이코는 해당 애니메이션의 ED 곡도 불렀는데 애니곡 치고 파격적인 장르였던 스캣 형식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소화해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녀의 성우로서의 정점은 바로 후르츠 바스켓(2001년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혼다 토오루의 절친 중 한 명인 하나지마 사키와 주인공의 어머니였던 혼다 쿄코 역을 맡아 열연했을 때 였다. 이 역할을 통해 레이코는 대중들에게 가수가 아닌 성우로서의 야스하라 레이코란 존재를 각인시키게 되고 이후에도 2006년까지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 사단으로써 활발하게 성우로서의 활동을 수행하며 성공적으로 연예계에 재기하게 된다. 어떻게보면 야스하라 레이코에게 있어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은 은인인 셈. 참고로 야스하라 레이코의 경우, 1~2년마다 한 번 씩 소규모 콘서트를 개최하는데 그 때 마다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은 빠짐없이 참석하여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

2.2. 전 멤버

3. 주요 활동

3.1. 그룹의 결성 및 초기의 활동상황 (1983~1985)

1983년 6월 12일에 본드 기획이 주최한 신인발굴 오디션에서 미호와 레이코, 치코의 3명이 선발되어 결성되었다. 합격후에 철저한 트레이닝을 거쳐서 이듬해인 1984년 8월 28일 일본 포노그램으로부터 메이져 데뷔 정규앨범인 少女隊PHOON[4]을 발매하였고 이후 12인치 싱글인 ESCAPE, 비디오 소녀대 Phoon을 동시에 발매해 데뷔한다.

데뷔 1주년인 1985년 8월 멤버 중 한 명인 치코가 허리디스크로 탈퇴하고 새 멤버 토모가 가입했는데 이때 당시 에자키 글리코가 대표로 있는 기업인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의 여파로 인해서 미리 촬영해 놓은 이들의 첫 CF의 송출이 연기되는 등 불운이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치코의 탈퇴에 이어서 팀의 중심멤버인 레이코도 부상을 입었고 출연할 예정이던 TV 프로그램이 무려 3편이나 취소가 되는 등 데뷔 후에 1년간은 철저한 불행을 겪게 되었다.

당시 이들의 데뷔 앨범인 少女隊PHOON은 야마모토 린다, 야마구치 모모에, 핑크 레이디 등을 다룬 미야자쿠라 슌이치가 프로듀싱을 맡았고 미국의 여러 일류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로스앤젤레스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미국 전역의 로케이션으로 찍은 비디오, 화보집을 동시에 발매하는 등 기존 아이돌과는 차별화된 기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TV에 노출되지 않겠다는 소속사의 방침과 전략으로 인해서 크게 히트치지 못했다.

3.2. 아시아 진출의 시작, 전성기와 한국에서의 인기 (1986~1988)

1985년 말부터는 아키모토 야스시와 손잡고 프로모션 방향을 대폭으로 변경하여 3집 싱글인 솔직해져 달링으로 니혼 TV의 더 톱텐에 상위권에 안착하는데 성공하였고 TBS 드라마인 여름체험 이야기의 삽입곡인 Bye-bye 걸로 더 베스트 텐의 7위에 랭크되는 등 서서히 인기가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다음해인 1986년에는 레코드 회사를 폴리도르 (현:유니버설 뮤직재팬)로 이적하여 국립 요요기 경기장의 제1 체육관과 오사카성 홀을 포함한 투어를 개최하여 18만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같은 해에는 사진집인 소녀대의 역습을 발매하였다.

한편 소속사인 본드 기획에서는 아시아를 위한 마케팅을 데뷔 초기부터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때쯤부터 소녀대는 일본보다 아시아 각국에서의 인기가 높아지게 된다. 1985년에는 홍콩 영화인 내 친구 소녀대에도 출연했고[5] 1986년과 1987년 동남아 투어를 성공시키는 등 홍콩,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를 자랑했다.



