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repeating-linear-gradient(to bottom, #9F8854 6%, #9F8854 18%, #62501F 18%, #62501F 20%)"''' | ||||
''' 발매일 ''' | 1977년 12월 15일 | |||
''' 장르 ''' | 사이키델릭 록, 하드 록 | |||
''' 길이 ''' | 45:18 | |||
''' 곡 수 ''' | 9곡 | |||
''' 프로듀서 ''' | 방기남 | |||
''' 레이블 ''' | ||||
''' 타이틀 곡 ''' |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4d3a93><width=80> ||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1998년 2위 ||
1998년 2위 ||
멜론 선정 명반 산울림 새노래 모음 |
이즘 선정 명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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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느날의 일이다. 가벼운 녹크 소리와 함께 한 젊은이가 들어섰다. 젊은이가 바로 金昌完君(김창완군)⋯⋯ 그러니까 "산울림"의 리이드 싱어였던 것이다.
나는 흔히 하듯 녹음기에 카셋트를 꽂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놀랐다.
마치 AFKN의 한 뮤직 프로에서나 나올듯한 다이나믹한 사운드,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리듬 터치, 그리고 또 너무도 개성적인 멜러디의 진행과 창법⋯⋯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만 매혹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그들의 음악에 넘치는 젊은 활력, 밝은 익살끼⋯⋯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풍요한 생명력의 조각들이라고 느껴졌으며, 마치도 회색 하늘을 가르고 내보이는 한조각 푸른 하늘⋯⋯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신선한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젊은 것만큼 노련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며, 또 신선한 것만큼 완숙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젊음과 신선⋯⋯그것은 바로 창작의 원천이며, 음악에 있어서는 흘러주는 생명의 약동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 음악의 젊음과 신선한 감각, 그리고 약동하는 생명력의 리듬에 매혹되어 그들의 음악활동을 뒤밀어 주기로 작정했고, 여기서 이 음반은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청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결코 노련하지도, 완숙하지도 못하면서 던져주는 커다란 매력⋯⋯이 매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나는 흔히 하듯 녹음기에 카셋트를 꽂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놀랐다.
마치 AFKN의 한 뮤직 프로에서나 나올듯한 다이나믹한 사운드,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리듬 터치, 그리고 또 너무도 개성적인 멜러디의 진행과 창법⋯⋯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만 매혹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그들의 음악에 넘치는 젊은 활력, 밝은 익살끼⋯⋯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풍요한 생명력의 조각들이라고 느껴졌으며, 마치도 회색 하늘을 가르고 내보이는 한조각 푸른 하늘⋯⋯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신선한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젊은 것만큼 노련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며, 또 신선한 것만큼 완숙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젊음과 신선⋯⋯그것은 바로 창작의 원천이며, 음악에 있어서는 흘러주는 생명의 약동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 음악의 젊음과 신선한 감각, 그리고 약동하는 생명력의 리듬에 매혹되어 그들의 음악활동을 뒤밀어 주기로 작정했고, 여기서 이 음반은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청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결코 노련하지도, 완숙하지도 못하면서 던져주는 커다란 매력⋯⋯이 매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1977년 발매된 산울림의 데뷔 앨범. 대표곡은 아니 벌써,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등.
2. 상세
앨범 뒷면에 수록된 멤버 사진 |
첫 녹음 때 김창훈의 베이스는 평범한 국산제품이였고, 김창완은 중고 기타라 평론가 이백천에게 악기를 빌려 재녹음을 했다고 한다. 1집을 잘 들어 보면 몇몇 곡에서 박자가 맞지 않거나 연주에 실수가 있다는걸 알 수 있는데 이때 당시 음반사가 녹음실에서 녹음하는데 시간당 돈이 많이 든다고 겁을 줘 비용에 대한 강박감에 빨리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시간 여유를 갖고 부족한 부분을 더 연습하거나 재녹음을 해야 하는데 빨리 끝내야 된다는 강박감 때문에, 녹음은 하루 만에 끝났다고 한다.[4] 이렇게 발매된 산울림의 첫 앨범에 대중들은 괴상한 앨범이 나왔는데 음악도 괜찮다며 열광했으며 당시로선 상당히 많은 판매량인 4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5]
단순히 해외의 록 음악을 카피하는 수준이 아닌 산울림만의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작법을 사용하여 만든 앨범은 큰 호평을 받았다. 그 특유의 다듬어지지 않은 아마추어틱한 연주와 더러운(...) 음질 때문에 한국식 개러지 록의 탄생으로 여기지기도 하며,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조용필, 신중현 등의 쟁쟁한 가수들이 구속되고 난 후 황폐화된 한국 록 음악 계의 기둥이 된 앨범이기도 하다. 이후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오늘날에는 한국 최고의 록 음악 앨범 중 하나이자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6]
깔끔한 폰트가 돋보이는 앨범 커버 왼편의 어린애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은 원래 정말로 어린애들한테 맡기려 했으나 만족할 만한 그림이 안 나오자[7] 김창완이 직접 왼손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후 이러한 형식의 커버는 산울림의 마지막 음반인 13집 무지개까지 이어지게 된다.
