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외부의 소리를 오디오 파형 형태로 샘플링하여 이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 건반이나 패드 등의 컨트롤러를 통해 연주하거나 시퀀싱 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자악기의 일종. 신디사이저가 오실레이터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소리를 가공하고 합성해내는 방식이라면, 샘플러는 LP판의 드럼 브레이크, 사람 목소리, 지나가는 개 짖는 소리, 기타 다양한 샘플 등을 재료로 삼아 가공하고 재배치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음원 파일 자체를 재생하는 기기인 만큼 음향 및 저장 매체 기술 발전과 샘플러의 보급은 그 궤를 같이해왔다. 초기에는 말 그대로 억 소리 나는 가격의 스튜디오 장비였으나, 기술 발전과 함께 가격이 내려가며 힙합, 하우스, 테크노 등 현대 대중음악, 특히 전자음악과 흑인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2. 역사
2.1. 태동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샘플러의 시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멜로트론이다. 엄밀히 말하면 테이프를 재생하는 아날로그 방식이었지만, '녹음된 소리를 건반으로 연주한다'는 개념을 정립한 것은 멜로트론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이후 1970년대 후반, 호주의 Fairlight CMI가 등장하며 디지털 샘플링의 시대가 열렸다. 다만 가격이 집 한 채 값에 육박했기에 당대에는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같은 슈퍼스타들이나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2.2. 황금기: 힙합의 탄생과 MPC
1980년대 들어 E-mu Systems의 SP-1200과 AKAI의 MPC 시리즈가 등장하며 혁명이 일어났다. 이 기기들은 그 전에 비해 현실적인 수준으로 가격을 낮춰 보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기술력 문제로 인해 샘플링 시간이 짧았던 한계가 존재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LP판의 속도를 빠르게 녹음한 뒤 피치를 낮춰 재생하는 테크닉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거친 질감과 사운드는 90년대 붐뱁의 상징이 되었다.이 시기 가난한 흑인 뮤지션들은 비싼 밴드 세션을 고용하는 대신 LP 컬렉션에서 드럼 소리를 따와 비트를 찍기 시작했고, 이것은 힙합 샘플링 작법의 표준이 되었다. 즉 과장 좀 보태서 샘플러가 없었다면 지금의 힙합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2.3. 소프트웨어의 시대와 하드웨어의 부활
2000년대 들어 컴퓨터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Kontakt 같은 소프트웨어 샘플러와 DAW가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 시기 하드웨어 샘플러는 불편하고 용량도 적은 고철 취급을 받으며 쇠퇴하게 된다.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Lo-Fi 장르의 유행, 레트로 감성의 부활, 그리고 컴퓨터 화면만 보고 음악을 만드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겹치며 다시 하드웨어 샘플러를 찾는 수요층이 생기기 시작했다.[1] 이후 기존에 샘플러를 생산하던 롤랜드와 아카이는 물론, 일렉트론 등의 다른 회사들도 현대적인 워크플로우를 탑재한 기기들을 내놓으며 꾸준히 수요층을 유지하는 중이다.
3. 활용
- 원샷 (One-Shot): 드럼 킥, 스네어, 하이햇 등을 각각 하나의 건반/패드에 할당해 리듬을 연주하는 방식.
- 루프 (Loop): 일정 구간의 소절(주로 드럼 브레이크나 피아노 선율)을 통째로 반복 재생하는 방식.
- 초핑 (Chopping): 샘플을 여러 조각으로 촵촵 썰어서 패드에 배치한 뒤, 순서를 뒤바꿔 전혀 새로운 멜로디나 리듬을 만드는 기술.
- 타임 스트레칭 & 피치 시프팅: 샘플의 길이를 늘리거나 줄이고, 음높이를 조절해 원곡과 다른 느낌을 낸다.
- 핑거 드러밍: 패드형 샘플러를 이용해 손가락으로 실제 드럼을 치듯 화려하게 연주하는 퍼포먼스.