그런 그녀들에게도 한국에서의 진출할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1986년에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방송사인 후지 테레비가 한국의 MBC와 제휴를 맺고 있었는데 이때 아시아의 진출이라는 꿈을 가지고 소녀대는 1986년에 서울에서 열린 제 9회 서울 국제 가요제에 Starlight Memory 라는 노래로 참가하여 은상을 수상한것을 계기로 성공적으로 진출하였다. 1988년에는 레코드 회사를 도시바 EMI로 재이적하고 이때 레슬리 만도키와 에바 선이 부른 이탈리 디스코풍의 노래인 KOREA를 팝 댄스풍으로 편곡하여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되었다. 이 버전은 1988년에 개최된 88 서울올림픽의 특수를 계기로 하여 88년 서울올림픽의 이미지송으로 선정되어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88년 2월에 후지TV와 MBC의 도움으로 첫 한국 방송 출연이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별빛의 추억'을 불렀고 이때까지만 해도 금지되었던 일본어로 인터뷰까지 했다. 이때 대한민국의 대중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이후 아예 '코리아'를 후속곡으로 정해놓고 활동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동년 8월 18일에는 일본어 곡이 금지됐던 한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방송에서 일본어로 노래를 불렀다. 이는 한국 측 방송사의 양해 없이 일본어로 부른 가창이며 당시 한국의 TV방송에 이 장면이 방영되자 크게 화제를 모았다. 이때 서울 시내에서 열린 올림픽 30일 전야제에서는 말레이시아의 라자 에미와 한국의 가수인 박혜령이 1절씩 영어와 한국어로 부른뒤에 본인들의 차례가 되자 모국인 일본어 가사로 이 곡을 30여초간 가창했다. 이 장면은 MBC에서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전후에 한국에서 금기시되던 일본어 가사로 노래를 부른것으로 인해서 여러매체에 대서특필이 되었다. 이로써 한국 공중파 방송 사상최초로 일본어로 노래한 가수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6] 그러나 이는 사전에 주최 측에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어서 단순한 해프닝의 범주로 볼 수 있다.

그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세또래'라는 3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고 대만에서도 같은 이름의 소녀대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는데 현재 배우로 활동중인 비비안 수가 이 그룹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한국 활동 당시에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여 이덕화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소방차의 노래인 그녀에게 전해주오까지 한국어로 불러서 큰 반향을 이끌어 내었다.

실제로 1989년 1월에는 '자니윤 쇼'에 소녀대와 세또래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7]

3.3. 해산과 그룹 재결성 (1989~2016)

1989년에 멤버들이 솔로활동을 위해서 3월 28일을 끝으로 해산하게 되었으며 멤버들은 각자 솔로로 활동하게 되었다. 4명 모두 소녀대를 해산한후에 미호와 토모는 얼마지나지 않아 연예계를 은퇴했지만 레이코 한명만은 여배우로 활동하였으나 순탄하지는 못했고 우연한 기회에 성우 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아 연예계에 재기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게 된다.[8] 즉, 이리저리 소모된 상태로 일본 연예계에 내던져졌을때 그 세계의 비정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소속사인 본드 기획은 소녀대가 일본에서 제대로 히트하지 못함에 따라 소녀대를 만들때 투자한 30억엔이라는 고액의 금액을 회수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어서 1990년 7월에 끝내 도산했다. 도산 당시까지 본드 기획은 여성 아이돌 중심의 연예기획사였으며 오카다 나나, 오오바 쿠미코, 마츠모토 이요, 혼다 미나코, 닛타 에리코, 후쿠나가 에노리, 타카오카 사키 등이 소속된적이 있었다.

1999년 4월 17일에 레이코, 치코, 토모의 세명이 1999 소녀대로 재결성해 데뷔곡인 'Forever'를 불렀다.[9]당초에는 이이다 미호도 참여해서 총 4명이서 노래하는 것으로 기획이 되었지만 당시 이이다가 임신 8개월의 만삭이었기 때문에 불참했다고 한다.

