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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03 14:25:53

귀비 위씨(무미랑전기)


당태종의 후비들
문덕황후 장손씨
부인 귀비 위씨 숙비 양씨 덕비 은씨 현비 유씨 현비 서씨
세부 첩여 소씨 첩여 정씨 미인 진씨 재인 무씨 재인 풍씨

귀비 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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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4. 실제 역사&역사와 다른 점

1. 개요

배우는 장정[1] 꼭 등장하는 회차의 댓글에 박해미 닮았다고 하나 이상씩 쓰여 있다 묘하게 이민정과도 닮았고 견미리와도 닮았다.
무미랑전기에 등장하는 인물. 전반부에서 대표적인 악녀로 활동했으며, 작중에서 당태종의 후궁인 귀비로 등장한다.
문덕황후가 사망한 시점에서는 비빈들 중 가장 영향력이 크고, 조정 세력도 단단하다. 20년 전 숙비 양씨와 같이 입궁했으며, 세 번 아이를 임신했으나 전부 유산해 그 여파로 성격까지 바뀌었다.

2. 작중 행적

드라마를 보면 단 2회만에 하차한 유현비를 이용해왔으며 여러 생명들을 해쳤는데도 당태종이 전부 눈감아준 듯 싶다. 양숙비의 편을 드는 무미랑을 싫어해서 고문하여 정완언을 독살했다며 모함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이후 액정으로 가게되자 자신이 심어 둔 나옥산을 이용하여 얼굴에 상처를 내려하나 나옥산은 위귀비에 대한 원한 때문에 미랑의 편이 되고, 상처까지 위조한다. 위귀비는 이내 쓸모가 없어진 나옥산을 죽인다. 각 국 사신단이 오는 대조회의 연회는 황후가 없으니 당연히 자신이 통솔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위씨를 견제하려는 당태종에 의해 통솔권이 양숙비에게로 넘어간다.[2][3] 이후 자기의 조카인 소장이 임신하도록 하고, 그녀가 출산한 뒤에 아기만 가로채고 소장을 죽이려 한다.

하지만 소장이 그 계획을 엿듣고 위귀비의 건상궁에서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리자 서첩여에게 연락하여 음모를 꾸민다. 일부러 낙태약을 먹고 유산하고 낙태를 유발하는 약재를 약탕방에 넣어둔다. 소장이 유산하자 당태종이 오고 소장은 위귀비에게 달려가 자신은 탕약 먹기 싫었다며 그러지 말라며 미친척하며 연기를 하여 위귀비를 모함한다. 결국 약방에서 그 약재가 나오고 위귀비는 소장을 일부러 내궁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것을 의심받아 감옥에 갇힌다. 추국을 받기 하루 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위왕 이태와 만난다. 이태와의 관계가 좀 복잡한데 원래는 이태를 황제로 만들어주고 이태는 위귀비를 황후로 만들어주는 계약이었으나 그게 점점 간통으로 발전한 듯 싶다. 결국 감옥에서 이태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손목을 그은 뒤에 자결한다. 이로써 이태는 더욱 무미랑과 이치를 적대시하게 된다.

3. 기타

취미는 고양이 키우기와 분재 및 꽃꽂이.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는 새하얀 색에 눈이 오드아이이다.[4] 바둑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립스틱과 네일색이 핫핑크이며 자주 입는 의상색도 핫핑크로 레드립을 바르고 다니는 숙비 양씨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데리고 다니는 시녀는 춘영으로, 제 주인을 닮은 듯 다른 시녀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싸가지가 없다.

4. 실제 역사&역사와 다른 점

정사에 등장하는 그녀의 이름은 위규(韋珪)이고, 시호는 기국태비(紀國太妃)이다. 드라마상의 내용과 같이 문덕황후 사후 내궁을 통솔했다 한다.

드라마 상에서는 다른 후궁들의 음모로 인해 위귀비가 불임이 된것으로 나오나 실제로는 당태종의 10남인 기왕(紀王) 이신(李愼)이 바로 위귀비의 아들이며 심지어 이신은 다음 황제인 당고종보다도 더 오래 살았다. 게다가 당태종과 위귀비 사이에는 임천공주(臨川公主) 이맹강(李孟姜)이라는 딸도 존재했다.
[1] 2011년에 방영한 당궁미인천하에서 무미랑을 연기했다.[2] 이전 이태와 만나 자신을 언제 황후로 만들어 줄거냐고 따지고 이태는 3년을 더 기다리라고 한다.[3] 장손무기는 조정에서 황후 책봉 이야기가 나올것을 미리 듣고서 고질병이 돋은것 처럼 하여 일부러 퇴청한다.[4] 중국은 예전엔 고양이 대신 동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을 길들여 키웠지만 이놈들이 집고양이 계열로 완전히 개량되기 전에 서역(중동)을 통해 고양이가 들어오면서 고양이가 집에서 길들여지던 삵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나라 시기는 외국과 문물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였으니, 이 고양이 역시 당과 교역하던 서역에서 들여왔거나 그 고양이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