3. 트랙 리스트
트랙 | 곡명 | 작사 | 작곡 | 재생 시간 |
<colbgcolor=#9F8854><colcolor=#000000> Side A | ||||
1 | 아니 벌써 | 김창완 | 김창완 | 5:36 |
2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 6:17 | ||
3 | 골목길 | 김창훈 | 김창훈 | 4:10 |
4 | 안타까운 마음 | 김창완 | 김창완 | 4:08 |
5 | 그 얼굴 그 모습 | 김창훈 | 김창훈 | 3:20 |
Side B | ||||
6 | 불꽃놀이 | 김창완 | 김창완 | 3:59 |
7 | 문 좀 열어줘 | 5:57 | ||
8 | 소녀 | 4:11 | ||
9 | 청자(아리랑) | 7:40 |
3.1. Side A
3.1.1. 아니 벌써
아니 벌써 |
아니 벌써 해가 솟았나 창문 밖이 훤하게 밝았네 |
3.1.2.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
꼭 그렇지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 |
- 산울림의 대표곡 중 하나. 김창완의 나레이션 같은 잔잔한 보컬이 간결한 피아노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이런 곡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창완이 산울림의 곡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곡으로도 고른 곡이다.
3.1.3. 골목길
골목길 |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서 한없이 걷는 마음이여 |
3.1.4. 안타까운 마음
안타까운 마음 |
마치 뭐 할 말 있는 것처럼 가득히 호소하는 눈빛은 |
3.1.5. 그 얼굴 그 모습
그 얼굴 그 모습 |
그 얼굴 그 모습 그 웃음 그 눈동자 |
3.2. Side B
3.2.1. 불꽃놀이
불꽃놀이 |
모두 다 한자리에 모여 부르는 노래소리 흥겨워 |
3.2.2. 문 좀 열어줘
문 좀 열어줘 |
내가 있잖어 여기 있잖어 문 좀 열어 줘 방긋 웃어줘 |
- 1977년 대학가요제 때 서울 지역 예선 1위를 한 곡이었으나, 상기했듯 맏형 김창완이 졸업생이라 재학생만 참가 가능하다는 규정에 걸려서 본선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하였다. 또 이곡에 대한 일화가 하나 더 있는데, 당시에는 아직 사전 검열이 있을 때라 이 곡은 창법 혐오(...)라는 이상한 사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8]
3.2.3. 소녀
소녀 |
이슬에 젖은 듯 예쁜 소녀 눈은 |
- 이곡도 아니 벌써, 문 좀 열어줘와 같이 사전 검열때 개작 명령이 나왔다고 한다. 원래 제목은 “늑대”였다고 한다.
3.2.4. 청자(아리랑)
청자(아리랑) |
그윽한 향기 흐르는 선에 숨은 듯 푸른 피어난 미소 |
- 제목에 걸맞게 반주에 오르간으로 아리랑이 연주되는 부분이 있다.
4. 기타
2000년대부터 활동한 우크라이나 가수 스베들라나 로보다의 노래 Постой, мужчина가 해당 앨범의 2번 트랙인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의 리듬과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영어 제목으로 올라온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유튜브 영상을 보면 로보다가 이걸 샘플링 혹은 표절한거 아니냐는 외국 반응을 간혹 볼 수 있다.[1] 성음사. 서라벌레코드의 판매회사다.[2] 이후 정식 데뷔를 위한 앨범 녹음을 할때 즈음 산울림이란 이름으로 바꿨다. 성음사의 사장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3] 이 곡을 작사/작곡했던 김창훈이 이후 산울림에서도 2집에 셀프 커버하여 수록했다. 사실 결선에서 무이(산울림)가 쓰려고 한 곡인데 본선에 오르지 못하자 김창훈이 서울대 후배들인 샌드페블즈에게 이 곡을 줬다고 한다. 사실 그 덕분에 대상 탄 이 곡을 만든 작곡가가 누구냐 해서 산울림이 계약하게 된 것도 있다고 하니 어찌보면 전화위복.[4] 오르간 부분은 사촌 여동생인 클래식 피아니스트 김난숙이 연주를 했다고 한다.[5] 참고로 한국에서 최초의 공식적인 밀리언셀러는 1988년 발매된 변진섭 1집으로, 이전의 한국 대중음악은 가요보단 팝송이 더 팔리던 시절이었다.[6] 실제 2018년까지 3차례 이뤄진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순위 선정에서 10위권 안에 모두 들었다.[7] 동네 아이들한테 크레파스를 쥐어 줬더니 빨간색 크레파스로 꼬불꼬불한 선만 계속 그렸다고..[8] 당시 시대상과 연관지어 추측해보자면, 청자에 따라선 뭔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문 좀 열어달라는 절규 비슷하게 들릴수도 있기에, 군사정권의 검열팀에선 지레 자기들끼리 겁먹고 걍 창법을 꼬투리 잡아 방송금지 처분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