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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20:17:02

부여덕장

扶餘德璋
? ~ 738년 이전[1]

1. 개요

皇金紫光祿大夫ㆍ故衛尉卿ㆍ帶方郡王義慈曾孫, 皇光祿大夫ㆍ故太常卿ㆍ襲帶方郡王隆之孫, 皇朝請大夫ㆍ故渭州刺史德璋之女也.
[부여태비는] 금자광록대부(皇金紫光祿大夫) 고(故) 위위경(衛尉卿)ㆍ대방군왕(帶方郡王) 의자의 증손이며, 광록대부(光祿大夫) 고(故) 태상경(太常卿) 습(襲) 대방군왕(帶方郡王) 의 손녀이며, 조청대부(朝請大夫) 고(故) 위주자사(渭州刺史)를 지낸 덕장(德璋)의 딸이다.
부여태비 묘지명 中, 부여덕장에 대한 유일한 언급.
巨母扶餘氏, 吉溫嫡母之妹也.
(이)거[2]의 어머니는 부여씨로, 길온(吉溫)의 적모(嫡母)의 여동생이다.
- 《구당서》 권 112, 이거(李巨: ? ~ 761년) 열전

백제의 인물. 의자왕의 손자이자 부여융의 아들이다.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 등 문헌이 아니라 2004년 부여태비 묘지명이 확인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부여태비의 묘지명에서만 언급되는 인물로, 당나라에서 황조청대부와 위주자사(渭州刺史)[3]를 지냈다고 한다.

2. 가족관계

3. 기타



[1] 738년 부여태비가 사망한 뒤 기록된 묘지명에서 부여덕장의 호칭 앞에 고(故)를 붙인 점을 보면 늦어도 738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2] 괵왕 이옹과 부여태비의 아들.[3]간쑤성 딩시시 지역이다.[4] 길온의 아버지. 다만 길온이 서자라고 기록된 것을 볼 때, 적모인 부여씨의 소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5] 오주연문장선산고의 기록 이외에도, 구당서 돌궐열전에 따르면 698년 돌궐의 침공 때 종군한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