4. 제품 및 회사 목록
4.1. Ableton
Ableton Live를 만든 그 회사로, 이 회사에서 개발한 그루브박스 컨트롤러인 Ableton Push가 Push 2부터 샘플링 기능이 강화되면서 샘플러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4.2. Akai Professional
AKAI MPC 시리즈의 회사로 칸예 웨스트, DJ 프리미어, 트래비스 스캇을 비롯한 힙합 프로듀서들이 무대나 스튜디오에서 뭔가를 두드리고 있다면 십중팔구 이 회사의 MPC 시리즈라고 해도 무방하다.4.3. Roland
자체 샘플러 제품군인 SP 시리즈가 유명하다. 원래는 턴테이블과 같이 사용하는 DJ용 이펙터/샘플러로 개발되었으나 MPC 시리즈 대비 간단한 워크플로우와 휴대성, 그리고 특유의 이펙터[2] 질감으로 인해 힙합, 특히 로파이 프로듀서들이 꾸준히 애용하고 있다.MF DOOM, J Dilla, Madlib 등이 애용한 SP-303과 그 후속작 SP-404가 제일 유명하다. 현재는 SP-404에 여러가지 기능을 추가해 현대적으로 개선한 기종인 SP-404 MK2만을 생산하고 있다.
4.4. E-MU
지금은 회사가 사실상 사라지긴 했지만 한때 샘플러 제조사 중에서 상당히 유명했던 메이커 중 하나. 특히 이 회사의 SP-1200은 특유의 거칠고 따뜻한 소리 때문에 지금도 꾸준히 수요가 존재하며 높은 중고가를 유지하고 있다.4.5. Teenage Engineering
2010년대 초중반 들어 급부상한 메이커. 특유의 장난감같은 디자인과 독특한 워크플로우가 특징으로 2010년대 중반 시작된 DAW-less, 그루브박스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OP-1:
흉악한 가격과장난감 같은 디자인으로 유명한 휴대용 워크스테이션 신디사이저 겸 샘플러. 톰 요크, 아비치, 판다 베어, 트렌트 레즈너 등 다양한 뮤지션들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기도 했다. - PO-33 K.O!: 계산기처럼 생긴 초소형 샘플러. 장난감에 가까운 악기이긴 하지만 가성비가 훌륭해 하드웨어 샘플러 입문용으로 자주 추천된다.
- EP-133 K.O. II: PO-33의 후속작을 표방하며 나온 라인업. 80년대 사무용 계산기에서 영향받은 디자인과 MPC, SP 시리즈와 유사한 워크플로우가 특징이다.
4.6. Elektron
Octatrack, Digitakt 등 하드웨어 샘플러 중 독보적으로 강력한 시퀀싱 기능을 가진 머신들을 주로 생산한다. 주로 힙합보다는 테크노, IDM 등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선호하며 배우는 난이도가 높기로 악명 높다.4.7. Native Instruments
Kontakt로 잘 알려진 회사인 만큼 하드웨어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의 장비를 만든다. Maschine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시.4.8. 그 외 브랜드
- Koala Sampler
elf audio에서 개발한 스마트폰용 샘플러 앱으로, iOS와 Android 모두 출시되어 있다. SP-404와 비슷한 워크플로우를 가졌으며, 스마트폰의 마이크를 통해서 소리를 녹음할 수 있고 핑거 드러밍 기능도 갖추고 있다. iOS 버전의 경우 프로젝트를 Ableton Live용 세트로 보낼 수도 있고 Ableton Link를 지원하여 Ableton Live와 연동성이 뛰어난 것도 장점. 저렴한 가격 덕분에 하드웨어 샘플러가 비싸다면 이 어플도 써볼 만 하다.[3] 인앱 구매를 통해 사무라이 에디션으로 업그레이드하면 자체 신스 엔진, 피아노 롤, 타임 스트레치, 3밴드 EQ, MIDI OUT 등의 기능을 추가로 쓸 수 있다.
5. 기타
- 기술적으로는 현대에 나오는 16비트, 24비트 기반 샘플러가 압도적으로 우월하지만 일부 올드스쿨 힙합 팬 및 로파이 프로듀서들은 옛날 샘플러(SP-1200, MPC 60, SP-303)의 12비트 사운드가 주는 특유의 '펀치감'과 '따뜻함'을 더 선호하곤 한다. 이는 주파수 대역이 깎여나가며 생기는 왜곡이 샘플을 보다 더 따뜻하고 듣기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 가끔씩 사용자가 직접 소리를 녹음할 수 없고, 공장에서 내장된 소리만 재생할 수 있는 기기도 존재한다. 이는 엄밀히 말해 샘플러라고 부르기 보다는 '샘플 재생기' 내지는 '롬플러'라고 부른다.
6. 관련 문서
[1] 이 당시 하드웨어 샘플러/그루브박스 붐을 주도했던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틴에이지 엔지니어링이다.[2] 특히 SP-303, SP-404의 Compressor, Vinyl Sim 이펙터가 유명하다.[3] Android 기준으로 7000원이란 하드웨어 샘플러들에 비해 상당히 싼 가격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