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24 00:44:38

삼용버스


파일:attachment/P508745.jpg 파일:330-1번버스.jpg
30번의 모습. 사진속 차량은 좌석 133번 출신이다. 330-1번의 모습.

1. 개요2. 탄생부터 도산까지
2.1. 경춘로의 터줏대감2.2. 경쟁자의 입성2.3. 몰락
2.3.1. 안간힘
2.4. 도산
3. 폐업 직전까지의 운행 노선 목록

1. 개요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일부 올드비나 경기 동북부권에 거주하는 버스 동호인들에게는 전설로 남아 있는, 남양주/가평 지역에서 끗발 날리던 버스 회사[1]. 주력 노선은 마석에서 청량리를 운행하던 30번과 서울-춘천간 시외버스였다.

2. 탄생부터 도산까지

2.1. 경춘로의 터줏대감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옛날 경충버스[2] 시절부터 경춘로를 거쳐 동마장으로 가는 완행버스를 운행했다는 걸로 미루어보아 해방 직후라든가 아니면 이러한 베이스를 둔 노선이 창립 때부터 운행했다면 일제강점기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지금의 30번, 330-1번, 1330번과 그 지선들 등 마석(화도읍)과 가평군 버스들의 시초는 여기서부터이다. 또한 현재 강원고속의 주력 노선인 동서울-춘천 노선의 시초가 되는 동마장/상봉-춘천 노선 역시 강원운수(90년대 초반까지 강원고속 사명)와 공동배차했었다.

1965년에 경기고속(대원여객의 인수 전 상태이다.)에서 삼용버스가 분리되고 1991년에는 진흥여객(현 가평교통)으로 사명 변경되었다. 이 때 가평군 및 남양주 화도지역 시내.농어촌버스 노선들은 동양버스로 독립된다. 그후 임금 체불로 인해 동양버스 대표가 구속되면서 새로운 사업자가 인수하면서 예전 모 회사의 이름인 삼용버스로 환원되었다.

한편 이 회사의 시외 노선들 중 마석 - 동마장 시외완행은 1989년(동마장터미널 개업 종료와 같은 해이다.) 30번 시내버스로 전환되었으며, 좌석형은 330번이 되었다. 거기에다가 시외시절부터 있던 지선들까지 흡수하였으며, KD로 넘어온 현재 30번대(-1~-14) 화도/수동 지선버스다.[3] 1994~5년경에는 330번의 연장판이자 직행좌석 버전인 1330번이 신설된다. 후에 1330번의 일반좌석형인 133번도 잠시 운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화도읍과 가평군의 시내/농어촌버스를 주름잡는 향토기업으로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듯 싶었으나... KD 운송그룹 대원여객이 망우리고개 사고 사상자 보험처리문제로 부도난 금성교통을 1996년에 인수하고 대원교통으로 바꾸면서 KD 남양주 제패에 신호탄이 울린다.

2.2. 경쟁자의 입성

1996년에 대원교통을 설립하면서 구리/남양주에 입성한 KD 운송그룹이 주변 업체와 붙어보려고 몇 가지 작전을 폈는데, 들어오고 나서 먼저 편 게 이 30번을 견제하기 위한 165-2번구간요금 폐지. 이게 영향력이 있었던 게 금성교통 시절 금곡에서 출발하는 165번은 구간요금이 없었으나 호평동에서 출발하는 165-2번은 금곡까지는 똑같이 기본요금인데 그 이후로 정류장 지날때마다 돈이 붙는, 비슷하게 구간요금을 철저히 받아내는 식으로 운행되었는데 이게 없어지니까 바짝 긴장하게 됐다. 호평과 평내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허허벌판이었으니 큰 타격은 없었다만... 금곡이 문제였고[4] 이때부터 내리막길의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몰락의 신호탄을 울린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차산리 영업소의 매각이었다.[5]

2.3. 몰락

이후 대원교통 뿐 아니라 2001년에 구리에 진출한 대원여객[6]도 구리/남양주권에서 승객 쓸어담기에 나서면서, 이 회사의 입지가 불안해지게 된다. 대원여객55번이 구리 쪽에서 승객을 쓸어가기에 이르면서, 사실상 구리-청량리 근거리 수요도 없어졌다. 물론, 그 전에 구간요금을 없앤 165번이 나머지 구간의 구간수요를 가져갔고, 도농동에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오면서 그 많은 신규 수요는 KD가 가져가 버렸다. 호평/평내지구 수요를 기대해볼만도 했지만 공사중이였기에...[7]

2.3.1. 안간힘

패색이 짙어질 무렵 마석 - 구리 간 수요라도 되찾아오기 위해서였는지 30번에서 가지치기를 마구 하게 된다. 30-2번(구암리 - 구리농수산물시장), 30-3번(마석 - 구리시청), 30-4번(마석 - 망우리고개)을 만들었지만 성과는 그다지 좋지 않아서 30-2번을 제외한 가지치기 노선들은 얼마 못 가 폐선되고 도로 30번으로 흡수됐다. 그리고 진흥여객 공략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석버스 330번에서도 가지를 쳐서 330-2번(설악 - 구리농수산물시장)을 운행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가지치기 노선들이 많았을 때는 330번과 노선은 같은데 금곡 예비군훈련장으로 돌아가는 330-3번이라는 노선도 굴렸는데, 당연히 얼마 못 가 없어졌는데 지금의 30번이 훈련장을 들어가게 된 게 우연이라 할 수 있겠다.

