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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9 03:25:12

백진수(1903)

파일:백진수(1903).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백무기(白武基)
본관 수원 백씨[1]
출생 1903년 12월 1일[2]
전라북도 부안군 하동면 구운리
(現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 운기마을[3] 149번지[4])
사망 1946년 3월 24일 (향년 42세)
가족 백남일(아버지), 윤문옥(어머니)
백정기(형), 백복순, 백복근(누나)
정애자(부인), 백계현, 백재현(아들[5])
묘소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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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독립유공자 백정기의 친동생이다.

2. 생애

1903년 12월 1일 전라북도 부안군 하동면 구운리(現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신운리 운기마을 149번지)의 빈농가에서 아버지 백남일(白南一, 1876. 9. 17 ~ 1908. 12. 1)[6]과 어머니 파평 윤씨 윤문옥(尹文玉, 1872. 10. 2 ~ 1963. 6. 15)[7] 부부 사이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부유한 편에 속했다. 5세 되던 1907년 전라북도 고부군 북부면 갈선리(現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갈선마을 734번지)[8]이사하여 이곳에서 성장했다.

1932년 8월 형 백정기가 독립운동을 위해 중화민국 상하이로 망명하면서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에 처음에는 각지를 전전하며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자, 인쇄공 조명호(趙明鎬)·박창식(朴昌植)·고광직(高光職) 등과 함께 남몰래 위조지폐를 제작해 인쇄할 것을 협의했다. 이때 인쇄된 위조지폐 500엔은 이후 모종의 경로를 통해 만주국 길림성 영안현(寧安縣) 해림보(海林堡)[9]에서 활동하던 백정기에게 안전히 전달되었다.

1933년 3월 17일 형 백정기가 중화민국 상하이 홍구(虹口)[10]의 로쿠산테이(六三亭)라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요릿집에서 중국 대륙 침략의 하수인으로 지목되어 있던 주 중화민국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를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자, 이후 가족들과 함께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돼 정읍경찰서에서 형 백정기의 이른바 '여죄(餘罪)'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며 구금되었다가 10개월만에 석방되었다.

1934년 6월 5일 형 백정기가 일본 나가사키현 키타타카키군(北高來郡) 이사하야촌(諫早村)[11] 나가사키형무소에서 지병폐결핵으로 옥사, 순국한 뒤 이튿날인 6월 6일 형무소장으로부터 형 백정기의 부고를 듣고 홀로 일본 나가사키현으로 건너가 시신을 수습해 일본 땅에 안장하고는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실의와 좌절에 빠져 연명하다가, 1936년 9월 11일 과거 위조지폐를 인쇄해 형 백정기의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할 때 동지였던 박창식이 조선 국내에서 당시 인쇄했던 위조지폐의 일부를 사용하려다가 발각되어 조명호·고광직과 함께 일본 제국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뒤 1937년 1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주화위조방조죄 혐의로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나, 1946년 3월 24일 별세했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1] 문경공파(文敬公派)-휴암 종중(休庵宗中) 29세 기(基) 항렬. 족보명은 백용기(白龍基).[2] 음력 10월 13일. 수원백씨문경공휴암보 제7권 956쪽에는 10월 20일생으로 등재돼 있다.[3] 2009년 6월 30일 부안독립신문 기사. 기사 서두에 첨부된 운기마을 약도를 통해 구운기마을에 "백정기의사생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4] 2021년 10월 20일 부안인터넷신문 기사. 네이버 지도의 위성지도를 통해 생가터의 위치가 신운리 149번지임을 알 수 있다.[5] 이 중 장남인 백계현은 자식이 없던 형 백정기의 양자로 입적됨.[6] 자는 사순(士純).[7] 윤자신(尹滋臣)의 딸이다.[8] 현재 이 지번에 구파백정기의사고택이 남아 있다.[9]중화인민공화국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하이린시(海林市).[10]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 훙커우구.[11]일본 나가사키현 이사하야시 노나카정(野中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