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別武士조선 후기 오군영 중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에 소속된 정예 기병. 군영 내 휘하 기병대를 통솔하는 하급 장교에 해당된다.
2. 설명
초기에는 수솔마병(隨率馬兵)이라 하여 선조 때 훈련도감의 보군(步軍) 중 무예가 뛰어난 자, 또는 한량 중에서 시험으로 선발 후 마병(馬兵)으로 편성했다. 이후 1710년 훈련도감 대장 이기하의 요청을 받아들여 '별무사'로 고쳤다. 이후 함경도 정예 기병인 친기위(親騎衛)를 본받아 1712년 완력, 궁술, 기마술에 재능이 있는 자를 선발했고, 강서(講書)도 함께 시험보게 했다.별무사는 훈련도감에 68명, 금위영과 어영청에 각각 30여명 씩을 배치했다. 훈련도감 인원은 중군(中軍)에 10명, 좌·우별장(別將)에게 각각 10명, 좌·우천총(千摠)에 4명이 나누어 소속되었다. 금위영에는 총 30명으로 중군과 각위에 나누어 속했고, 어영청에는 총 30명에 10명이 중군에 속했다. 숙종 때는 해적을 막을 의도로 지방에도 파견했다. 주요임무는 궁궐 순찰 및 감독과 각 군영의 전답 관리, 번병(番兵) 소집통고 등이 있으며 급여는 호조에서 쌀 10두, 콩 9두가 보통 지급되고 휴가는 원거리 20일, 근거리 10일까지 주어졌다.
별무사는 초기에는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에 두었고, 영조 때는 영남 지방과 경기수영까지 확대 설치했다. 이후 정조 때를 기점으로 지위가 약화돼 갑오개혁 이전에 사라졌다.
3. 자격 요건
별무사는 국출신[1], 마군, 보군은 모두 응시 할 수 있었다. 시험 과목은 말을 타고 창으로 목표를 찌르는 기추(騎芻), 말을 타고 편곤으로 타겟을 치는 편추(鞭芻), 땅 위에서 활을 쏘는 유엽전과 편전을 평가했다. 이 네 가지 종목의 점수를 합산해 7점 이상이면 상상등, 6점은 상중등, 5등은 상하등으로 구분했다. 특별과목으로는 월도, 이화창(李花槍), 쌍검이 있었다.각 도에서는 별무사도시(別武士都試)를 설치해 실력이 뛰어난 자를 승급하고 최고 등급자에게는 전시(殿試)[2]를 응시하게 했다. 이들에게는 국가의 말을 관리하는 사복시(司僕寺)에서 말을 지급했다.
4. 출신 인물
- 조계홍 - 독립운동가 명창하의 외조부. 평안도 별무사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한 뒤 1836년 12월 25일 천마진(天摩鎭) 첨절제사로 임명되었다.
5. 여담
- 이인좌의 난 때 훈련도감 소속 기병 400명이 크게 활약했는데, 훈련도감은 군영 중 별무사 비율이 가장 높았기에 이들도 참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 평안도 별무사는 홍경래의 난에 가담해 반란 초기 송림-박천 전투에서 정부군 중앙 전열에 기병 돌격을 시도했다. 이때 어영청 포수들을 중심으로 한 정규군의 필사적인 조총 사격 때문에 돌격은 저지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