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 <colbgcolor=#ffffff,#191919>3세기 |
로마 제국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오스카 | |
사망 | 304년경 |
로마 제국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발렌티아 | |
종교 | 기독교 |
직업 | 성직자(부제) |
성인명 | 빈첸시오 |
축일 | 1월 22일 |
수호 | 리스본, 발렌시아, 와인 제조업자, 식초 제조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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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사라고사 교회의 부제이자 스페인 최초의 순교자이다.2. 생애
빈첸치우스는 로마 제국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 오스카[1]에서 귀족 의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귀족 집안에 걸맞게 질 높은 교육을 받고 자란 그는 당시 사라고사의 주교인 발레리우스(Valerius)[2]의 제자가 되어 부제품을 받고 그 지역의 주민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직분을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던 중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발렌티아[3]에서 순교함으로써 스페인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기록을 통해 전해지는 전승에 따르면, 황제의 박해 때 기독교를 너무나 미워하던 당시 히스파니아의 총독 다치아누스(Dacianus)는 빈첸치우스가 가장 먼저 눈에 띠었다. 이에 그는 발레리우스 주교와 함께 체포한 후 이들을 철사로 결박한 채 발렌티아로 끌고 가 감옥에 가뒀다. 다치아누스는 일단 이미 죽음에 임박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버린 주교를 먼 곳으로 추방하고, 감옥에 갇혀 굶주림으로 쇠약해진 빈첸치우스에게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황제에게 희생 제사를 바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한 빈첸치우스는 결국 심한 고문을 받았다. 총독은 쇠갈퀴로 그의 살점을 떼어내기도 하고, 철판 위에 묶어 놓은 뒤 불로 지지며 벌어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고문에도 그는 자신의 종교를 배신하지 않고 순교할 결심으로 온갖 고통을 참아냈다.
오랜 고문 끝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빈첸치우스의 용기에 큰 감명을 받은 다치아누스는 그를 편안한 침대에 눕힌 뒤 성경을 포함한 기독교 서적만을 내놓으면 모든 걸 용서해주겠다고 회유했다. 하지만 빈첸치우스는 총독에게 “당신의 광포함이 더 커질수록 내 기쁨은 그만큼 더 커집니다. 그러니 당신이 내게 마련해 둔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도 줄이지 마십시오. 그래야 내가 나의 승리를 더욱더 빛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쏘아붙였다. 더는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총독은 어쩔 수 없이 빈첸치우스를 철과 도자기 파편이 사방에 널려 있는 감옥으로 넣었다.
빈첸치우스가 그렇게 감금되어 있던 중 갑자기 감옥 안에서 휘황찬란한 광채와 함께 천사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약속했다고 한다. 온갖 고문으로 이미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빈첸치우스는 천사의 약속을 들은 뒤 감옥 안에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총독은 그의 시신을 황량한 들판에 던져 야생 동물들의 먹이가 되도록 했다. 하지만 까마귀들이 나타나 그의 시신 주위를 맴돌며 야생 동물들을 쫓아냈다. 놀란 총독은 이번에는 그의 시신을 자루에 담아 큰 돌을 묶어 바다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며칠 뒤 그의 시신은 파도에 밀려나 바닷가에 놓여 있었다. 마침 그곳을 거닐던 신자들이 이를 발견해 정중히 매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