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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창씨명 | 카마타 요시아키 蒲田祥明 |
| 요시무라 요시아키 芳村祥明 | |
| 호 | 계당(桂堂), 민정(敏廷) |
| 출생 | 1906년 5월 17일 |
| 평안남도 강서군 (現 남포시 강서구역) | |
| 사망 | 1986년 2월 17일 (향년 79세) |
|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560-2 자택 | |
| 가족 | 배우자 방씨 딸 방정복 외손자 이준방 |
| 학력 | 동덕여학교 (졸업) 도쿄고등기예학교 (사범과 / 졸업) |
| 경력 |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상명실천여학교 초대 교장 상명여자사범대학 초대 학장 상명학원 이사장 영훈학원 이사장 민정학원 이사장 동덕학원 이사 |
| 비고 | 국가유공자 등재 문화훈장 국민장 산림사업발전 유공상 국민훈장 모란장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
| |
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 상명대학교의 전신인 상명여자고등기예학교와 상명학원의 설립자로, 여성교육과 사학 발전, 국토녹화사업 등에 관여하였다.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이며, 호는 계당(桂堂), 민정(敏廷)이다.배상명은 일제강점기 초반 3.1 운동을 참여하고 경험하며 민족의 현실과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여성교육을 통해 근대적 교육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나, 일제강점기 후반에는 전시체제에 협력한 행적을 남겼다. 이로 인해 연세대의 백낙준, 고려대의 김성수, 이화여대의 김활란, 성신여대의 이숙종, 명지대의 노기남•박일경 등과 마찬가지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교육·학술 부문에 등재되었다.
광복 이후에는 상명학원과 상명여자사범대학 설립 및 운영에 힘썼으며, 교육사업과 국토녹화사업에 대한 공로로 문화훈장 국민장, 산림사업발전 유공표창,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으며 국가유공자가 되었다. 따라서 배상명은 여성교육과 사학 발전에 기여한 교육자인 동시에, 일제 말기 전시체제 협력 행적으로 비판받는 복합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2. 생애
2.1. 교육 활동
배상명은 1906년 5월 17일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배순덕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한때 배순명이라는 이름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소녀 시절 3.1 운동에 참여하며 민족의 현실을 의식하게 되었고, 이후 교육을 통해 민족의 자주와 발전에 기여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상명대학교 계당홀의 배상명 동상 아래 글에서도 그가 3.1 운동을 통해 민족의 비운을 통감하고, 국민 교육이 민족의 자주와 번영을 이루는 길이라고 보았다는 취지의 설명이 확인된다.
1923년 동덕여학교를 졸업한 뒤, 1924년 경성 삼선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7년 5월 도쿄고등기예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 |
그의 초기 교육 활동은 여성에게 실용적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근대적 여성교육의 기반을 넓히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여성교육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배상명의 학교 설립과 교육 활동은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장기화되고 전시체제가 강화되면서, 그의 활동은 점차 일제의 정책과도 연결되었다. 초기에는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했던 인물이었으나, 식민지 지배가 장기화되고 독립의 전망이 어두워지는 현실 속에서 일제의 전시체제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2.2. 일제강점기 후반의 전시체제 협력
| | |
| 징용을 선동하는 배상명의 기고문 - 매일신보 1944년 5월 26일 | |
또한 조선인의 징병과 전시동원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과 발언을 남겼다. 특히 1942년 5월 매일신보에 기고한 「역사에 남을 여성이 되자」에서는 조선인에게 징병제가 적용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며, 조선 여성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떠난 군인들을 대신해 아내와 어머니로서 씩씩하게 가계를 돌보고 후방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행적은 당시 일제가 조선인을 전쟁 수행에 동원하던 상황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는 친일 및 전쟁협력 행위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배상명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다만 그의 친일 행적을 단순한 개인적 변절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배상명은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민족의 현실을 의식하고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식민지 체제의 장기화와 전쟁 동원 체제 속에서 현실에 타협하는 선택을 하였다. 이는 시대적 압박과 개인적 한계가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으나, 조선인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한 행위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2.3. 광복 이후의 활동
광복 이후 배상명은 다시 교육사업에 집중하였다. 1945년 재단법인 상명학원을 설립하였고, 이후 상명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1965년에는 서울 세검정에 상명여자사범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다.그는 상명학원 외에도 영훈학원, 민정학원, 동덕학원 등 여러 교육기관의 운영에 관여하였다. 또한 한국사학재단연합회 이사, 대한민국문학예술상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으며 교육계와 문화계에서 활동하였다.
배상명은 국토녹화와 육림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천마산 일대에서 육림사업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그는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 1971년 산림사업발전 유공표창, 1982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받았다. 광복 이후의 배상명은 교육기관 설립과 운영, 사학 발전, 국토녹화사업 등을 통해 공적 활동을 이어간 인물로 평가된다.
배상명은 공과가 뚜렷하게 엇갈리는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여성교육과 사학 발전에 기여한 교육자이며, 대한민국 고등 교육의 기반을 마련한 설립자이다. 광복 이후 교육사업과 국토녹화사업에 힘쓴 점은 국가적 포상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후반 전시체제에 협력하고, 조선인의 징병과 전쟁 동원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행적은 비판의 대상이다.
따라서 배상명을 단순히 민족교육자나 교육공로자로만 평가하기는 어렵다. 동시에 친일 행적만으로 생애 전체를 설명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민족의 현실을 의식하고 교육을 통한 발전을 추구했으나, 식민지 지배가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일제의 전시체제에 협력하는 선택을 했다. 광복 이후에는 교육과 사회사업을 통해 다시 공적 활동을 이어갔고, 그 결과 여러 훈장을 받았다.
이러한 점에서 배상명은 일관되게 청렴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시대의 압박 속에서 타협과 과오를 남겼고, 이후 교육 활동과 사회사업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다시 세우려 했던 입체적인 인물로 볼 수 있다.
3. 기타
| |
- 배상명은 한복을 즐겨 입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외국에 나갈 때에도 한복을 입었으며, 이는 한국 복식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 상명대학교 서울캠퍼스에는 그의 호를 딴 계당홀이 있으며, 천안캠퍼스에는 계당관이 있다. 또한 계당장학금과 민정학원의 명칭 역시 그의 호와 관련이 있다.
- 서울캠퍼스와 천안캠퍼스에는 배상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다만 그의 친일 행적이 알려지면서 동상과 기념사업을 둘러싼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 2013년에는 서울캠퍼스에 계당 배상명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이곳에는 배상명이 사용하던 집무실, 생전 육성, 각종 훈장 및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만 전시 내용에서 일제강점기 후반의 친일 행적이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