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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06 17:11:32

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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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는 무미랑전기의 등장인물을 다룹니다. 해당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역사상 실존 인물인 서혜에 대한 내용은 현비 서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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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의 후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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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慧
서혜
파일:external/underthedarkcloudybluesky.files.wordpress.com/tumblr_n756ypaexq1snerhxo2_12801.jpg
품계 재인 → 첩여 → 충용 → 현비
배우 장균녕

1부 진 최종보스

1. 행적
1.1. 재인에서 첩여로1.2. 첩여에서 충용으로1.3. 현비가 되다
2. 특징3. 실제 인물과의 차이

[clearfix]

1. 행적

1.1. 재인에서 첩여로

약간 몸이 약한 여자이고 초반부엔 보통 무미랑과 친구마냥 주로 붙어다녔다.[1] 여담으로 당태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다. 당태종이 지은 시를 외우고 다니며 글을 아주 잘쓴다. 재녀들이 모두 입궁한 후 자신의 소원을 담은 작은 등을 호수에 내보내는데 서혜는 당태종의 시를 적었다.

추후 재인들 중에서 난릉왕 입진곡에 맞춰 춤을 출 사람을 선택하려 하는데 서혜 스스로 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춤에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 유현비가 자기 스스로 계단에서 떨어져 유산하는데 양숙비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하자 무미랑이 나서고 옆에 있는 서혜는 무미랑의 무모한 행동에 행동조심하라며 조언을 전한다. 소장이 위귀비 조카라는 이유로 제일 먼저 시침을 들게 되나 망하고 위귀비는 소장을 난릉왕 입진곡 주인공을 만들려 한다. 그래서 일부러 서혜와 무미랑이 액정으로 심부름을 가고 거기서 팽유모를 만나게된다.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뼛가루들을 담다가 놀라 도망쳐 나오고 주인공이 정해졌다는 소식에 시무룩해한다.

하지만, 소장이 소박맞자 감기에 걸려 쓰러지게 되고 무미랑이 주인공으로 낙점된다. 이에 서혜는 축하를 전하고 무미랑과 더욱 더 친해지는데 하필이면 승경전에서 가져온 가면이 문덕왕후 꺼라.. 하지만 그래도 당태종이 금방 풀어주었다. 문덕왕후를 닮은 정완언과 친하게 지내게 되고 정완언 독살로 무미랑이 액정으로 가게 되자 진심으로 슬퍼해주며 먹을 것을 보내주며 보살펴준다.

타이밍 좋게 서혜가 당태종의 눈에 들어 같이 바둑을 두게 되고 시침을 들어 첩여로 승진한다. 서혜는 여의에게 음식도 가져다 주었으며 따로 만난다. 그 음식에는 유난훤[2]이 독을 탄 것. 벽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의자매를 맺으며 여의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팔찌를 증표로 서혜에게 준다.

냉궁 1년 후 각 국 사신단이 오게되어 면죄부를 받게 되고 재인신분을 회복한 무미랑을 찾아가 자신의 궁에서 지내자며 데려간다.

1.2. 첩여에서 충용으로

궁으로 돌아온 무미랑과 함께 지내고 무미랑은 위귀비의 악행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며 양숙비와 친하게 지내자고 제안한다. 사신단일정으로 인하여 통솔권을 가지게 된 양숙비는 무미랑과 서혜에게 비단을 주고 잘 도와달라고 부탁한다.[3]

바둑을 잘 두어 사신단이 올때 일본과 대국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대조회를 준비하면서 숙비로부터 여의가 받은 부채[4]에 독이 있어서 그걸 자주 사용하다가 대국을 하면서 쓰러지고 만다. 이때 미랑이 서혜가 어떻게 바둑을 놔야하는지 들어서 대신 나가고 일부러 다른 쪽으로 놓는다.

무미랑이 사신단에서 맹활약하고 "미랑"이라는 이름까지 하사받자 표정이 굳어진다. 무미랑은 어시방 시중을 들게되고 시침까지 들게된다. 그래도 아직까지 자매의 정이 남아있어서 질투를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으나... 무미랑에 관한 예언으로 인하여 당태종이 멀리하자 무미랑과 친한 서혜를 일부러 어시방 시중을 들게한다. 서혜는 당태종이 자신에게 말한게 몇번째인지 세고 필체가 아주 훌륭하여 당태종의 칭찬을 받는다. 당태종은 서혜에게 난릉왕 입진곡을 추게 하는데 당태종이 자신을 무미랑 대용품으로 생각하자 열등감에 변한다.

소재인이 임신하고 위귀비 감시에 밖으로 못나오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일부러 서첩여의 간식을 먹고 싶다며 부르는데 무서운 모습을 보인다. 도와달라는 소첩여의 요청에 서혜는 자신은 지위가 낮아 해줄 수 없고 양숙비나 황제에게 이야기 하라고 하다가 위씨집안 힘이 대단하고 황제가 위귀비 악독함을 알고서도 봐주는 거라고 밀당의 진수를 보여주다가 아이와 너 둘중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 위귀비 시녀가들어오려 하자 일부러 싸우는 척 한다. 서혜는 소첩여에게 사과의 뜻으로 선물을 보내려하고 무미랑이 전달한다. 소첩여는 서혜가 보낸 향낭을 이용하여 유산하고 이에 무미랑이 의심받으나 미친척하며 위귀비를 모함하는 바람에 위귀비는 죽고 무미랑은 산다. 한방에 두명을 보내버렸을 수도...무서운 인간

태자비가 태자가 칭심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무미랑과 이야기 하려다가 서혜를 만나고 서혜는 태자일로 온 것이 아니냐며 떠보고 태자비는 서혜의 말빨에 넘어가 논의한다. 이에 서혜는 위징대인에게 말하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 말하고 2시진 뒤에 입궁하니 어화원에서 만나라고 한다. 이에 서혜는 황제를 어화원쪽으로 데려가 칭심이 살아있다는 것을 듣게한다.이에 황제가 빡치게 된다. 추후 태자가 반란을 일으키는데 서혜가 큰 공을 세웠다.