2016년 8월 24일에는 여태까지 CD로 발매되지 못했던 전 음원을 CD화한 베스트 앨범인 '소녀대 Complete Singles Forever 1984-1999'를 발매하여 약 25년 만에 오리콘 주간 차트에 등장하여 톱 100위권 안인 75위에 들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12일 일본의 뮤지션인 SUEMITSU & THE SUEMITH가 발표한 "Bagatelle"에 Shooting Star We are Feat. 소녀대란 이름으로 소녀대의 총 멤버 4명이 총출동하여 17년만에 신곡을 녹음해서 수록했다. 참고로 이 곡의 작사가는 야스하라 레이코.[10][11]

그리고 2016년 11월 18일. 시부야 듀오에서 진행된 SUEMITSU & THE SUEMITH 라이브에 게스트로 소녀대의 오리지널 멤버 4명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어 'Forever'와 'Shooting Star We are'를 가창했다.

4. 음반

4.1. 싱글

4.1.1. 일본 포노그램

4.1.2. 폴리도르

4.1.3. 도시바 EMI / Eastworld

4.1.4. 빅터 엔터테인먼트

4.2. 정규

4.2.1. 일본 포노그램

4.2.2. 폴리도르

4.2.3. 도시바 EMI / Eastworld

4.3. 12인치 싱글

4.3.1. 일본 포노그램

4.3.2. 도시바 EMI / Eastworld

4.4. 라이브 앨범


5. 소녀대의 대표곡 KOREA 가사

5.1. 일본어 버전

듣기

1.
꿈에서 네가 길을 잃거나

사랑의 용기를 잃어 버리거나

고개를 숙이는 법을 알았다면

꼭 이곳으로 와줘.

특별한 곳은 아니야.

봐봐! 너의 가슴속이야.

설레이는 고동에 되살아나는 MY PRECIOUS LOVE!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모든게 시작되는 거야.

끝이 없는 순간 LOVE LASTS FOREVER!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신들의 STEP에서

사랑이 깃들거야. GAMES ARE FOREVER!

2.
분해서 이를 꽉 깨물게 되는

옆 모습이 좋아.

시간의 물결에 물들지 않는

눈동자로써 SEE YOU AGAIN!

슬픔을 탄력으로 삼아서

날아 올라보자. 꿈의 저 끝까지

웃는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는 너를 빨리 만나고 싶어.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누구보다도 뜨겁게

열정을 느끼게 해줘. LOVE LASTS FOREVER!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아무리 멀리 있어도

너만을 바라볼테니까 DONT MIND FOREVER!

3
전 세계에 전해주겠어.

새롭게 태어나는 전설을....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누구보다도 뜨겁게

열정을 느끼게 해줘. LOVE LASTS FOREVER!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아무리 멀리 있어도

너만을 바라볼테니까 DONT MIND FOREVER!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모든게 시작되는 거야.

끝이 없는 순간 LOVE LASTS FOREVER!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신들의 STEP에서

사랑이 깃들거야. GAMES ARE FOREVER!

5.2. 영어 버전

듣기

1.
the sun's burning down a sweet emotion
태양이 달콤한 감정을 불태우네요

flying up higher reach out for more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높이 날아 손을 뻗어요.

we're all running together for lovely smiles
우린 다함께 사랑스런 미소를 위해 달리고 있어요

higher and higher we fall in love
높이 더 높이 우린 사랑에 빠져요

i need your love my long distance boy
멀리있는 나의 그대여! 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the ocean is wide we're building a bridge
바다는 넓지만 우린 그 위에 다리를 놓고 있지요.

wonder why can't we be faster than light
왜 우린 빛보다 빠를수는 없을까요?

faster than airplanes my precious love
비행기보다 빠른 내 소중한 사랑이여.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the sun goes down in america
미국의 태양은 지지요.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love lasts forever
사랑은 영원하지요.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the sun goes down in america
미국의 태양은 지지요.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games are forever
게임은 영원하지요.


2.
i'm just getting up you go to sleep
난 방금 일어났지만 당신은 잠자리에 들 시간

thousands of miles so far away
몇천 마일이나 되는 너무나 먼 거리예요

i'm working so hard to make the games
나는 이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

to get down to seoul see you again
서울에 가기 위해서 다시 봐요.

i need your love my long distance boy
멀리있는 나의 그대여! 난 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the ocean is wide we're building a bridge
바다는 넓지만 우린 그 위에 다리를 놓고 있지요.

wonder why can't we be faster than light
왜 우린 빛보다 빠를수는 없을까요?

faster than airplanes my precious love
비행기보다 빠른 내 소중한 사랑이여.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the sun goes down in america
미국의 태양은 지지요.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love lasts forever
사랑은 영원하지요.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the sun goes down in america
미국의 태양은 지지요.

when the sun comes up in korea
한국의 태양이 뜰때

games are forever
게임은 영원하지요.

