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성문영(成文永) |
본관 | 창녕 성씨 |
생몰 | 1887년 4월 4일 ~ 1961년 3월 23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 |
사망지 | 충청남도 아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성문영은 1887년 4월 4일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석당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3년 채기중(蔡基中)·유장렬·한훈·유창순·강순필을 중심으로 결성된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무기 구입과 군자금 모집을 맡았다. 이후 그는 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의 일부 인사들이 제휴하여 1915년 혁명단체인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를 조직할 때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폈다. 그러난 한편 장두환(張斗煥)·김경태·임봉주(林鳳柱) 등이 1918년 1월 아산군 도고면(道高面)의 면장으로 친일행동을 자행하던 박용하(朴容夏)를 처단할 때 편의를 제공하며 거사를 도왔다. 그러다 대한광복회가 발각되면서 천안에서 피검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1918년 10월 면소처분 받았다. 이후 아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1년 3월 23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성문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