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e34234><colcolor=#fff> 브로니스와프 프루가르케틀링 Bronisław Prugar-Ketling | |
출생 | 1891년 7월 2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 트제시니우프 | |
사망 | 1948년 2월 18일 (향년 48세) |
폴란드 바르샤바 | |
국적 | [[폴란드|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르비우 대학교 바르샤바 전쟁대학교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소장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clearfix]
1. 개요
폴란드의 군인이다.2. 생애
1891년 트제시니우프에서 태어나 프란치스칸 대학교 정치 및 법학을 공부했다. 대학교에 다니던 1914년 8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 징집되어 루블린 전투와 겨울 카르피티야 전역에 참전했다. 1916년 러시아 제국군에 생포된 후 1917년 탈옥에 성공해 무르만스크와 영국을 거쳐 프랑스에 도착해 유제프 할레르의 청군에 합류했다.1919년 독립한 폴란드에 돌아와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 참전했다.
2.1. 제2차 세계 대전
제11키르파티보병사단의 사단장을 역임 중 폴란드 침공이 발생하자 카르파티군 소속으로 비스와강 방어에 임해 9월 15일에서 16일 사이 벌어진 야보루프 전투에서 독일의 SS 게르마니아 차량화연대를 격파하는 활약을 했다. 그러나 제11카르파티보병사단의 피로가 누적되어 더이상 전투 참여가 불가능해지자, 부대를 해산한뒤 루마니아를 통해 프랑스로 망명했다.프랑스에 도착한 후 시코르스키군에 합류해 1939년 11월 제2보병사단의 사단장으로 부임했다. 독일의 프랑스를 침공한 후 프랑스 제3군 소속으로 독일군과 싸웠으나 큰 손실을 입게되었다. 어쩔수 없이 남은 12,0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스위스로 다시 망명해 스위스 경제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전쟁을 보냈다.
1945년 독일의 항복한 이후 휘하 장병 12,000명 중 9,000명과 함께 고국 폴란드로 귀국해 폴란드 인민군에 입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