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13:06:07

사유(홍건적)

沙劉
(? ~ 1362)

1. 개요2. 행적

1. 개요

홍건적의 인물. '사류' 또는 '사유이(沙劉二)'라고도 표기되었다.

2. 행적

1357년 6월에 유복통이 군사를 거느려 변량을 공격하면서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자 사유는 관선생, 반성(파두반), 풍장구, 사유, 왕사성과 함께 진, 기로 향했다.

1358년 6월에 베이르테무르가 무안으로부터 팽성으로 맞아들이면서 길을 끊자 사유는 격파당했다.

1361년 10월에는 관선생, 파두반과 함께 고려를 침공해 평양개경을 함락하면서 수많은 약탈을 저질렀다.
을축 동틀 무렵에 여러 장수들이 사방에서 전진하여 공격하니, 우리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휘하의 친병(親兵) 2,000명을 거느리고 용기를 내어 공격하여 먼저 〈성에〉 올라가 적을 크게 격파하였으며, 적의 괴수 사류(沙劉), 관선생(關先生) 등을 베어 죽였다. 적이 달아나면서 서로 짓밟아서 쓰러져 죽은 시체가 성(城)에 가득 찼으며, 머리를 베어 죽인 것이 무릇 100,000여 급(級)이었고, 원 황제의 옥새(玉璽)와 금보(金寶), 금·은·동으로 만든 도장, 병장기 등의 물품을 노획하였다. 잔당인 파두반(破頭潘) 등 100,000여 명은 도주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가 버리니, 적들이 드디어 평정되었다.
『고려사』 세가 권제40, 공민왕(恭愍王) 11년, 1월, 홍건적 10만 명을 죽이고 개경을 수복하다
1362년 1월에는 정세운, 최영, 이인임, 이성계 등이 이끄는 고려의 군사들이 개경을 수복하면서 이성계에 의해 관선생 등과 함께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