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b3438><colcolor=#ffffff> 비앙카 파노바 Бианка Панова | Bianka Panova | |
출생 | 1970년 5월 27일([age(1970-05-27)]세) |
소피아 | |
국적 | [[불가리아| ]][[틀:국기| ]][[틀:국기| ]] |
종목 | 리듬체조 |
신체 | 163cm |
은퇴 | 198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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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의 前 리듬체조 선수이며, 세계 최초로 리듬체조에서 5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리듬체조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이다. 리듬체조계의 나디아 코마네치라고 불렸음을 보면 그녀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2. 선수 경력
1985년 시니어 대회에 입문한 비앙카 파노바는 그해 치러진 세계선수권에서 개인종합 동메달을 획득했다.그 뒤 1987년 세계선수권 개인종합에서는 전 종목 10점 만점으로 개인 종합과 종목별 4개 부문에서 금메달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이 대단한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서인지 IOC의 사마란치 위원장이 직접 메달을 수여했다.[1]
그렇게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군림하고 있던 비앙카 파노바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준비했지만, 예선에서 곤봉을 장외로 던져버리는 실수를 범해 개인종합 4위에 머물렀다.[2] 결선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은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하였다. 느린 음악을 잘 쓰지 않는 곤봉 루틴에 쇼팽의 에뛰드를 사용하여 많은 올드 팬들에게는 지금도 회자되는 루틴이다.
그렇게 유력했던 올림픽 금메달의 기회를 놓쳐버린 파노바는 1989년 세계선수권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종합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번 더 금메달을 노리며 준비를 했다.
3. 은퇴
결론부터 놓고 말하자면 여러가지 문제가 겹친 것 때문에 만 19세라는 이른 나이에 파노바가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헤드코치였던 네스카 로베바는 하루 16시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할 것을 파노바에게 강요했는데, 이는 파노바 자신이 원하던 방식과 아예 맞지 않았고[3] 안 그래도 코치진과 사이가 삐그덕거리던 참에 신예 마리아 페트로바가 등장했다. 그리고 파노바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출전 명단에서 제외당했다.[4] 은퇴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물리치료사였던 차브달 니노프와 결혼했다.
4. 수상 기록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85 바야돌리드 | 리본 |
금메달 | 1987 바르나 | 종합 |
금메달 | 1987 바르나 | 곤봉 |
금메달 | 1987 바르나 | 리본 |
금메달 | 1987 바르나 | 줄 |
금메달 | 1987 바르나 | 후프 |
금메달 | 1989 사라예보 | 줄 |
금메달 | 1989 사라예보 | 후프 |
은메달 | 1989 사라예보 | 종합 |
은메달 | 1989 사라예보 | 공 |
동메달 | 1985 바야돌리드 | 종합 |
유럽선수권 | ||
금메달 | 1986 플로렌스 | 종합 |
금메달 | 1986 플로렌스 | 곤봉 |
금메달 | 1986 플로렌스 | 줄 |
금메달 | 1988 헬싱키 | 리본 |
금메달 | 1988 헬싱키 | 후프 |
은메달 | 1986 플로렌스 | 리본 |
월드컵 파이널 | ||
금메달 | 1986 도쿄 | 공 |
금메달 | 1986 도쿄 | 리본 |
동메달 | 1986 도쿄 | 곤봉 |
동메달 | 1986 도쿄 | 줄 |
[1] 세계선수권에서 한 대회에 전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파노바 외에 1993년 옥사나 코스티나와 2011년 예브게니야 카나예바 밖에 없다.[2] 이때까지만 해도 올림픽에서는 예선과 결선 점수의 합산으로 최종 순위를 매겼다. 그리하여 금메달은 마리나 로바치에게 돌아갔다.[3] 하루 16시간이면 문자 그대로 잠자고 밥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놓고 온종일 수구와 씨름하며 리듬체조를 하는 거다. 연습 벌레라고 불리는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나 안나 리잣디노바도 하루에 9시간 훈련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파노바가 게으른 것이 절대 아니라 코치의 스파르타식 훈련 방식이 굉장히 특이한 것이다.[4] 마리아 페트로바도 리듬체조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굵직한 업적을 남긴 선수였긴 하지만, 영 올림픽하고 인연이 없는 선수였다. 앞길이 창창한 선수를 반강제로 은퇴시킨 대가로 벌받은 건지, 불가리아는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노골드도 아닌 노메달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