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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4 16:33:23

복부인(서진)

伏夫人
(? ~ 284년 이전)
1. 개요2. 정사3. 기타4.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조위서진의 여성이자 사마의의 첩으로 사마량, 사마주, 사마경, 사마준의 어머니.

2. 정사

첫 아이 사마량의 생년은 알려져있지 않지만 227년부터 232년까지 사마량의 세 친동생(사마주, 사마경, 사마준)을 출산했다. 큰 아들 사마량이 위나라에 임관하자 따라갔고, 남편 사마의 사후 서진이 건국되고 아들들이 친왕이 되자 복부인은 태비(太妃)가 되었다.

아들 사마준은 효심이 깊어서 어머니 복태비(복부인)가 형 사마량이 임관할 때 따라가자 항상 슬피 울며 어머니를 사모했고, 어머니가 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으면 음식을 먹지 않을 정도로 걱정했으며, 때에 따라서 관직을 남에게 위임하고 아침 저녁으로 어머니에게 문안을 드렸다.[1]

아들 사마량이 부풍왕이 되었기 때문에, 275년, 부풍군 지양현의 3,200호를 태비 복씨(복부인)의 탕목읍으로 삼았다. 복부인이 작은 병을 앓아서 낙수(洛水)에서 굿을 할 때 사마량의 형제 셋(사마주, 사마경, 사마준)이 시종이 되어 나란히 지절로 고취하니 낙수의 물가가 밝게 빛나며 울렸는데, 사마염이 능운대(陵雲臺)에 올라 이를 바라보며 "복비(伏妃)는 부귀를 이룰 수 있으리라."라고 말했다.[2]

283년, 복부인의 아들 사마주가 죽으면서 어머니 태비(太妃)의 무덤 옆에 묻히기 등을 유언했는데[3] 이로 미루어 보아 복부인은 사마주가 죽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3. 기타

서진 건국 후 비(妃)가 되었고, 사마의의 처첩들 중 장춘화 다음가는 위치였기 때문에 중국사에서 황후 바로 다음가는 후궁 작위로 유명한 귀비(貴妃)로 추존되었다고 추측해서 복부인을 복귀비(伏貴妃)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서진 시대에 비(妃)는 귀빈(貴嬪), 부인(夫人), 귀인(貴人)이 전부였고 귀비(貴妃)라는 봉호는 없었기 때문에 복귀비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4. 미디어 믹스

삼국지대전에서 복귀비(伏貴妃)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1] 출처: 진서 선오왕열전.[2] 출처: 진서 여남왕량열전.[3] 출처: 진서 선오왕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