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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7 03:21:53

서정인

파일:서정인.pn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오오우라 마사토라(大浦正寅)
자 / 호 성길(成吉)
고암(叩巖, 叩岩)
본관 달성 서씨[1]
출생 1927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 남후면 수하리 113번지
(현 경상북도 안동시 수하동)[2][3][4]
사망 1986년 3월 10일 (향년 58세)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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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27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 남후면 수하리(현 안동시 수하동)에서 아버지 서희수(徐禧洙, 1908 ~ 1944.6.17)[5]와 어머니 한산 이씨 이남이(李男伊, ? ~ 1955.10.10)[6] 사이에서 1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안동읍으로 이주하여 본정2정목(현 안동시 동부동)에 거주했으며, 안동농림학교 임과(林科)에 10기생으로 입학하였다.

1943년 8월경, 방학중임에도 안동농림학교 학생들은 중일전쟁태평양전쟁 등으로 인한 전시 시국에 의해 대구 동촌비행장의 확장공사에 강제로 동원되었는데, 서정인을 비롯한 안동농림학교의 제8·9·10기생들은 일제의 부당한 식민지 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공사 현장에서 항일결사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을 조직하였다. 여기에는 공사에 동원되었던 일반인들까지 참가하였다.

이들 대한독립회복연구단은 민족의식 고취에 머물지 않고,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일제의 후방을 교란시키는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안동군내의 일본인 기관 및 요인의 습격 등을 투쟁 방침으로 삼았다. 서정인 등은 기회를 엿보면서 거사를 준비하던 중, 1945년 3월 10일 소위 일본육군 기념일에 총궐기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거사를 추진했으나 사전에 발각됨으로써 서정인을 비롯한 단원 64명 전원이 체포되었다.

그는 이 일로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으며,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불기소처분받고 출옥하였다.

1986년 별세하였으며, 199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학유공파(學諭公派) 25세 정(正) 항렬.[2] 옥야동에서 태어났다는 기록도 있다.#[3] 달성 서씨 집성촌이다.[4] 출생지 113번지는 달성서씨 학유공후 억연파종중의 소재지이기도 하다.[5] 자는 윤오(潤吾)[6] 이인식(李仁植)의 딸로, 안동시 일직면 소호리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