6. 기타 참고자료



[1] 다만 토모의 경우, 성우로서의 재능에는 미치지 못했고 당시 그녀는 연예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던 상황이라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지 못해 성우로서의 활동은 단발성으로 끝났다.[2] 생몰은 1934년 7월 3일~1979년 12월 31일. 수중이나 폭발 등 극한 상태에서의 탈출 마술을 특기로 하여 일본 최고의 탈출왕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큰 인기를 얻어 수많은 방송에 출연했으나. 심장질환으로 45세에 요절했다.[3] 생몰은 1933년 5월 27일~2023년 6월 15일. 뇌경색으로 90세로 타계했으며 1964년 히키타 덴코와 결혼하고 1973년 이혼했다.[4] 소녀대+타이푼의 약자로 소녀대가 가요계에 태풍을 일으키겠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며 언어유희로 쇼죠타이푼으로 읽는다. 정작 한국인들은 소녀대푼 으로 읽는다.[5] 영어제목은 How are you, my friend. 스토리는 일본 최고의 그룹인 소녀대의 멤버들이 홍콩공연 도중에 현지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되어 구출되는 과정을 그린 액션 모험물이며 6번째 싱글의 타이틀곡인 Daydream believer가 주제곡으로 사용되었다.[6] 한국 정부가 1998년 10월부터 일본의 대중문화 유입을 단계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한 이후 일본어 노래가 한국 지상파에서 처음 생방송된 것은 아주 한참이 지난 2010년으로써 SKE 48이 한국으로 내한하여 강한 자여, 푸른 하늘 짝사랑의 2곡을 부르게 되었다.[7] 소녀대와 세또래에게는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이었다. 소녀대의 경우 그룹해체가 결정되어 해산을 앞으로 3개월 앞둔 상황이었고 세또래는 이제 막 2집을 내놓고 활동중이었으나 얼마 못가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소녀대는 3월 말경 해산했고 세또래는 5월 초에 해체했다.)[8] 특히 미호의 경우에는 소녀대 해산 후 솔로 활동으로서의 열의가 있었으나 활동 과정에서 새로 기획된 소속사의 농간으로 누드집을 촬영하게 됐고 이에 연예계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사진집 촬영 후 얼마 지나지않아서 연예계를 은퇴해 버린다. 토모 또한 누드집 촬영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미호와 마찬가지로 새 소속사에서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솔로 데뷔 후 얼마지나지 않아 은퇴를 결행하게 된다. 레이코는 말이 연예계 활동이었지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을 만나기 전까지는 험한 꼴이란 험한 꼴 다 겪었다. 자세한 건 상술한 야스하라 레이코 항목 참고[9] 이게 야스하라 레이코 항목에서 상술했듯이 소녀대와 야스하라 레이코의 광팬이었던 다이치 아키타로 감독의 주도로 이뤄진 것이다. 그가 제작한 쥬베이짱의 ED곡으로...[10] 참고로 이 곡은 SUEMITSU & THE SUEMITH의 소녀대를 위한 헌정곡이기도 하다. 참고로 현재 야스하라 레이코의 소규모 콘서트 세션 아티스트로도 활동중이다.[11] 참고로 SUEMITSU & THE SUEMITH 또한 다이치 아키타로에 버금가는 소녀대의 광팬이며 이미 Shooting Star We are 발표 전 2006년에 소녀대에 대한 헌정의 의미로 소녀대의 데뷔곡인 Forever를 SUEMITSU & THE SUEMITH가 일레트로니카 장르로 리메이크하여 커버했다.[12] 데뷔 싱글과 동시 발매 하였으며 LP음반에는 10곡, CD의 음반에는 12곡이 수록돼 있다.[13] 일본 포노그램에서 발매한 앨범으로 1986년 3월 30일 오사카성 홀과 4월 3일 국립 요요기 제일체육관에서 열린 콘서트 상황을 수록한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