1.3. 현비가 되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c973f07d3f6c75b65cf7e7a77b53ccdd.jpg

후반부에서는 진심으로 사랑함을 넘어서 집착으로 변한다. 무미랑을 따르는 환관 서안을 좋아했던 궁녀 문랑이 태자 숙청 건에 대한 전말을 파악하고[5] 자신을 질책하며 무미랑에게 전말을 고하겠다고 하자 당황해 근처에 있던 촛대로 문랑의 머리를 내치려 살해한 뒤 그 시신을 연못에 버려 실족사로 위장했다.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문랑을 자기 손으로 죽인 이후 자괴감에 빠졌는지 이전보다도 더욱 악독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무미랑을 해치기 위한 음모를 여러 번 꾸몄으면서도 무미랑에게는 여전히 둘도 없는 의자매인 척 하니 가식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미친 척 하고 있던 소첩여가 무미랑과 서혜를 증오해 무미랑과 서혜가 있는 건물에 불을 질렀을 때, 화마로 인해 석상이 무미랑에게로 떨어질 때 그냥 뒀어도 됐는데 뜻밖에도 몸을 날려 자신이 대신 맞으며 미랑을 구하기도 했다. 이 때 했던 말이 '무미랑이 죽어 당 태종이 평생 그리워하게 둘 수 없고, 아직 자기와 무미랑의 승부는 남아있다며 무미랑을 절대 죽게 둘 수는 없다'고 했는데 태종에 대한 광기어린 애정과 아직까지도 남은 미랑에 대한 자매로서의 정 때문에 이런 모순적인 일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일로 태종의 신임을 얻어 현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태종이 궁을 떠나 먼 곳으로 원정을 떠나고 현비인 서혜가 후궁을 통괄하게 되자 궁인들은 자애로운 분이 후궁을 관리하게 됐다면서 좋아했으나, 그것도 잠시, 서혜는 궁인들이 정원을 가꾸다 수다를 떨었다며 곤장 60대를 치게 하고 가벼운 뒷담화를 나눴다고 혀를 잘라 액정에 평생 가두고 차 온도를 못 맞췄다고 궁녀를 때려 죽이게 하는 등 오히려 위귀비보다 더 악독한 짓을 저지르며 후궁을 공포로서 통제하기 시작했다. 결국 서혜를 끝내버리기로 마음 먹은 무미랑이 후원으로 서혜를 불러 일부러 도발을 걸었고 거기에 낚인 서혜가 분노에 휩싸여 무미랑을 조롱하며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이야기 했고 미랑의 계책으로 거기에 나와 있던 당태종이 그 말을 전부 듣고 크게 분노하게 되었다.[6] 결국 자신을 추궁하는 태종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처소인 금락궁에 연금되었다.

이후 당 태종이 붕어했고, 삶의 낙이라 할 수 있었던 황제가 사라지자 미랑과의 옛 우정이 그리워졌는지 다시금 화해를 청했지만 미랑은 서혜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 때문인지 끝내 용서해주지 않았다. 이로서 서혜는 삶의 의욕을 잃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미랑은 서혜의 유서를 받았고 서혜가 스스로 부러뜨렸던 옥팔찌도 말끔히 수리해 놓은 것[7]을 보고는 끝내 오열하는데 그제서야 서혜를 용서한 것으로 보인다.

2. 특징

3. 실제 인물과의 차이



[1] 실재로도 보통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는 재녀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미랑과 초반엔 꽤 친하게 지낸 편이었다.[2] 덕비 시녀. 이 일로 덕비가 여의가 죄가 없는 아이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며 꾸중을 듣는다[3] 무미랑이 서혜에게 추천한 비단을 소재인이 골라 내놓으라고 싸우다가 위귀비가 이를 보고 소재인의 따귀를 때리며 위아래 없이 행동했다며 나무랬다.[4] 원래는 귀비가 숙비에게 준거였고 숙비가 쓰다가 여의가 눈독을 들이자 주었다.[5] 위징의 관 덮개 색에 대해 무미랑은 정확하게 알렸으나 서혜가 중간에서 서신을 바꿔치기 했고 그 일을 계기로 부황이 자신을 해치려든다고 여긴 태자가 반역을 꾀한 것이다.[6] 서혜는 예전 칭심의 일로 태자를 궁지에 몰 때, 태자의 일로 의논하는 태자비와 위징의 대화를 태종이 듣게 하는 방법을 썼었다. 결국 예전 자신의 수에 똑같이 당한 것.[7] 물론 한번 부러진 옥돌을 다시 붙히긴 어렵기 때문에 깨진 부분 사이에 세공된 장식을 끼워 이어붙였다. 전국옥새 역시 효원황후 왕씨가 내던졌을 때 온전히 수리하지 못하고 순금으로 부숴진 부분을 땜질하는 식으로 고쳤다.[8] 측천무후는 624년 출생으로, 서혜는 627년 출생으로 3년의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