2.4. 도산

결국 2001년, KD의 공세 앞에 삼용은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사실상 자기의 본진이던 마석 바로 아래 차산리에도 KD가 들어와서 진을 쳤고, 마석에서 마치고개를 넘어가면 있는 옛 미금시 지역(평내호평 지역)은 오래 전부터 KD가 장악한 상황이어서 게임이 될 리가 만무했다.

당시 이 회사 버스 기사마석만 넘어가면 보이는 건 전부 노란색 차[8] 뿐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미 남양주시의 웬만한 지역은 죄다 KD 운송그룹이 먹은 상태였다. 그나마 남은 청정지역은 오남읍이나 진접읍[9], 별내면[10][11]정도였지만 그 일대는 당시만 해도 현재 수준의 아파트촌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청학리 택지지구는 2002년 개발이 마무리되었고, 덕송리와 화접리는 2006년부터 재개발이 시작해 2022년 별내신도시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끝났다. 게다가 이 지역들은 명목상 같은 남양주시지만 정 반대에 있어서 국회의원 선거구나 관할구역 등이 달랐다.

더 버티기 힘들어지자, 경기교통처럼 회사는 부도나고 차량 압류가 이루어졌다.[12] 그리고 운행하던 노선들은 KD 운송그룹[13]진흥고속이 가져갔다. 불행히도 그 이후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석의 시내버스 배차간격은 막장을 달리다가[14], 경춘선 전철 개통이 되면서 좌석버스들을 서서히 정리하여 많이 개선되었다. 시기상 이미 마지막 경쟁자 선진그룹이 철수한 걸 감안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 정도.

참고로 가평교통(진흥고속)이 본래 삼용버스였지만, 이후 진흥여객으로 사명을 바꿨고 떨어져나간 동양교통이 이후 삼용버스로 이름을 바꿨기 때문에 가평교통의 설립은 1965년,삼용버스의 설립은 1991년으로 되어 있다.

3. 폐업 직전까지의 운행 노선 목록

3.1. 시내버스

3.2. 일반좌석버스

3.3. 직행좌석버스

3.4. 그 외 노선들

해당 노선들은 폐업 직전보다 약간 이른 시기거나 동양버스 시절에 타사에 넘어간 노선들이다.
[1] 옛날에는 여주까지 운행했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참고[2] 경충버스 → 경기여객 → 경기고속 → 경기고속(대원여객이 인수 = KD).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전북여객, 강원여객, 동해상사고속에 이어 네 번째로 오래된 버스 회사이다.[3] 다만 당시에 있던 지선 인가들은 마이카 보급이 조금 늦었던 농어촌 특성상 훨씬 다양했다.[4]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금곡동은 남양주에서 인구가 많은 편이었다. 도농동 부영아파트도 그제서야 완공했던 시기.[5] 차산리 영업소에는 30-1번(차산리-청량리, 시내), 330-1번(30-1번의 좌석버스 판)과 1990번(차산리-강변역) 세 개의 노선이 있었다. 이들은 각각 65번, 650번, 1115-2번으로 번호가 바뀌었고 기존에 운행하던 차량들은 넘어가지 않았다. 좌석버스 650번은 765-1번과 청량리 회차구간을 제외하고 완전히 겹쳤기 때문에 폐선됐다. 참고로 현재 운행중인 330-1번은 차산리 매각 이후 비금리 지선에 붙은 것이다.[6] 진화운수 구리영업소(옛 부흥교통)를 인수하여 진출한 형태다.[7] 아파트라고는 경춘로변에 진주아파트, 장내마을에 무궁화아파트, 천마산 입구에 라인아파트가 전부였고 지금의 양정동처럼 시골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택지지구의 입주가 시작된 시기는 2004년 하반기로 KD가 이 일대에 정착한 지 시간이 좀 지났을 때.[8] 이게 당시 KD의 도시형버스 도색이었다. 정확히는 서울 몬드리안 도색과 같다.[9] 삼용버스가 영업하던 당시는 오남은 세진버스, 진접은 대진운수가 영업을 했으며, 이 두 회사는 삼용버스 파산 이후인 2004년에 선진네트웍스 계열로 인수됐고, 2009년 까지 KD그룹과 경쟁했다.[10]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남양주 비 KD 점령지. 물론 실제론 KD가 더 많지만 기타 회사들의 비중도 아직 돋보이기 때문.[11] 2002년 당시에는 별내지역 자체가 산으로 타지역과 떨어진 탓에 서울시내버스 업체인 태릉교통이 이 동네를 장악하고 있었고, 청학리는 의정부 생활권인지라 의정부 업체인 명진여객과 평안운수의 비중이 높았다. 우정운수와 흥안운수의 마을버스도 있긴 했지만 이건 논외.[12] 1330번에서 다니던 일부 차량(에어로 스페이스 LS)은 보영운수(안양)에서 인수하여 1917번 직행좌석에서 다녔다.[13] 처음에는 KD가 아닌 명진운수에서 운행을 맡았다. 1-2개월 정도 임시운행을 맡다가 명진운수가 임시운행을 때려치고 2001년도 경에 경기고속이 운행하게 된 형태라고 보면 된다.[14] 서울 나가던 직행좌석버스인 765, 765-1번은 잘 오는데 비해 시내버스인 30, 65번은 배차간격이 썩 좋지 않았다. 장거리 수요는 비싼 좌석버스로 굴려도 충당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