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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9:18:49

서주경

<colbgcolor=#283593><colcolor=#fff> 서주경
Seo Jookyung
파일:서주경.jpg
본명 조연희
출생 1970년 7월 13일 ([age(1970-07-13)]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B형
데뷔 1993년 1집 앨범 '발병이 난대요'
학력 영해여자종합고등학교[1] (졸업)
가족 아들 장선우(2011년생)[2]
종교 불교
소속사 SW 엔터테인먼트 (대표)
SNS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다른 이름으로 나온 앨범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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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트로트 가수다.

대표곡으로는 '당돌한 여자', '쓰러집니다' 등이 있다.

2. 생애

서울에서 태어나서 경북 영덕군으로 내려가 학업을 마쳤으며, 1990년에 연예협회주관 각 지방 대표 옴니버스앨범에 진주시 대표로 《내 고향 진주》라는 음반을 내며 본명인 조연희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데뷔곡은 '찬스'. 1991년에 TOP프로덕션에서 전국공개오디션에 참가와 동시에 합격하여 작곡가 김영광의 작품으로 1집 음반을 발표하였고 1992년 가을에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강인원이 주요 임원으로 있던 코리아뮤직에 픽업되어 지금까지 사용하는 예명인 서주경으로 공식 데뷔를 하였다. 서주경의 정장 사진이 멋스러운 초판과, 여러 사정으로 인해 크레딧을 다 빼버린 채 쟈켓마저 교체해버린 재판 앨범이 있다. 여기에서 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 강인원 편곡의 '발병이 난대요'로 여러 가요프로그램에 나가 주목을 받았다. 서주경 본인은 '찬스'가 든 앨범이 아닌 '발병이 난대요'가 든 앨범을 데뷔앨범으로 생각한다고.

1996년에 나온 '당돌한 여자'로 무려 현금 70억 정도를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많은 돈은 없다고 밝혔는데, 아홉 식구를 보살피는 가장 역할을 하면서, 벌었던 돈은 엄마, 돌아가신 아버지, 언니, 동생들, 조카들, 남편과 있었던 일들 등에 돈을 다 썼다고 한다.

당돌한 여자로 한참 잘나가다가 갑자기 은퇴를 했는데, 그 이유가 재벌에게 스폰서 제안을 많이 받아서 넌덜머리 났다는게 은퇴 이유였다고 밝혔으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왜 그들이 룸살롱에서 놀 때 노래해야 하나"라고 당시를 털어놨다. #
서주경 - 당돌한 여자 (2001)
서주경 - 쓰러집니다 (KBS 1TV 가요무대 - 2013. 08. 26.)

2.1. 다른 이름으로 나온 앨범

1994년 '개여울'과 1년 뒤 '한 번 더 생각이 나서' 등등 신곡 몇 곡을 추가한 2장의 앨범을, 서주경이 아닌 서주영이라는 예명으로 발매했는데, 코리아뮤직이 이름을 바꾼 '애플레코드'에서 기획된 앨범이었다. 1996년에 3집 '당돌한 여자'를 발매한 이후에 1998년에 선배 가수들의 명곡을 리바이벌했을 당시에는 서라라는 예명을 썼다. 총 4번이나 이름이 바뀌었는데, 트로트 엑스에서 우승했던 동료가수 나미애[3]도 같은 케이스다.

몇몇 신문기사#에는 서주경 2집 '개여울'[4] 내용이 나오는데, 서주경이 아닌 서주영이라는 이름으로 94년에 발매한 앨범 타이틀곡을 의미한다. 이름을 바꾸게 된 내부 사정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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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現 영해여자정보고등학교.[2] 서주경이 42살(만 41세)이던 해에 태어났다고 방송을 통해 밝힌 바 있다.[3] 김유진 '사랑했던 너'-> 김도희 '사랑의 노크', 정미지 '언제나 그 느낌으로'->나미애[4] 공교롭게도 이 앨범에는 1집에서 선보였던 '님아 님아 서방님아'가 리바이벌되어 재수록되어 있다. (님아 님아) 서주경이 96년에 3집을 발표하고 제7회 세계가요제 금상을 수상할 당시에도 공연에 부른 것을 보면 이 곡에 대한 애착이 강한 듯하다. #[5]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서주경의 벤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