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08:09:37

르 코르뷔지에 파리 계획안

부아쟁 계획에서 넘어옴
파일:attachment/le_corbusier9.jpg

1. 개요2. 당시 상황3. 설계4. 프랑스 본토에서는 실패한 계획

1. 개요

르 코르뷔지에가 1920년대에 제안한 파리 도시계획안. 300만이 살 수 있다. 일명 부아쟁 계획(Plan Voisin)

2. 당시 상황

20세기 초 당시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대도시들이 모두 중세 때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도시의 인구 밀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났다. 이 당시 파리는 철도와 노면전차, 지하철, 버스를 비롯한 대중교통의 발달과 점차적으로 진행되는 자가용의 보급까지 겹쳐서 주거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당시 파리의 부유층과 중산층들은 파리 시내의 연립주택에서 주거하였지만, 인구집중은 필연적으로 집값과 월세비의 급속한 상승으로 이어졌고, 빈민층들은 근교의 판자촌에서 살며 장시간 출퇴근에 시달렸다. 이러한 인구밀도 과밀과 주거의 양극화 현상을 본 르 코르뷔지에는 문자 그대로 엄청난 도시계획안을 내놓게 된다.

3. 설계

파일:attachment/le_corbusier8.jpg

기존 중근세 시대의 건물을 모두 허물고 그 자리에 초현대적인 건축들을 세워놓는 계획인데, 특기할 점은 무려 95%의 면적을 녹지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서울 강북만한 땅을 밀어버린 다음에 60층짜리 십자가형 아파트를 18동 세워 원주민들을 모두 수용하고 차가 다니는 도로는 전부 지하화하고 지상은 숲와 공원을 조성하겠가는 계획안이었다. 심지어 이 고층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중앙역에는 비행기들이 착륙한다. 사실 이는 1920년대라 가능한 생각이었는데, 당시의 비행기란 지금의 고급 외제차 자가용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경비행기를 자동차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르 코르뷔지에는 자동차를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여겼는데, 그런 그의 생각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넓은 고속도로에서 나뉘어 레이어를 이루는 도로 층들로서 표현되었다. 물론 주요 도로는 보행자에 의해 속도를 구애받지 않도록 분리되었다. 도시의 배치 전반에서 그가 그렇게도 사랑한 빛이 건물에 잘 비친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이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코르뷔지에를 비판하기도 했는데, 도시가 너무 합리적이고 차갑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실제로 그의 구상이 실현된 도시인 찬디가르와 그의 사상을 토대로 설계된 60년대 이후의 신도시들, 고층건물에 거부감이 없으며 국력 증대와 과시라는 점에서 알맞춤이었던 아시아권(서울, 분당신도시, 베이징 등)과 중남미권(브라질리아, 쿠리치바 등) 도시들은 문자 그대로 콘크리트의 정글로 바뀌었으며, 타워팰리스의 사례처럼 고층 아파트를 최고급 주거로 인식하게 되었다. 실제로 분당신도시가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분당과 파리계획안을 비교해보면 둘이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일본은 건물을 오래 보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코르뷔지에 식 도시계획이 실패했다. 단적인 예로 1923년 관동대지진1945년 도쿄 대공습을 겪은 후에도 도쿄는 여전히 메이지 시대 후기에 형성된 혼잡한 도로망과 구획을 그대로 쓰고 있다.

당시 이 파리 계획안에서 재개발지역 규모는 서울의 강북지역만 했고 개발 범위에 몽마르트언덕이 있었다. 실현 됐다면 몽마르트언덕은 사라졌을 것이다.

4. 프랑스 본토에서는 실패한 계획

정작 프랑스 본토에서는 사실상 실패했고, 사람에 따라서는 '테러범 양성소'나 만들어줬다는 경멸 섞인 여론까지 볼 수 있다.

서유럽은 아시아와 달리 중근세 건축을 리모델링 등의 보수만 하면 문제 없이 쓸 수 있었고, 코르뷔지에 본인을 제외한 유럽인들은 도시가 이런 식으로 뒤집어지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파리재개발 계획은 퇴짜맞았지만, 당시 프랑스의 정책가들은 코르뷔지에의 계획안을 보고 늘어나는 주택수요를 충당하는데 아파트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 결과 파리 교외와 마르세유 등에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막상 지어놓고 보니 백인 중산층들은 전혀 살려 하지 않았다.[1] 사실 세워진 시기 당시에는 많은 주택이 파괴된 전후기였기 때문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집이 우중충하다고 불평을 핧 처지가 안되었고, 판자촌에서 사는것보다는 훨신 쾌적하니까 그냥 살았다. 그러나 전후기를 지나 이 당시에 건축된 아파트들이 노후화되기 시작하자, 보다 여유가 있어진 중산층들은 보다 넓고 여유공간이 많은 단독주택가로 이사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빈민층들은 판자촌보다는 사는것이 낫다면서 이들 노후아파트로 이사왔다. 이것이 오일쇼크 이후에 발생한 고실업과 빈약한 인프라 시설과 결랍하여 단지 자체가 슬럼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에도 '방리유' 혹은 '시테'라 불리는 파리 외곽의 아파트들은 백인이라면 살려고도, 들어가려고도 않는, 극히 위험한 빈민굴로 인식되고 있다.(##)

영화 《13구역》과 《타워블록》, 셀린 시아마걸후드, 자크 오디아르디판, 라즈 리레 미제라블(2019년 영화), 마티유 카소비츠증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마르세유》에서도 이러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프랑스 영화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로 꼽히는 경우가 많다.

한편 타마 뉴타운의 사례처럼 일본의 공영 아파트 단지들도 유럽처럼 슬럼화·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실 슬럼화는 서울도 예외가 아니어서 1960년대에 서울 도심에 건립된 오래 된 아파트들[2]은 이미 슬럼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물론 한국의 부동산쟁이들은 근대문화유산만 아니면 그때그때 싹 다 부수고 밀어버려서 다시 콘크리트 정글을 만들고 있다.(...) 자본의 파워 그럴듯하게 쓰면 바로 도시재생사업이다.


[1] 프랑스 도시 교외에 지어진 대다수의 임대아파트 단지들은 '브루털리즘'(brutalism)이라 하여 노출 콘크리트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이게 유럽인의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사실 한국인이 봐도 몹시 촌스럽고 살벌해 보이는 디자인이 많다.[2] 남산시민아파트나 동대문 연예인아파트, 보광동 상가아파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