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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8 13:12:49

발해국기

渤海國記


1. 장건장(張建章)이 쓴 역사서2. 황웨이한이 쓴 역사서

1. 장건장(張建章)이 쓴 역사서

장건장(張建章: 806년 ~ 866년)은 당나라 사람이었으면서도 오히려 『발해국기(渤海國記)』를 지었는데, 고려 사람이 어찌 홀로 발해 역사를 편찬할 수 없었단 말인가?
유득공. 《발해고》 서(序)

당나라 유주 종사로 근무했던 인물인 장건장(張建章)이 쓴 발해 역사서. 장건장은 833년에 발해에 머물렀는데 834년 당나라로 귀국한 후 자신이 보고 느낀 점을 책으로 써내려갔는데 이것이 바로 발해국기다. 당시 발해의 왕호를 비롯해 각종 생활상이나 풍습등을 기록한 책으로 현존하지는 않는다. 만약 남아있었다면 교과서에 나올 발해 부분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날수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편찬 시기가 발해대이진 시절이라 선왕까지만 시호가 확인되기 때문에 이후의 왕들에 대해서는 시호조차 알수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총 3책으로 이루어 져있으며 송나라의 왕응린이 편찬한 백과사전인 《옥해(玉海)》 153권에 언급되는 문장이 유일한 원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옥해(玉海)》 153권

그 외 《신당서(新唐書)》, 《송사(宋史)》, 《통지예문략(通志藝文略)》, 《숭문총목(崇文總目)》, 《통지예문략(通志藝文略)》, 《국사경적지(國史經籍志)》등에서 짤막하게 인용되어 있다. 특히 신당서의 경우에는 왕의 시호5경 15부 62주의 존재, 상경용천부의 탄생 등 다른 사서에 나오지 않거나, 짤막하게 넘어간 부분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인용 뿐 아니라 기록 전반을 발해국기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2. 황웨이한이 쓴 역사서

근현대 중국역사학자인 황웨이한(黃維翰)이 저술한 발해 역사서. 3편 14장으로 분류해 작성했으며 1929년에 탈고 했으나 출판되지 못했다. 이후 1933년에 포봉관(鮑奉寬)이 손을 본 후 출판을 하게 되었다.

자서(自序)에는 출판 동기가 밝혀져 있는데, 당나라의 장건장(張建章)이 엮은 『발해국기』3권은 왕응린(王應麟)의 『옥해(玉海)』에서 발해를 설명하면서 한 구절만이 인용되었을 뿐 전하지 않으며, 근세에 와서 만주의 당안(唐晏)이 『발해국지(渤海國志)』를, 조선의 서상우(徐相雨)가 『발해강역고』를 저술했는데 모두 득실이 있기에 집필한 것이라 하였다.

내용은 상•중•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편은 국호•종족•예속(禮俗), 중편은 지리•직관(職官)•인물•물산, 하편은 조공중국(朝貢中國)•교빙일본(交聘日本)•비린신라(比鄰新羅)•이국거란(移國契丹)•유민(遺民)•잡지(雜識)•연표 등의 순으로 엮어져 있다.

황유한은 자서에서 “지금 여러 서적들을 망라하는 한편, 해외의 사서까지도 참고하였다.”고 자부했다.