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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5 07:21:42

병자년 포락


1. 개요2. 경과3. 여담

1. 개요

丙子年 浦落[1]

병자년 포락은 1936년 7월 말부터 9월에 걸쳐 강원도를 강타한 물난리를 가리킨다. 2002년 루사가 찾아오기 전까지 강원도 최고의 물난리로 기억되었다. 춘천, 인제, 회양, 금강, 화천, 김화, 창도, 철원, 평강, 이천, 원주, 횡성, 영월, 평창, 통천, 고성, 간성, 속초, 양양, 동해, 삼척, 울진[2] 등 수해가 당시 강원도 전역을 휩쓸었다.

일제강점기의 수해로 가장 유명한 것은 을축년 대홍수고 강원도 역시 을축년 수해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병자년 포락을 더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강원도에서는 80년만의 대참사라고 말했지만 병자년 포락에서는 더욱 심한 피해를 입었다.

2. 경과

7월 24일 강원도 서북부, 현재의 춘천을 비롯해서 휴전선 이북과 이남에 이르는 강원도 지역에 처음 폭우가 쏟아졌다. 최대 강우량은 442mm였다고 한다.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원주를 비롯해 강원도 서남부에 폭우가 쏟아졌다. 원주에 가장 많은 비가 쏟아졌는데 인명피해는 물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정도로 매우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8월 26일부터 29일까지는 강릉, 양양, 간성, 고성, 통천, 삼척을 비롯해 강원도 동해안을 폭우가 강타했다고 한다. 강릉은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릉제방이 터지고 강릉남대천의 강릉교가 무너질 정도로 읍내가 물에 휩쓸렸고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양양 역시 제방이 터져 양양남대천이 범람해 양양읍내가 싹 쓸려 천 명에 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한밤중의 일이었다. 고성 역시 남강이 범람해 읍내가 쓸려 백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삼척 역시 삼척오십천이 범람하며 읍내가 쓸렸다고 한다.

9월 26일 통천에서 울진에 이르기까지 강원도 동해안 전역에 다시 한 번 폭우가 휩쓸었다고 한다. 강릉은 다시 강릉남대천이 범람했고 옥계면의 옥계천도 범람했다고 한다. 울진도 수백채의 집이 물에 잠겼고 삼척도 삼척오십천이 다시 범람하면서 수십채의 집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

인명피해도 인명피해지만 이처럼 물이 범람해 싹 쓸어버리는 통에 한해 농사를 망친 것도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3. 여담

1936년에 나치 독일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3만원의 성금을 조선총독부를 통해 보냈다고 한다.
[1] 논밭이 강물에 무너져 떨어져 나가는 것, 즉 홍수로 인한 수해를 말한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공부하다 보면 포락지(수몰된 땅)라는 말을 얼핏 들어봤을 것이다.[2] 당시에는 울진군도 강원도 소속이었으며 1963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